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울음도 울음 나름이지! 본문: 사사기 2:1-5 필자가 섬기는 교회는 ‘구원 그 이후 반’이라는 소그룹 모임을 갖습니다. 모임 명칭 그대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내기 위한 소박한 모임입니다. 모임 시간에 워싱턴 사귐의 교회를 섬기는 김영봉 목사가 쓴 ‘가장 위험한 기도 주기도’를 교재로 쓰고 있는 데 지난 주 캘리포니아에 있는 William Jessup University의 교수로 재직 중인 데이비드 팀스(David Timms)가 말한 내용을 소개한 글을 읽으면서 지체들과 깊이 공감한 적이 있었습니다. 인용해 보겠습니다.
“당신의 나라가 임하시옵소서(Thy Kingdom come.)라는 기도를 뒤집으면, 내 나라가 끝나게 하옵소서.(My Kingdom done.) 라는 기도가 된다.”
읽으면서 정말로 기막힌 촌철살인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신앙인의 삶이란 무엇일까요? 내 나라의 포기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소망하는 길이지 않겠습니까? 반대로 신앙인이라고 하지만 신앙인이 아닌 ‘유사 신앙인(pseudo-christian)’이 누구입니까? 내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가 공존해 주기를 바라는 존재들이지 않겠습니까? 필자는 지난 호에서 신앙인에게 중립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본문 사사기 2:1-5절은 지난 사사기 1장 강해를 통해 살펴본 대로 하나님의 명령(가나안화 되지 말라)을 어기고 자기들의 유익을 위해 가나안 거민들을 쫓아내지 않고, 노예로 부리며 공존하면서 가나안화(Canaanization)된 가나안 초기의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에게 실망하신 하나님이 불순종의 대가가 무엇인지를 선포하는 장면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아주 종종 구약적 표현으로 자신을 드러내시는 방법인 여호와의 천사를 등장시켜 하나님의 분노를 전달합니다. 가나안화 되어 있는 이스라엘 공동체를 고발하며 기소하는 내용이 본문 1-2절에 사사기 역사가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발의 내용은 언약파기입니다. 본문 2절을 특별히 주목하십시다. “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며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이렇게 기소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언약을 파기한 당신의 백성들을 향하여 본문 3절에서 징계를 확정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① 하나님께서 가나안 사람들을 더 이상 쫒아내지 않으시겠다고 하시는 징계 ② 그 거민들이 너희들을 괴롭히는 가시가 되게 할 것이라는 징계 ③ 가나안의 신들이 너희들의 올무가 될 것이라는 징계입니다.
여호와의 천사가 사사 초기 시대의 유대공동체에게 전한 징계를 받은 당사자들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본문 4-5절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이 말씀을 이르매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운지라 그러므로 그 곳을 이름 하여 보김이라 하고 그들이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더라” 히브리어 ‘보킴’ 은 문자적으로 해석을 하면 ‘통곡하는 자들’ 이라는 뜻입니다. 읽다가 목회자로서 심히 유감스러운 아쉬움을 담보하게 되었습니다. 무엇일까요?
● 울음도 울음 나름이다. 라는 소회였습니다.
왜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요? 때늦은 후회 정도라고 하면 어떨까요? 곱씹어 보십시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대로 순종했다면 보김의 울음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보김에서 울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의 선언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로 현장에서 30년 동안 사역을 하면서 항상 느끼는 감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대로 살면 감격의 울음을 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리면 후회라는 보김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는 감회 말입니다. 필자는 성경에 기록된 가장 아름다운 눈물을 뽑으라고 한다면 언제나 느헤미야 8장의 눈물을 성도들에게 소개합니다.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천신만고 끝에 완성한 느헤미야 총독은 에스라를 초청하여 수문 앞(watergate) 부흥회를 개최합니다. 에스라가 모여든 백성들 앞에서 율법을 낭독하고(reading),해석하자(interpreting) 그들이 울었다고 보고합니다. 어떤 감동이 임하십니까? 독자들이여! 보김의 울음을 울지 말고, 수문 앞 광장의 울음을 울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게 나라냐? 의 기막힌 신 사사시기에 있는 오늘, 조국교회의 예배당마다 보김이 아닌 수문 앞 현장의 울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눈물의 현장이기를 기대해 봅니다. 울음도 울음 나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