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둥 수용서』를 읽고
제목만으로 짐작했던 내용은, 포로수용소 내에서 벌어지는 일본군의 잔인한 만행과 인권 유린 현장 속에서도 올곧게 신앙을 지켰던‘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의 이야기가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내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일본의 적국 시민이라는 굴레를 쓰고 산둥 수용소에 갇힌 여러 부류의 사람들은 자유가 속박되었고 외부적 세계에서 누리던 사회적 지위와 문명의 육체적인 안락함이 모두 사라졌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들은 최악의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협력하기 시작했고 생존에 필요한 필수적인 서비스를 최소한으로 제공할 수 있게 되었고 수용소에서의 삶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군에서 10년간 있으면서 느꼈던 일이다. 집을 떠나 2년의 시간동안 제한된 자유속에서도 신속하게 적응하는 장병들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나도 그랬다. 그런데 산둥 수용소의 이 축소된 사회는 조금씩 진화하기 시작한다. 중앙집권적인 조직화를 이루고, 취미, 문화생활, 심지어 연예까지도 누릴 수 있게 된다. 놀랍게도 세상과 격리 된 그 곳이었지만 마치 세상의 축소판이 된 듯하다. 처음 그들이 수용소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비교적 잘 협력했다. 길키는 무신론자가 된 것처럼 보였다. 초기 수용소의 모습은 인간의 합리성과 선함에 대해서 신뢰할 수 있어 보였다. 그러나 단순히 살려는 의지가 의식적이고 지적인 것이 되면서 곧 힘을 소유하려는 역동적 의지, 무한히 물건을 소유하려는 의미로 변한다.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해서는 아무리 쌓아도 불충분해 보이며 그래서 더 쌓으려는 욕구에는 끝이 없게 되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만약 일본이 패망하지 않았으면 산둥 수용소는 인간 본연의 이기심으로 인해 큰 혼란의 소용돌이 현장이 되었을 것이라고 나는 예상한다. 이 책을 읽으며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하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전도사라는 타이틀에 속에 가려진 내 자신의 욕심과 야망, 비열함, 자기 사랑에 뒤틀려진 나를 보게 되었다. 인간은 원죄를 가진 존재들이다. 본래 태생부터 악한 존재, 이기적인 존재들이다. 이 이기심은 저 깊은 곳에서 행위를 결정하고 방향을 정한 후, 실제적인 잘못된 행동으로 끌고 간다. 랭던 길키가 이야기했던 딜레마, 즉 인간은 도덕적이어야 하지만 인간은 이기심을 극복하고 이웃에 책임감을 느끼는 존재가 될 수 없다는 통찰이 매우 놀랍다. ‘하나님 사랑, 이윳 사랑’이라는 사랑의 계명을 명받은 기독교인들조차도 자신들의 이기심을 극복하지 못했던 일화들을 읽으며 랭던 길키가 목격했던 그들이 바로 나라는 탄식이 나왔다. 더 그럴듯한 합리화를 꾸며 대는 모습이 바로 나였다. 여러 차례 자기결심을 하고 의식을 했지만 여전히 먼저 나의 유불리를 계산하고, 행동하며 나중에 합리적인 이유들을 찾으려 했다. 길키가 깨달았던 것처럼 어떤 지성이나 이상, 선의도 인간의 행위를 변화시키거나 그를 이기심에서 벗어나 선하게 행동하도록 만들 수 없다. 길키는 인간 본연의 이기심을 보게 되었고 다시 하나님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기 원했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인간이 처한 상황에서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중심을 발견하는 것이다. 하나님만이 진정한 영적 중심이 될 수 있다. 인간의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삶은 하나님의 능력과 그분의 영원한 목적 안에서만 궁극적인 의미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 안에만 영원한 의미가 존재한다. 무엇을 위해 사는가?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다. 그러나 실제적 삶에서 인간은 자신의 복지에만 온통 관심을 기울이는 존재다. 기독교인 역시 사명과 삶을 통해 세상을 사랑하고 섬기는 대신에 세상과는 상관없이 자신을 사랑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오늘 날 기독교는 종교적인 예의로 감추려고 하지만 사랑의 계명에 순종하지 않고 있다. 진정한 신앙인은 의미와 안정성의 중심을 자신의 생명에 두는 대신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 안에 둔다. 삶에서 진짜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과 이웃의 복지가 되어야 한다는 길키의 말은 정곡을 찌른다. 즉 사랑의 계명이 실천되어야 한다. 이기심 가득한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인정하지만 하나님 안에 있을 때, 개인의 정체성과 방향성은 내 안에서 소멸되지 않고 하나님과 이웃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오늘도 나의 교만과 하나님의 은혜가 내 마음속에서 충돌하고 있다. 이 충돌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인간 본연의 이기심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여 이전보다 더 새롭고 더 활력이 넘치는 진짜 의미 있는 인생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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