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적이며 수도원적인 거룩한 독서의 실천 Thomas Keating, 이경순옮김, Winter of 1998 (centering prayer 홈페이지에서) 고전적인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의 실천(기독교인들이 성령의 영감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믿는 성서 읽기)은 최근에 와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영성 훈련의 다양한 방법들과 향심(向心)기도(Centering Prayer)의 독특한 수련을 혼동하게 되었다. 아래의 몇 가지 구별들이 거룩한 독서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첫째, 성경 공부와 거룩한 독서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성경공부는 거룩한 독서를 충실하게 실천하기 위한 관념적 배경을 제공해 주는데 있어서 매우 유용하다. 둘째, 거룩한 독서는 개인적인 덕성 함양이나 격려를 위한 성서 읽기와는 다르며, 여러 가지 측면의 계시나 하나님 말씀의 성육신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알게 되는 것(단순히 성경지식을 얻는 것)과도 전혀 다른 것이다. 거룩한 독서는 오히려 이러한 성경 공부의 목표를 고양시키기 위한 방법이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거룩한 독서는 단순한 성서 읽기나 성자들의 삶과 행적을 다룬 영적인 서적을 읽는 것과도 다르다. 마지막으로, 거룩한 독서는 같은 시대에 함께 발전되어 온 대중 성서 기도문(Praying the scriptures in common) 낭독과도 다르다. 고전적인 거룩한 독서의 실천은 개인적으로 실천되었으며, 일정한 기도시간 동안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진행될 뿐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각 단계의 과정에 몰입하게 된다. 그러나 대중 기도의 모든 형식에서 요구되는 특별한 구조를 따르다 보면 거룩한 독서의 실천에 중심이 되는 성령의 운행하심을 제한하기 쉽다. 대중적으로 성서 기도문을 통해 기도하는 것은 일종의 "거룩한 독서의 기도서" 또는 "말씀의 기도서"로 간주되기도 한다. 대체로 거룩한 독서는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성서 구절을 3-4번 정도 반복해서 읽고 나면 2-3분 정도의 침묵시간을 갖는다. 수련자들은 침묵의 시간동안 성서의 내용을 지정된 방법에 따라 마음 속으로 적용하기 시작한다. 말씀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그 속에 있는 단어와 구절을 이해하려고 한다. 두 번째 읽고 나면 본문의 의미에 대해 깊이 묵상하게 된다. 세 번 읽고 난 후에 읽은 내용을 묵상하며 기도로 응답하게 되고, 네 번째 읽기가 끝나면 하나님의 현존 안에서의 쉼의 상태로 들어가게 된다. 묵상이 끝난 후에는 나눔의 시간을 갖는다. 어떤 경우에는 3번째나 4번째 읽기와 묵상 시간이 끝난 후에 나눔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매주 만나는 향심 기도 모임이나 구별된 시간에 대중 앞에서 성서 기도문을 낭독하는 시간들은 거룩한 독서를 실천하는 구성원들을 믿음과 사랑으로 결속시켜 주는 귀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고전적인 거룩한 독서의 실천 방법에는 수도원 방식과 스콜라 방식이 있다. 스콜라 방식은 계층의 형태에 따라 네 단계로 나뉘어지고 있다. 첫 번째 단계는 단어나 구절을 이해하고 본문내용에 초점을 맞추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는 자세로 성서를 읽어 내려가는 것이다. 이 단계를 “읽기”(Lectio,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음: 역주)이라고 부른다. 두 번째 단계는 본문내용 중에 마음에 와 닿는 단어나 구절을 선택한 후 깊이 묵상하는 것이다. 이 단계는 “명상”(meditatio, 하나님에 관한 우리의 지적활동과 상상: 역주)이라 한다. 세 번째 단계는 이러한 묵상에 대해 반응하는 기도로 “응답”(Oratio,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하는 정감적 기도: 역주)이라 부른다. 이러한 묵상과 응답을 통해 하나님의 현존 안에서의 쉼의 상태로 들어가게 되는데, 이것을 “관상”(Contemplatio, 하나님 안에서의 쉼)"이라고 한다. 이러한 거룩한 독서의 방법은 영적인 삶을 따로 구분하고 개인적인 경험을 배제하며 합리적인 분석에 의존하는 경향을 가졌던 스콜라 시대 초기인 중세 시대에 발달되었다. 거룩한 독서를 수도원에서 행했던 방식은 더 오래된 것으로 동방 교회의 광야의 교부와 어머니회에 의해 수련되어진 후 서방 수도원으로 전해졌다. 수도원적인 방법은 사고의 단계가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옮겨가는 스콜라식보다 더 관상적인 기도를 지향하고 있다. 이 방법은 관상기도에 들어가는데 실패하거나 적절한 성구를 얻지 못했을 경우에 좋은 수련방법이다. 향심기도 수련의 목적 가운데 하나는 근래에 수도원에서 조차도 지배적인 기도방법이 되어버린 광범위한 묵상에 전념하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분리시키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의지적인 어떤 특정한 행동과 반응에 훈련되어져 있어서 이런 과정을 따르지 않는 기도를 생각해 내기 어렵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대중 앞에서 성서 읽기 기도는 광범위한 묵상에 포함되며, 일반적으로 향심 기도한 시간 후에 “말씀의 기도서”(Liturgy of the Word)로 나아가는 것이 좀 더 적절하다. 결국 두 가지 수련은 나름대로의 완전성과 유일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 합쳐질 수 없다. 거룩한 독서의 수도원적인 실천은 선정된 성서의 구절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일정한 단계 또는 스텝이 없다. 그러나 네 개의 순간(moment)들을 가지고 있다. 이 순간들은 다른 순간(moment)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이것을 춤의 네 박자의 스텝으로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스텝의 순조로움이 아름다운 춤을 자아낼 수 있듯이 거룩한 독서의 네 순간을 통하여 하나님과 아름다운 영적 교제를 이룰 수 있다. 춤을 추면서 음악이 바뀔 때마다 스텝도 바뀌는 것을 상상해 보면 된다. 즉 거룩한 독서는 성서를 반복해서 읽으며 묵상으로 이어지고 묵상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정감적인 기도로 이어져 더 깊은 관상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바울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 16)라고 말씀하신다. 가령 성서의 한 부분을 읽을 때 이해가 되지 않을지라도 그 부분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읽어 보라. 그러면 이 말씀이 계속 마음 속에 남아서 집중하게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초기 수도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성경을 크게 읽었다. 그리고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나 문장을 선정하여 미리 정해진 개념이나 생각을 배제한 채 반복해서 들었다. 반복하여 들을 때 성령께서는 본문의 깊이와 의미를 더 넓게 깨달아 가게 하신다. 성서에 따르면 성령님은 우리에게 날마다 말씀하신다. “만일 오늘날 그의 음성을 듣기 원한다면 너의 마음을 강팍케 하지 말찌어다”(시편 95편). 수도사들은 그 성서의 구절을 이해하여 개념화시키거나 분석하려 들지 말고 단지 성서의 말씀을 듣고자 했다. 이런 방식으로 거룩한 독서를 수련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현존 안에서 쉬고 있는 상태인 네 번째 "순간"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고요한 내적 상태에서 들으려는 태도는 하나님 안에서의 쉼인 관상의 상태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 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경청함은 하나님의 현존에 대한 순수한 지식을 확대시켜 준다. 잠시동안 우리는 생각의 틀을 깨고 성서의 말씀을 우리의 내면의 말씀으로 깨닫게 된다. 깨달음들이 흩어질 때 다시 생각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만약 시간이 충분하다면 준비되어진 순서에 의해 더 많은 성서를 읽도록 한다. 거룩한 독서를 수도원적으로 실천하는 것은 항상 성령님이 이끄시는 기도와 함께 시작된다. 네 개의 순간들은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성서를 읽고 그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묵상에 반응하는 정감적인 기도로 응답하며 생각과 의지를 뛰어넘어 하나님 안에서 쉼을 얻게 된다. "묵상에 잠기는 것"은 성서에 나타난 하나의 단어나 구절 또는 문장에 머물러 있는 것이고, 듣는 능력을 확장시키기 위해 성령님께 우리의 인식을 열어놓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씀의 깊은 의미로 들어가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성령의 안목으로 통찰하는 것이다. 이것은 살아계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키워줄 뿐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실제적으로 사랑이 넘치게 만들어 준다. 우리가 성서의 구절이나 문장을 천천히 반복하면 반복할수록 깊은 통찰력이 생길 것이다. 예를 들어, 수련자가 예수님의 말씀 중 "나는 너를 종이라 부르지 않고 친구라 부르겠다"라는 말씀을 선택하였다고 하자. 이 말씀은 우리의 마음 깊숙한 곳에 예수님과 친구가 된다는 의미로 새겨지게 될 것이다. 그 순간 수련자는 자신이 의지적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지않고 단지 운행하시는 성령님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방법이 어떤 때에는 효과적으로 수행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단어나 구절을 통해 하나님 안에서 평안과 쉼을 얻는 것을 말한다. 거룩한 독서는 특별한 과정으로 우리에게 많은 유익을 가져오는 것으로 입증되고 있다. 거룩한 독서의 실천을 통해 얻게되는 효과는 하나님과의 일치이며 이것을 통해 하나님을 닮아가게 된다. 이것은 대화에서 마음을 나누는 공유의 형태로 바뀌게 되며, 또한 적절한 말씀과 형상 가운데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연합을 경험하게 해 준다. 단순한 침묵만이 아닌 고요함 속에서의 교통함이 이루어지게 된다. 영원 불멸의 성삼위는 하나님 안에서의 영원한 침묵 속에서 항상 나타난다. 성삼위는 그 분들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그들 자신 안에서 존재한다. 예수님은 하나님 안에서 만이 존재함을 느낄 수 있고 하나님은 예수님 안에서 존재하며 성령이 하나됨을 나타내신다. 그들은 별개의 역할로 나타나지만 하나로서 존재한다. 거룩한 독서를 통해 사람들은, 요한이 “그분이 없이는 어떤 것도 창조될 수 없고 존재할 수도 없다" 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모든 창조물과 사건 가운데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게 된다. 관상적인 기도를 통해 우리는 모든 창조의 근원과 관련하여 우리 자신의 한계와 편협된 세계관으로부터 탈피할 수 있게 된다. 그 결과 우리는 다른 사람의 느낌을 공유할 수 있고 온 우주의 창조물에 대한 기쁨을 맛볼 수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완전하심이 자신 안에 충만히 거하고 있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의 능력에 맞게 우리가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우리 안에서 충만함을 나타내신다. 이 충만함은 고요한 내적 침묵을 통해 개발되어져야 하고 거룩한 독서에 의해 수련되어져야 한다. 스콜라 형식은 개인적으로 또는 그룹으로 거룩한 독서를 배우기에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수련자들이 거룩한 독서의 수련방법에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경우, 조심스럽게 듣는 태도에 익숙해지므로 하나님의 쉼 가운데 들어가는 수도원적인 방법을 선택함이 좋을 것이다. 특정한 구절이나 문장을 깊이 묵상하며 기도로 응답하고 하나님 안에서의 쉼을 통해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거룩한 독서의 네 가지 순간들은 성서를 읽는 독자가 실제적이고 인격적인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마음에 감동을 받은대로 순종하도록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로 이끌어 가고 있다. 출처 / http://cafe.daum.net/teensheal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