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출발은 돌이켜 생각함 곧 성찰이다. 사유란 지금까지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에 의문부호를 붙이는 일로부터 시작됩니다. 사유는 그러니까 상투성을 거스르는 정신적 능력입니다.”
(김기석의 ‘아 욥’ p,228 에서)
김 목사의 글을 읽다가 몇 년 전 읽은 신영복 선생의 ‘처음처럼’의 글말이 생각나서 울컥했다.
“불치병자가 밤중에 아기를 낳고 급히 불을 켜 아기를 살펴보았습니다, 혹시 아기가 자기를 닮았을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신영복 ‘처음처럼’ p,39 ‘省察’ 에서 발췌)
한 시대의 지성이자 스승으로의 삶을 살다가 간 신영복 선생께서 했던 말 중에 가슴에 담은 것이 있다.
“‘수많은 처음’ 이란 결국 끊임없는 성찰(省察)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것 같다. 겉핥기의 지성이 아니라 무궁한 독서의 내공으로 다져진 지성들의 맥이 관통하고 있음에 많은 것을 배운다. 주일에 인용할 터인데 교우들이 무슨 뜻인지 헤아려 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