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단

제목[서평] ◑ 天國에 이르는 오직 한 길2024-03-27 11:00
작성자 Level 10

존. C. 라일 (씀) / 이 권우 (번역)

 "에녹이 하나님과 함께 걸었고, 세상에 있지 아니하더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셨음이라" (창 5:24).

 우리 가운데 누구도 천국에 가길 원치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리 자신이 믿음과 행함에 대한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있고 성경에 기초하지 않은 그릇된 소망을 가지고 있더라도, 또 세상에 마음을 두고 한 주를 보내며, 밖에서의 행실이 형편없더라도 다 천국에 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엄청난 변화를 겪지 않는 한 여러분 중 대부분은 결코 그곳에 갈 수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왕관은 좋아하나 십자가는 꺼려합니다. 영광을 구하나 은혜를 구하지는 않습니다. 행복을 추구하나 거룩을 추구하지는 않습니다. 평화를 외치지만 진리를 말하지는 않고 승리를 원하지만 싸우지 않으며, 보상을 바라지만 수고하지 않고, 경작하지 않고 추수를 기다리며, 거두기만 원하지 씨를 뿌리지는 않습니다. 이런 연고로 저는 여러분 중 대다수가 하늘에 이르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글쎄요, 그건 너무 신랄한 말씀입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너무 높은 척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말 어떤 사람이 구원받는지 진지하게 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저는 거기에 대해 간단하면서 일반적인 답을 제시하겠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과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 곧 모든 하나님의 성도들이 지나갔던 그 좁은 길을 걷는 사람들, 이들이야말로 영생을 가진 자요, 정죄에 들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참으로 하늘에 들어가는 길은 한 가지 길밖에 없습니다. 대속함을 받은 모든 성도들이 이 길을 따라 걸었고 지금 그들은 낙원에 있습니다. 또한 이 길은 여러분 자신이 기꺼이 따라야할 길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혜롭다면, 여러분이 공언하는 바와 같이, 참으로 생명을 사랑할 것이며 앞서간 선진들의 삶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의 삶 전체를 이끌었던 척도가 무엇이며, 그들의 결국을 눈여겨보고는 그들의 경험을 통해 유익을 얻고자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따랐던 그들을 여러분 또한 따르게 될 것입니다. 이제 저는 여러분에게 에녹의 삶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그는 성경에서 믿음과 인내로 약속들을 상속받은 초기 성도들 중 한사람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네 가지 주제로 나누어 설명하겠습니다.

 Ⅰ. 그가 살았던 시대의 특징은?
Ⅱ. 그의 인격은 어떠했는가?
Ⅲ. 그의 삶의 동기와 원동력은 무엇인가?
Ⅳ. 그의 결말이 어떠했는가?

 부디 여러분 모두가 자극을 받아 각자 자신의 상태를 부지런히 점검하게 되길 바랍니다. 에녹이 어떻게 하나님과 함께 걸었던가 듣고 참으로 돌이키는 시간이 되길 기도합니다.

 

 I. 우선 에녹이 살았던 시대 상황에 대해 알아봅시다.

사실 우리는 여기에 관해 그다지 많은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나마도 썩 좋지 않은 내용입니다. 그는 아담으로부터 일곱 번째 세대에 살고 있었으니 곧 홍수 이전의 시대입니다. 당시의 세상은 하나님 앞에 부패했고, 폭력으로 가득한 때였다고 합니다. 온갖 종류의 사악함이 그 시대를 지배했던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들은 그들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저속한 정욕을 따라 걸었습니다. 아무런 두려움이나 부끄러움 없이, 그들이 보기에 좋은 대로 행했습니다. 가인의 자녀들은, 동생 아벨을 살해한 그들의 아비 가인의 길을 따라,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았고, 탕자처럼 그 분으로부터 멀리 떠나 오로지 세상적인 일에만 전념했습니다. 마치 그들은 가능한 한 주님을 그들 마음에 두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이 땅을 그들의 안식처로 여기는 사람들처럼 여러 도시를 건설하여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들의 모든 애착을 땅에 있는 것들에게 두었고, 주 하나님과 어린양의 도시, 곧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에는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생의 업적들로 말미암아 유명해졌고 능숙한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어떤 이는 가축 기르는 이들의 조상이 되었고, 다른 이는 음악가들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의 양무리에 속한 양떼들의 조상으로 불렸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그들의 나그네 된 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의 노래로 삼은 이들의 조상이 된 사람은 없습니다. 동과 철로 여러 가지 것들을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데는 능통하였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주님의 선한 지식을 가르치지는 않았습니다. 요약하자면 그들 모두는 부자가 되고 결혼하고 권세를 잡는 법을 발견하는데는 능통하였으나 구원에 대해서는 무지하였고, 하나님과 그분을 두려워하는 것, 그분을 섬기는 것은 전무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가인의 자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은 항상 주위 사람들에게는 즐거운 이웃으로 친구로 남아 있었습니다. 괜히 영혼이니 천국이니, 지옥이니 하는 것들을 언급하며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따랐습니다. 세상은 그들의 생활방식으로 오염되고 더럽혀졌습니다. 결국 참 하나님을 섬기던 소수의 사람들은 구별된 노선을 따라 나머지로부터 분리되어 주님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분리도 오래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다음에 살펴보겠지만 소위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공언했던 그들이 신앙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과 결혼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은 믿지 않는 자들, 곧 아름답고 상냥하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적으로 남아있는 자들을 그들의 아내로 택했습니다. 그리고 (크리스쳔이 크리스쳔이 아닌 사람과 연합하게 될 때 거의 항상 그랬듯이) 곧 악한 자는 선한 자를 부패시키며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선한 자가 악한 자를 회심시키지는 못했습니다. 그러한 결합에서 태어난 가족들은 땅에 속한 관능적이고 마귀적인 모습으로 드러났고 순식간에 온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보십시오. 인간의 자연적인 성품이 얼마나 악으로 치우치길 잘합니까? 참으로 두려운 증거입니다. 그들은 범죄한 육체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눈앞에는 낙원이 있었고, 화염검으로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는 하나님의 천사들이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오만한 손으로 죄를 지었고, 세상 풍조를 따라 걸었습니다. 곧 먹고, 마시고, 심고, 집짓고, 사고 파는 일에만 매달렸을 뿐 경고 따위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말하길, "하나님? 그가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지? 그러지 말고 자, 우리 마음껏 즐기자구!"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롱당하지 않으십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심으로 자신의 종들을 통해 계속하여 그들을 권면하셨을지라도, 결국은 그들의 행위를 따라 갚으셨습니다. 그분께서 깊음의 샘들이 터져 나게 하시고 홍수가 세상에 임하게 하사 그들의 환락에 종지부를 찍었고. 여덞 사람을 제외한 모든 세상 사람이 익사하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조만간 여러분이 서 있는 이 땅에 심판의 불을 내리실 것입니다. 이것이 홍수 이전 세상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사악한 이 시대 중간에 에녹이라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함께 걸었습니다. 그 당시에 무엇이 있었습니까? 성경이 있었습니까? 아니면 기독교서적? 그때는 전도책자도 없었고 교회도 없었으며, 사역자도 없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나타나지  않으셨고, 구원의 길도 분명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복음의 빛도 멀리서 희미하게나마 비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신앙이라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한다는 것은 결코 그 시대에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신앙고백을 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악하고 간음하는 세대 가운데서도 지극히 높으신 분의 성도가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함께 걸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걸었다"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요? 이 말은 약하고 죄 많은 사람에게도 은혜가 얼마나 놀랍게 역사할 수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홍수 이전의 세상에서 "에녹은 하나님과 함께 걸었습니다."

Ⅱ. 이번엔 제가 에녹의 인격에 대해 말할 차례입니다.

여러분은 에녹이 하나님과 함께 걸었다고 들었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그것은 대단한 칭송을 나타낸 말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더 나아가 그것이 정확히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종종 제대로 뜻도 알지 못한 채 이런 저런 말들을 인용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좋지 않은 습관입니다. 저는 이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이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하나님과 함께 걷는 사람은 하나님의 친구입니다. 사람이 자연적으로 가지고 있는 창조주에 대한 적대감과 혐오감이 제거되고 그는 완전한 화해와 화평을 누립니다. 두 사람이 동의하지 않고 어떻게 함께 걸을 수 있겠습니까? 그는 동산 나무들 사이에 숨었던 아담과 같이 자신을 주님에게서 숨기지 않으며, 하나님과 지속적인 교제를 추구합니다. 그는 하나님과 홀로 함께 있는다는 것만 생각해도 불편해 하는 다수와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분과 함께 있어야 그는 행복합니다. 그가 하나님과 함께 있기를 원한 것은 그분과 같은 마음이 되고자 함이요, 그분과 같은 생각을 갖고 그분처럼 행동하며, 그분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고자 함입니다. 에녹은 그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과 함께 걷는 사람은 소중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는 그분을 아버지로 알고 그분을 사랑하는 것처럼,. 그분을 경외하며 그분 안에서 즐거워합니다. 모든 일에 있어 그분을 의지하며 어떻게 하면 그분을 기쁘시게 할까 늘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넘어질 때마다 참된 자녀다운 슬픔을 가지고 넘어짐을 마음 아파합니다. 그는 자기에게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더 잘 아신다고 믿으므로 무슨 일이 일어나건 간에 (건강이건 질병이건, 슬픔이건 기쁨이건, 부이건 가난이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상관없어, 하나님께서 보내신 일이니까" 에녹은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셋째로, 하나님과 함께 걷는 사람은 하나님의 증인입니다. 그는 주님 편에 서는 것을 결코 주저하지 않습니다. 단지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데 그치지 않고 의와 진리를 인하여 공공연히 그분을 증거하기를 원하며 또 그를 위해 늘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주인이시고 그가 그분의 종이라는 것을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을 실족케 할까 두려워하여 죄에 대한 경고의 음성을 낮추지 않습니다. 에녹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주사위는 이 악한 날들에 던져졌으나 어디 그가 그들 다수와 함께 하였습니까? 죄인들의 길에서 걸었습니까? "난,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말하며 조용히 지냈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생각은 그의 이웃들의 생각과 달랐습니다. 오직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것만을 생각했습니다. 세상을 기쁘게 아니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는 죄와 부패로 가득한 세상 안에 있었지만 세상과 분리되었고 오히려 세상을 향하여 증거의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는 세상의 소금과도 같고 어두운 곳을 비추는 한 가닥 빛과도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아, 그리고 그는 말씀을 평이하고도 분명하게 전했습니다. 그는 젊음과 유혹을 구실 삼지 않았습니다. 사랑 없다는 말을 듣는 한이 있더라도 입을 다물고 있음으로 사람들이 지옥으로 가도록 내버려두지 않았고 그들의 위험을 분명히 알렸습니다. 사람들이 마치 하나님도 마귀도 없는 것처럼 사악하고 부주의하게 살고 있을 때에도 세상을 향해 분명히 선포했습니다. "주님께서 일만 성도와 함께 오시나니, 이는 모든 사람에게 심판을 집행하시고, 경건치 않은 모든 자의 경건치 않은 모든 행위와, 경건치 않은 죄인들이 그분을 거슬려 말한 모든 거친 발언에 대하여 그들을 정죄하려하심이라"(유 14,15). 의심할 것 없이 그는 당시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 자요 그야말로 마음에 안드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증인으로 남아있었고 계속하여 진리를 선포하였습니다 : "주님께서 오십니다. 여러분이 듣건 귀를 막건 간에 그 모든 행위에 대해 계산할 날이 올 것이며, 죄는 반드시 처벌될 것입니다. 회개하십시오, 주님께서 오십니다." 이것이 그가 증거했던 바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함께 걸었기에 신실한 증인으로 남아있었습니다.

넷째로, 하나님과 함께 걷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방식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즉, 그분께서 우리에게 지침으로 주신 법을 따르는 것이요, 그분의 법령들을 우리  자신의 삶의 기준이요 상담자로 삼으며, 그분의 모든 명령들을 믿음과 행위의 올바른 잣대로 존중하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그분께서 잠시 동안 우리 앞에 둔 좁은 길에서 벗어날까 두려워하며, 비록 모든 것이 거꾸로 돌아갈지라도 그분의 소망의 말씀을 기억하고 곧장 앞으로 나아갑니다.

다섯째, 하나님과 함께 걷는다는 것은 그분의 얼굴의 광채 안에서 걷는 것입니다. 곧, 우리와 관계된 모든 일들이 그분의 눈앞에 벌거벗겨지고 드러나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사는 것입니다. 또한 그분에게는 결코 어둠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고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그분 앞에 부끄러움이 될 만한 그 어떤 것이라도 생각하거나 말하거나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은 성령님을 따라 걷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우리의 교사로 삼고 그분의 능력을 의지하며, 육체를 신뢰하지 않고 위에 있는 것들에 애착을 두며, 땅의 것들을 버리고, 영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나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과 함께 걷는다는 것은 이것들 말고도 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걷는다는 것은 자신이 그분의 긍휼의 부스러기조차도 받을 자격이 없음을 고백하며 겸손히 걷는 것입니다. 자신에게는 스스로를 도울 수 있는 어떤 능력도 없으며, 자신이 언제나 부족하고 패역함을 인정하고, 무익한 종으로서 그분의 은혜가 아니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신중히 행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를 얽매이게 하는 죄와 유혹들이 무엇인지 명심하고 거기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모든 장소, 직장, 그리고 동료들을 피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두에 대한 사랑으로 걷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과 사람에게나, 하늘에 계신 아버지 마음을 가슴 가득히 품고 모든 사람을(즉, 감사가 없는 자와 악한 자까지도) 친절과 애정과 온유함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걷는다는 것은 그분을 지속적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일요일만 그분을 섬기고 나머지 날들에는 그분을 잊어버리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이목을 의식하여 그들이 보는데서만 하나님과 동행해서도 안 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분과 함께 걸으며 사역자들이나 선한 사람들 앞에서 뿐만 아니라 자신의 집안에서, 집안 식구들 앞에서도 하나님과 함께 걸으며 선한 간증을 지켜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과 함께 걷는 사람은 스스로를 어떤 수준에 이르러 많은 열매를 맺은 사람으로 여겨 현재의 상태에 안주해 있지 않습니다. 그는 항상 전진하고, 매진하며, 은혜 안에서 자랍니다. 뒤의 것을 잊어버리고 온힘을 다하여 앞으로 나아가며, 받은 은혜 안에서 더더욱 풍성함을 누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까지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희미한 그림에 불과합니다.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싶지만 시간이 허락지 않는군요. "하나님과 함께 걸었다" 이것은 당시 에녹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는 말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남겨두신 소중한 기록입니다. 참으로 단순하면서도 중한 말씀인 것입니다. 당시에도 위대한 자, 지혜로운 자, 고상한 자들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 대해 남아있는 기록이라곤 그저 그렇게 살다가 죽었고 자녀들을 낳았다 정도입니다. 에녹만이 유일하게 하나님과 함께 걸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걷는 발걸음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그것은 우리에게 결코 떨어지지 않을 유일한 달란트요, 영원히 지속될 유일한 보화이며, 죽음 후에도 우리에게 남을 유일한 인격인 것입니다. 부도 명성도 존경도 한낱 거품으로 사라지게 될 그날, 모든 사람은 동등한 입장에 서게 될 것이며, 오로지 하나님과 함께 걸었던 사람은 그가 땅에서 아무리 가난하고 비천한 신분이었다 할지라도 능력있고 부한 사람보다 훨씬 더 존귀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먼저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적은 무리에 속한 모든 이여! 그대들에게 위로가 있습니다. 참으로 자신의 영혼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모두에게 위로가 있을 것입니다. 다른 이들은 대저택에, 궁전에 있으며 이 세상에서 칭찬과 명성을 누릴지 모릅니다. 하나 여러분에 관해서는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걸었다."고 하늘의 책들에 기록되어 있을 것입니다. 왕들의 왕, 주들의 주님께서 그들의 목자요, 그들의 안내자요, 그들의 동반자며, 그들의 친밀한 벗이 되어주시니 그 기쁨을 빼앗을 자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Ⅲ. 이제 저는 에녹의 그런 삶의 동기에 대해 몇 마디 적어야 하겠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함께 걸었습니다. 그러면 혹자는 묻겠지요.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런 삶을 살게 했을까요? 거기에는 어떤 비밀이 있을 까요? 그것을 알아야 우리도 나아가 그같이 행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 하나님께서는 이미 여기에 대해 히브리서에서 명백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믿음인 것입니다. 믿음은 그러한 훌륭한 열매를 내는 씨였고, 그의 거룩한 삶과 주님 편에서는 분명한 결단의 뿌리였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어떤 구원도 없으며, 믿음이 없이는 어느 누구도 하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제 이 믿음은 어떤 난해한 신비가 아닙니다. 그것은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전적인 신뢰와 순종입니다. 에녹은 자신이 아담의 자녀로서, 죄인으로 태어났으며, 하나님의 진노와 정죄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는 그의 첫 부모가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영생에 관한 모든 권리를 박탈당했고, 그들의 자손 중 한사람으로서 자신도 만물보다 심히 사악하고 속임이 가득한 마음을 물려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그저 태어나면서부터 경솔하고 쉽게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존재 정도로 생각하는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중 다수는 이 정도의 인식으로 만족하고 맙니다.) 더 나아가 그는 자기 안에 있는 부패한 마음의 원천인 옛 사람 아담을 보았습니다. 그는 참으로 자신이 비참한 죄인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에녹은 또한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구원의 길을 예비하셨다고 믿었습니다. 곧 그분께서 우리의 죄들을 짊어지시고, 우리의 범법들을 가져가시며, 뱀의 머리를 부술 한 위대한 구속주를 정해놓으셨음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는 이것이 없다면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에겐 어떤 구원의 희망도 기회도 없음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멀리 내다보았고 마음의 눈으로 앞으로 이 땅에 오셔서 세상의 몸값을 지불하기로 되어있는 메시야를 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모든 소망을 그분에게 두었습니다. 다시 말해 에녹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에녹은 하나님께서는 "불법을 차마 보실 수 없는 정결한 눈을 가지신"(합1:12) 완전히 거룩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었습니다. 어떤 이는 여기에 대해 반론을 제시할지 모릅니다. "당신은 지나치게 의롭군요. 주님은 그렇게 별난 분이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렇게까지 엄격할 필요가 있나 생각이 됩니다. 어떻게 사람이 계속적으로 자신의 길을 살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에녹은 결코 여기에 찬동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가 일 점의 불순물이라도 어떤 작은 불의라도 스스로에게 허용하면 어쩌나 두려워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스스로의 행위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던지 아니면 자신의 행위에 어떤 가치를 부여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는 이미 값없는 은혜에 의한 구원의 소망(엡2:5,8; 살전5:8)안에서 즐거워하고 있었습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엡 2:5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살전 5:8]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과 함께 걸으며 영생을 소유한 자는 또한 그분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해야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벧전1: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벧전 1:15] 그리고 에녹은 하나님께서 어느 날 이 세상을 심판하시고 각 사람에게 각자의 행위대로 갚아주시기 위해 오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비록 불법이 성행하고 많은 이들의 사랑이 식어지며(마 24:12), 모든 세상사가 마치 하나님께서 이 땅에 아무런 관여를 하시지 않는 것처럼 돌아갔지만, 그는 여전히 주님께서 아무도 예상치 못한 시간에 회계하러 오실 것(마18:23)을 믿었습니다.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 24:12. "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마 18:23]

믿음 안에서 그는 심판이 임박했음을 보았고 그것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하나님과 함께 걸었습니다. 그는 이 땅을 안식처로 삼지 않았습니다. 보이는 것들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남아있는(히4:9) 거처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히 4:9] 믿음으로 그는 그의 유일한 집이 하늘이며. 주님의 임재안 에서만 충만한 기쁨이 있음(시16:11)을 보았습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11] 이것이 에녹의 삶의 원칙이었습니다. 아, 그대도 이 같은 보배로운 믿음(벧후1:1)을 위해 간절히 기도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벧후 1:1]

이 믿음이 없이 그대는 결코 에녹의 길을 걸을 수 없으며 에녹의 결말에 이를 수 없을 것입니다.

 

 Ⅳ.마지막으로 에녹의 결말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본문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단순히 "그가 세상에 있지 아니하더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셨음이라" 라는 것입니다. 이를 해석하자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을 위해 특별한 방법으로 간섭하시기를 기뻐하셔서 죽음의 고통 없이 갑작스레 그를 이 세상에서 옮기셨다, 더 이상 죄와 고통과 슬픔이 없는 곳, 곧 모든 성도들이 만물의 끝을 기쁘게 기다리고 있는 복된 장소로 그를 데려 가셨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일이 일어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믿지 않는 세상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여주고자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삶을 유심히 관찰하시며, 그분을 존귀하게 여기는 자를 존귀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을 통해 사탄이 이브를 속였을 때 결코 그가 완전한 승리를 거둔 것이 아님을 모든 인간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즉, 인간은 믿음의 길을 통해 여전히 하늘에 갈 수 있으며 비록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지만,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고전 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2] 그렇습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함께 걸었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데려가셨습니다. 더할 나위 없이 놀랍고 위안이 되는 안전 보장이 여기 있습니다. 주님의 눈이 그분의 모든 자녀들에게 머물러 있다는 것과 하늘이 있으며, 다가올 삶이 있다는 것 그리고 의인을 위한 보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사람들이 그들을 비웃으며, 그들의 걸음은 촌스럽고 그들의 길이 비방 받으며, 그들의 진지함이 무시당한다할지라도 말입니다. 오, 하나님과 함께 걷는 이들이여! 그대들의 확신를 저버리지 마십시오. 잠시 후면 오시기로 하신 그분께서 오셔서 그대들을 영원한 안식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정말 당신이 자신의 영혼에 대해 염려한다면 참으로 하늘에 가길 원한다면, 평안히 죽고 영광 중에 일어나 의인의 회중에 들고자 하는 한 가닥의 바람이라도 그대에게 있다면, 먼저 스스로에게 이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보십시오. "나는 하나님과 함께 걷고 있는가? 나는 에녹과 모든 성도들이 걸었던 그 길에 서있는가?" 여러분 중 과연 몇 명이나 이 거룩한 사람들의 발걸음을 평안의 길로 인도한 살아있는 그 믿음을 소유하고 있을까요? 그들이 죄 가운데 살면서 하나님과 함께 걸었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을 존중하는 자들이 그분을 섬기는 일을 제쳐두고 이 세상일에 매인 채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그들이 생각없이 서로에게 "신경쓸 것 없어, 내가 감히 말하건데 우리는 결국 의롭게 될거야" 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 두신 은혜의 방편들을 그들이 어찌 소홀히 여기겠으며, 그것을 사용치 못하게 하는 핑계거리를 만들겠습니까? 그들도 소위 주님을 알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나 예수님을 본보기(벧전2:21)로 삼지 않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었습니까?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 2:21]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 자들은 틀림없이 하나님과 떨어져서 따로 걷는 자들입니다. 날마다 그분으로부터 멀어져, 속히 돌이키지 않는다면, 결국 그들은 지옥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저는 이 고통의 장소로 향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습니다. -- 이들은 틀림없이 하나님과 함께 걷는 자들이 아닙니다 -- 그리고 사랑이 많으시고 마음이 온유하신 주 예수님께서 팔 벌리시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봅니다. "나에게로 오라: 너희는 어찌하여 죽으려  하느냐? 그리하면 내가 능히 너희를 모든 죄로부터 깨끗이 씻으리라" 저는 이 모든 광경을 지켜 보지만 당신은 여전히 냉담하고 우유부단하며, 양다리 걸치고 있으니 그런대로 안전하다고 스스로에게 아첨합니다. 당신이 안전하다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성경적인 교회에 출석하고 있기 때문입니까?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까? 바른 복음의 지식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까? 단지 지혜로운 다섯 처녀와 함께 하고 있기 때문입니까? 이대로 그냥 있을 수 없습니다. 전 여러분에게 외칠 것입니다. 아니 그렇게 해야만 합니다. 사랑없는 자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저는 이것을 무릅쓰겠습니다. 어떤 방도로건 간에 여러분을 깨울 수만 있다면 여러분을 사탄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여러분의 마음들이 일깨움을 받고 에녹의 길에 들어서서 그의 믿음을 공유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결코 안식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하며 화제를 딴 곳으로 돌리려 하지 마십시오. 성경말씀으로 돌아가 그들이 증거 한 바를 보십시오. 완전히 속아 소경된 자들은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형벌은 영원하지 않다. 지옥이란 망상에 불과하다. 마귀가 있다는 것도 거짓말이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이 모든 것들이 진실이며, 가장 두려운 진리임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만을 가르치는 교회는 오로지 에녹이 걸었던 길, 그 길만을 제시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거기서 다른 길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혹자는 속으로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하나님과 함께 걷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야. 물론 내가 하나님에 대해 호의를 품고 있지만 나를 붙들고 있는 세상 밖으로 나가  버리는 날엔 모든 친구들이 우리에게서 등을 돌릴거야." 우리 정직해집시다. 이 말이 뜻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세상 전체가 경건해지면 그대도 그럴 것이지만 그때까지는 그렇게 살 필요가 없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당신은 두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당신이 단일한 마음을 갖길 원치 않는다면 당신은 결코 열심을 품을 수 없습니다. 세상 조류에 휩쓸려 결국 세상의 길을 따라 걷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에녹을 보십시오. 그의 마음이 본성적으로 당신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하나 은혜가 그를 강하게 했고 그 은혜는 동일하게 당신을 강하게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손은 결코 짧아지지 아니합니다. 은혜에 의해 그는 무려 300년 동안이나 하나님과 함께였습니다. 그 하나님의 권능이 동일하게 믿음을 통하여 당신을 구원에 이르기까지 지켜주시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짧은 칠십 년의 인생동안 말입니다. 그러나 이점만은 명심하십시오. 당신이 이 땅에서 성도가 될 수 없다면 하늘에서도 결코 성도가 될 수 없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어떤 희망도 남겨 두지 않은 채 문을 닫아 버렸다고 생각지 마십시오. 구원받는 이가 적고 그 길이 좁다는 것은 분명한 진리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쨌다는 것입니까? 당신을 그 길로 들어서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여러분 스스로 거기로 가길 거부하고 있으며, 믿지 않고 있으며 거기에 무관심하기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 에녹의 걸었던 대로 걷기 시작합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 오십시오! 그분께로 나아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요, 그분을 믿는 자는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당신의 옛 생활이 에서나 므낫세와 같고 유다나 막달라 마리아와 같더라도 그 모든 것에서 돌이켜 그 분께 나아오십시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하십시오. "주 예수님, 제가 죄를 지었나이다. 이제 돌이켜 온전히 주님을 신뢰하옵니다. 주님 저를 받으소서. 저의 믿음을 자라게 하소서."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내 보증이 되거니와 그분께서 당신에게  성령을 주실 것이요, 그 때 당신은 그분과 함께 그분 앞에서 그분을 따라 걷게 되며, 그분과 함께 안식하게 될 것입니다. 서둘러야 합니다. 당신의 다음 발걸음이 지옥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아직 거기 있지 않은 것을 주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러나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 당신은 대단히 위태로운 상태에 있습니다. 요르단 강이 눈앞에 있지만 방주가 없다면 당신은 결코 거길 안전하게 건널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걷는 자만이 그 방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이여!! 하나님과 함께 걸으십시오. 서둘러야 합니다. 그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마십시오. 젊은이건 늙은이건 죽는 것은 매한가지가 아닙니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젊은이들에게도 고귀한 영혼이 있습니다. 마귀는 여러분이 기도생활이나 성경말씀을 읽는 것을 게을리 할 때 무척 기뻐할 것입니다. 특히 마귀의 관심이 바로 여러분에게 있음을  명심하십시오. 젊은 시절동안 영혼에 대한 무관심으로 일관하게 할 수만 있다면 그는 여러분을 영원히 그의 소유로 만들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이 자리에 모인 사실이 하나님의 책들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으로의 초대를 거절함으로 오늘 이 자리에 모인 것이 오히려 여러분에 해가 되지 않게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 한 사람의 삶을 듣고 헛되이 흘려보내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땅이 계절마다 그 모습을 새롭게 단장하듯 당신의 옛 습관을 떨쳐버리고, 생명의 새로움으로 일어나십시오. 에녹이 하나님을 따랐던 것처럼 여러분도 에녹을 따르는 자가 되십시오. 우리 모두 대언자 에녹의 말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심판을 집행하신다." 아름답고 빛나는 이 지구도 불 타 없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혼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당신은 하늘 혹은 지옥에서 영원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이 교회 건물도 산산히 부서져 사라질 것이지만 그 주위의 무덤에서 잠자고 있는 자들은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뼈와 뼈가 맞추어져서 그들 모두가 왕좌 앞에 서게 될 것이며 그들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아, 주님께서는 이 시간 여러분 모두가 그분의 긍휼을 발견할 수 있게 하십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은 하나님과 함께 걸어야 합니다. 그럴 때 참으로 여러분은 믿음으로 살다가 예수님 안에 죽어 완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함께 여러분의 몫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