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사사기 1:9-15 제목: ‘샘물도’에서 ‘샘물은 반드시’로 서론) 우리는 지난 텍스트 이해를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조합은 아니었지만 유다와 시므온 연합군이 가나안 베섹에 이르러 하나님의 전적인 일하심으로 그들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음은 물론,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점령하였고 베섹의 패권자인 아도니베섹도 제압하였음을 살폈습니다. 오늘 이어지는 본문 9절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승전가를 부르고 있었던 유다 연합군이 그 여세를 몰아 이제는 예루살렘의 남방지역을 도모하는 기사입니다. 유다 공동체가 남방의 거점 도시였던 헤브론을 취할 때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은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갈렙입니다. 남방 지역의 전투를 맡은 갈렙은 기랏세벨이라고 불렀던 또 다른 도시인 드빌 전투에 나서기에 앞서 한 가지를 공동체의 군사들에게 제안합니다. 본문 12절에서 보면 드빌을 점령하는 장수에게 딸인 악사를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드빌 전투에 나서 승리를 한 장수가 옷니엘이었습니다. 약속대로 갈렙은 자기의 딸인 악사를 옷니엘에게 줍니다. 헌데 이 기사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악사가 결혼을 할 때 아버지에게 대단히 중요한 것을 요구했다는 점인데 본문 14-1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악사가 출가할 때에 그에게 청하여 자기 아버지에게 밭을 구하자 하고 나귀에서 내리매 갈렙이 묻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니 이르되 내게 복을 주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남방으로 보내시니 샘물도 내게 주소서 하매 갈렙이 윗 샘과 아랫 샘을 그에게 주었더라” 이 본문 구절에 대한 학자들의 해석을 다양하지만 복음주의 권에 있는 학자들은 대체적으로 이런 해석으로 본문을 접근합니다. 악사가 결혼을 할 때 아버지를 찾아가서 기업의 일부를 요구했다는 것입니다. 그 기사 중에 사사기 기자가 놓치지 않은 팩트가 있는데 이 부분입니다. 악사가 아버지를 찾아와 나귀에서 내릴 때였습니다. 본문에 나귀에서 ‘내리매’ 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타동사 ‘짜나흐’ 는 원어대로 직역을 하면 ‘떨어지듯이 내리게 되다.’ 의미입니다. 적용해 보십시다. “악사는 아버지를 보자마자 나귀에서 땅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자동적으로 아버지에게 무릎을 꿇어 엎드렸다.” 무슨 말입니까? 아버지에게 최고의 경의를 표했다는 말입니다. 갈렙은 딸의 행동에 적지 않은 감동을 받고 선물을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바로 이 때 악사가 아버지에게 요구한 두 가지에서 우리는 대단히 중요한 영적 통찰을 배우게 됩니다. 첫째로, ‘내게 복을 주옵소서.’ 는 통상적인 요청인데, 이것은 기회를 가진 자가 대체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세속적인 복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의 간구는 의미심장합니다, ‘샘물도 주옵소서.’입니다. 저는 이 두 번째의 간구를 통해 가장 중요한 본질을 잃지 않은 악사의 통찰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샘물도’에 쓰인 ‘도’ 라는 어조사 때문입니다. 악사의 통찰은 세속적 복이 아니었습니다. 더 중요한 샘물을 놓치지 않았다는 것은 박수를 받을 만 합니다. 헤브론, 드빌은 요단의 남서쪽의 네겝 지방을 의미합니다. 이 네겝은 건조한 사막과 산악지역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 물은 절대적인 삶의 필수요소입니다. 아무리 땅이 많고, 밭이 많아도 물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이것을 알았던 악사는 아버지에게 그 샘물을 달라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구하는 딸에게 오늘 본문의 마지막 15절 하반절은 분명히 보고합니다. “갈렙이 윗샘과 아랫샘을 그에게 주었더라” 저는 본문을 먼저 문자적으로 해석했습니다. 아버지를 기쁘게 한 악사는 건조한 팔레스타인에서 생명의 젖줄과도 같은 샘물을 위아래에 공급받게 되었다고 해석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러한 문자적인 해석보다 더 중요한 영적인 해석을 내리고 싶습니다. 이 해석은 신앙의 본질을 추구하는 자들의 목적과 방향성을 알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인 저와 여러분들이 잃지 않고 추구해야 하는 샘물이 무엇일까요? 요한은 이렇게 주님의 말씀을 남겼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3-14) 그렇습니다. 나의 주군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목회자들마다 작금의 국가적인 해석이 다릅니다. 사상과 이념에 따라 천차만별의 해석이 난무합니다. 백 번을 양보해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렇게 갈무리하고 싶습니다. 오늘의 이 비극은 예수를 무시하고 예수를 구하지 않는 시대의 절망적 결과라고. 해서 오늘 내가 섬기는 교회는 물론, 조국교회의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기도가 이렇게 고정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샘물도 주소서가 아니라 샘물은 반드시 주옵소서.” 라고. 샬롬의 은혜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