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기 위해 ‘대형교회’에 다녀야 하는가? 『미국을 움직이는 작은 공동체 세이비어교회』서평 유성준 지음. 평단. 2005 이 주 일(청년부/예수대학 강사) 지금으로부터 약 5년전 여름. ‘한국리더십학교(고려대 이장로 교수 지도)’라는 기독교 리더십 양성 과정을 밟은 적이 있다. 그 과정은 1년 4학기 제도였고, 여름학기에는 반드시 2주 내지 3주에 걸친 미국 비전트립에 참여해야 한다. 총비용의 절반가량 장학금을 지급해 준다. 비전트립을 가면 미국 동부의 약 4개주를 돌며 미국을 움직이는 리더십들을 만나보는 기회를 갖게 된다. 한국에 잘 알려진 윌로우크릭 커뮤니티 교회의 구도자 예배 및 리더십 서밋(the Leadership Summit)에도 참여했었고, 당시 주미대사였던 한승주 대사를 만나기도 했으며, 하버드 대학과 MIT를 방문해 노벨상 수상자의 강의를 직접 듣는 황송한(?) 기회도 가졌었다. 20세기 말 부흥이 휩쓸었던 대학으로 유명한 휘튼대학을 방문했던 것도 매우 인상 깊었다. 빌리 그래함 기념회관을 통해 하나님의 뜨거운 역사를 온 몸으로 느껴볼 수 있었다. 책 서평을 쓰면서 웬 시덥잖은 비전트립 이야기를 하냐고? 그 기간 동안 만났던 미국을 움직이는 리더십들 중에 한 사람이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인 세이비어교회의 설립자 고든 코스비 목사였기 때문이다. 이 책의 초판이 발행된 때가 2005년 3월이었으니, 내가 고든 코스비(Gordon Cosby)를 만났던 건 그 보다도 2년 전의 일이었다. 사실 비전트립 내내 워낙 거물급(?)들만 만나다 보니, 웬 연로한 목사님이 한 분 나오셔서 띄엄띄엄 한마디씩 하시는 게 그다지 가슴 속에 다가오진 않았었다. 당시 나도 모르게 모자란 마음에 ‘그래도 윌로우 크릭 정도는 되어야 이런 자리에 나와서 이야기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무심코 했었던 것 같다. 그저 미국에서 열심히 목회하시며 소그룹 운동 등으로 소위 성공(?)한 그런 분이라 생각했을 뿐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모 기독교 인터넷 매체에 ‘세이비어교회’에 대한 책을 소개하는 서평이 무게감있게 실렸다. ‘미국을 움직이는 작은 공동체’라는 말이 인상에 남았다. 특히 ‘미국을 움직이는 대형 교회’가 아닌, ‘작은’ 공동체라는 말이 조금은 어울리지 않은 듯 생소하게 느껴지면서 무언가 신기하게 보였다. 왜 ‘작은’이라는 말을 저렇듯 자랑스럽게 붙였을까?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이 교회는 1947년에 개척되어 현재 약 60여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150여명의 성도 수를 넘어간 적이 없었다고 한다. 요즈음 우리 예수가족교회와 비슷한 규모인 듯 싶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미국을 움직인다’는 것이다. 여기서 미국을 움직인다는 말은 정치적 권력을 행사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엄청난 대형교회조차 감당할 수 없는 수많은 지역주민에 대한 섬김과 복음전도의 사역을 감당한다는 뜻이다. ‘희년 사역(Jubilee Ministries)’라고 불리는 지역주민에 대한 세이비어교회의 섬김은 지역 저소득 주민들을 대상으로한 ‘의료선교’(매년 자원봉사자들이 7000시간 이상을 봉사하고 있다), 미국 사회의 노숙인들을 돌보고 회복되어 갈 수 있게 돕는 ‘그리스도의 집’, 마약․알코올 중독자들을 섬기는 ‘사마리아인의 집’, 도심 빈민지역의 저소득층을 위한 아파트 임대사역(800세대를 입주시켰다고 한다) 등 도저히 150명의 교인이 감당하고 있다고 믿겨지지 않을 만큼의 놀라운 섬김의 사역을 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세이비어교회에 등록한 교인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특별한 사람들일까? 모두가 선교 헌신자들일까? 그들은 특별히 다른 신자들과 다른 사람들도 아니며, 선교 헌신자들도 아닌 평범한 사람들일 뿐이다. 다만, 이들은 ‘특별한 헌신’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에 차이가 있다. 세이비어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역 목표 중 하나는 돈, 권력, 명예에 중독되어 있는―다시 말해서 현대 문화에 중독되어 제자도를 잃어버린 성도들의 정신을 깨는 일이다. 적당히 현대 문화에 적응한 채로 안락하게 살아가면서도 자신의 삶이 하나님께 진실되게 헌신되어 있다고 믿는 오류를 깨뜨리자는 것이다. 참된 제자도란,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삶이다. 고든 코스비는 이런 제자도를 교회에 세우기 위해 교회 초창기부터 엄격한 입교심사 및 구체적이고 수준높은 헌신을 전교인에게 요구하였다고 한다(사실 부담스럽고 두려워지는 이야기일 수 밖에 없다). 세이비어교회에 등록하면, 마치 우리 교회의 예수 대학처럼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한 학교’가 있어서 기독교 교리,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기도, 청지기로서의 삶, 기독교 윤리 등의 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또한, 전교인이 하루에 1시간씩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해야 하며, 소그룹에 반드시 소속되어 헌신하며 예배를 굳게 지킨다. 마지막으로 각자의 은사에 따라 구체적인 지역 사회에 대한 섬김의 사역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이와 같은 높은 수준의 헌신을 다짐할 수 없다면, 세이비어교회의 정식교인이 될 수가 없다(생각만해도 두렵다). 특히, 복음전도와 지역사회에 대한 섬김의 참여를 분리하지 않고 양쪽 사역을 모두 충실히 감당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의 주권을 인정하는 일을 매우 실제적으로 적용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 교회는 미국의 워싱턴 북부 빈민지역 근처에 자리하고 있다. 가난한 자들과 함께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사랑을 함께 나누는 것이 이 교회의 목표다. 철저한 제자도의 요구가 대형교회로 성장하는 길을 막고 있지만(오히려 대형교회가 되는 것을 제자도에 방해가 되는 것으로 여긴다), 웬만한 대형교회 이상의 사역과 섬김을 해내고 있으며 실제적으로 이웃으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있다. 주보에 싣는 첫 서평에 내가 굳이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결코 세이비어교회가 완전한 곳이라거나 이 교회의 ‘전략’을 도입하면 우리 교회가 잘 될거라는 식의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몇 가지 통찰을 얻을 수는 있겠으나, 미국¡/워싱턴/빈민지역이라는 독특한 지역적 배경, 1947년이라는 시대적 상황, 감리교 출신의 독립교회 등등의 우리 교회와는 매우 상이한 측면들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전혀 그대로 적용될 수가 없는 모델이다. 또한 그대로 적용해야할 이유도 없다. 한국에 현재 존재하는 몇몇 대형 교회들이 부패하고 수준 낮은 제자도를 가지고 복음의 빛을 가리고 있다. 또한, 이들은 낮고 천한 곳에서 이름 없이 섬기면서 평생을 작은 (교회) 모습으로 주님을 섬겨오신 많은 목회자 및 성도들을 부끄럽게 하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현실적인’ 수많은 이유들을 대며 여전히 우리는 ‘규모’에 집착하며 그 ‘규모’ 앞에 머리숙이는 천박한 제자도를 가지고 있진 않은가? 단 150명만으로도 50년이 넘는 세월동안 주님의 명령을 묵묵히 받들어온 세이비어교회 성도들의 삶 앞에 우리는 부끄럽지 않은가? 나는 부끄럽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더 커져야 주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인가? 주님은 12제자의 순종만으로 이 세상을 변화시키셨으며, 우리가 믿는 복음 또한 그런 능력을 지닌 것이라는 사실을 감히 되새겨 보고 싶었던 것이 이 책을 나의 첫 서평 대상으로 선택한 이유라면 이유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