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선 집사 지은이 카일 아이들먼은 미국에서 다섯 번째로 큰 교회인 켄터키주 루이빌 사우스이스트 크리스천교회의 교육 목사다. not a fan은 그의 첫 책이자 대표작이다. 이 책은 팬인가? 제자인가? 를 묻는다. 팬은 자기 삶을 조금도 희생하지 않은 채 예수님을 따르기 원한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어떤 손해를 보았는가? 예수님 때문에 삶이 조금 변하는 것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 삶을 뿌리째 뒤흔들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은 제자의 대가를 숨기지 않으신다. 모세가 바로 왕 앞에 서야했고, 노아는 하나님을 따르기 위해 뭇사람의 조롱을 견뎌 가며 방주를 지었고 다니엘은 하나님을 따른 죄로 사자 굴에 던져져야 했다. 팬은 아무런 대가 없이 모든 것을 주는 복음을 주문한다. 진정한 제자의 길을 회개 없이는 용서도 없고, 죽음없이는 생명도 없다. 행동하지 않는 믿음은 진짜믿음이 아니다. 예수님의 관심사는 헌신의 깊이이다 눅14:25-26 무릇 내게 오는 자는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그분을 따르려면 절대 한 눈 팔지 말고 전심으로 따라야 한다. 종교 활동을 잘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종교자격증 과시하지 말라 율법 조문이 아니라 정신이 중요하다. 종교적 부담이 아니라 은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짐은 가벼움이라 (마11:28-30 )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지 말라 자신의 힘을 의지하면 여지없이 깨진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예수님을 따를 수 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 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행1:8-9) 팬이 자기 힘으로 예수님을 따르려고 하지만 제자는 성령의 능력을 의지한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마7:13-14)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으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 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여도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1-23) 불같은 사랑으로 예수를 따르라 오늘 당신보다 더 좋은 것을 단 하나도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오한일서 4:19) 미친 듯한 사랑이야기 중에서도 최고는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좇으셨다. 이 터무니없는 사랑을 알면 우리의 마음이 녹아내릴 수밖에 없다. 하나님이 먼저 사랑해 주셨기에 우리는 그분을 사랑한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인생의 모든 근사한 권리를 포기하고 날마다 십자가 앞에 자신을 내려놓고 헌신해야한다. 나는 이제야 예수그리스도를 겨우 알아가는 상태에서 이 책은 나로 하여금 예수님과의 관계에서의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고민하게 하였고, 내가 예수님의 팬이 아닌 제자로서의 삶을 살기를 원 하는 데에 있어서 도전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으로는 좀 더 젊었을 때 예수님에 대하여 깊이 알고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였는가? 아니 제자로서의 삶을 살지 못했는가 하는 회한을 갖게 한다. 이제 나는 젊지 않은 나이가 되었지만 지금 부터라도 예수님의 팬이 아닌 하나님이 이끄시는 제자로서의 삶을 2017년도 세인교회의 표어인 하나님의 방식으로 살아내기를 실천함으로 시작하려고 한다.
우명숙 집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예수님의 제자인가? 라는 질문은 교회에 다니는가? 부모나 조부모가 그리스도인인가? 설교가 끝날 무렵 손을 높이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설교자의 기도를 따라해 본 적이 있는가? 부흥회 때 제단 앞으로 나가 본 적이 있는가? 성경책을 세 권 이상 갖고 있는가? 교회 주소록에 주소가 실려 있는가? 어릴 적에 여름성경학교나 성경 캠프에 가 봤는가? 헨드폰 벨소리가 가스펠송인가? 아니다. 예수님은 아무리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라고 자칭해도 정작 심판의 날에 ‘나는 너를 모른다 썩 물러가라’고 말씀하실 수 있다 가장 행복한 부르심 -나를 따르라- 팬의 사전적 정의는 ‘누군가를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다. 예수님의 팬도 많다 하지만 예수님이 원하시는 관계 중에 스타와 팬의 관계는 없다 온갖 혜택을 바라며 예수님의 주위로 몰려드는 팬들은 있지만 자신을 희생할 만큼 그분과 가깝지는 않다. 팬은 단순한 열광을 진정한 헌신으로 착각하고 예수님에 대한 지식을 깊은 친밀함으로 오해한다. 가장 고통스런 부르심 - 자기를 부인하라 누가복음 9:23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은 사느니라(마13:14) 제자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자신의 전부를 내놓는다. 예수님을 선택하는 삶에는 예외 조항이 없어야 한다. 예수님께 터치받고 싶지 않은 부분을 따로 떼어 놓고 주님과 협상하려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희생이 따른다. 고난 없이 십자가를 질수는 없다. 주님의 은혜로 십자가를 지고 죽어야 한다. 자신의 삶을 내려 놓을 때 비로소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삶을 발견한다. 가장 충격적인 부르심 - 와서 죽으라 제자는 예수님이 지시하시면 나는 ‘어디든지’ 가고 변명하거나 꾸물대지 않고 ‘언제든지’행하며 ‘무엇이든지’ 전부를 드린다. 하지만 팬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따르는 길을 위험하고 불확실한 여행으로 묘사하셨기 때문에 선뜻 따라 나서지 못하고 두려워 주저앉는다. 여기까지 이 책을 읽는 동안 여러 번 ‘나는 그저 팬에 불과하다’라는 생각이었다. 그 많은 날들을 단순한 열광을 헌신으로 착각하고 예수님에 대한 지식의 깊이를 친밀함으로 오해했고 예수님을 선택하는 삶에 예외조항을 두었으며 희생 없이 회칠한 무덤같이 편하게 웃으며 교회 다니는 것이 주님 앞에서 항상 기뻐하는 삶으로 착각했다. 이런 내 모습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래 나는 팬에 불과하다! 그러서 어쩌라고?’하며 책을 덮어 버리고 싶을 때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행동’이 아니라 ‘정체성’의 문제라고 썼고 예수님은 열두제자의 행동을 변화 시키기 것보다 그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정체성을 주시는데 집중하셨다. 예를 들어 ‘어부’낡은 정체성을 지우고 ‘사람을 낚는 어부’라는 새로운 정체성으로 그들을 부르셨다. 그들의 명찰에서 ‘세리’라는 정체성을 지우고 ‘제자’라고 쓰셨고 사울을 아예 바울로 개명시키셨다 제자의 정체성을 가지면 제자의 삶을 산다. ‘내 이름은 우명숙이고, 나는 제자다.’
고승우 전도사 신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 잘 다니던 군대에서 전역했다. 모두들 정신이 나갔다고 했다. 그때 나의 멘토가 되었던 군선배가 있었다. 그 선배도 동일한 고민을 했지만 아직도 군에 머물고 있다. 사실 이것이 나에게 가장 큰 훈장이다. 적어도 하나님의 사역자로 살기 위해서 55세까지는 보장 받을 수 있는 군을 나왔다는 것은 적어도 내 삶을 드렸다고 자랑할 만한 증거다 이렇게 은연중에 생각했다. 지독한 교만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그런 나를 만나서 역경을 무릅쓰고 결혼하고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며 출산과 복직을 반복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개인의 삶이 전혀 없이 10년을 함께하며 지금도 묵묵히 제천 땅에 내려와서 수고하고 있는 아내를 생각해 보면 우리 부부 중에 진짜 예수님의 제자는 아내였다는 고마움과 깨달음을 얻어 가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삶이 바뀌는 것이고 전적으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 수반되어야 하는 길이다. 말로는 주님 지신 십자가를 내가 지고 따라가겠다고 하지만 나의 삶의 영역에서 아직도 양보하지 않은 부분들이 무수히 많이 있는 걸 안다. 예수님을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이 나에 대해서 정말 아실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만큼 헌신하고 있으니 적어도 이 정도는 해주셔야 하는 것 아니신가요? 예수님과 딜을 하려고 하게 된다. 예수님은 와서 죽으라고 말씀하시는데 전혀 죽지 않은 나는 여전히 내 자존심과 고집을 꺾지 않았다. 사역자로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들을 길러내는 것이 소망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항상 소수의 헌신된 제자들을 통해서 역사하셨기에 전부를 걸고 예수님을 따를 수 있는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공동체를 세우는 것이 나에게 주신 소명이다. 그러나 나부터 제자가 되고자 한다. 우선 내 자신을 비우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내 자신의 비움을 계속적으로 훈련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내 자신의 결단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나의 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유일한 우선사항임을 마음에 더욱 깊이 새기려 합니다. 오직 예수님 따르는 제자의 삶이 마지막 날 내가 너를 도무지 모른다 라고 예상치 못했던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유일한 길임을 생각하고 다 드렸다고 생각하는 교만함을 회개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제자로서의 삶을 걸어갈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앞으로의 사역에 있어서 세속적인 인기에 연연하여 성도들에게 제자로서의 영적 부담감을 주지 못하고 달콤한 유사 복음을 전하는 거짓된 삯꾼은 되지 않도록 나를 이끌어 주시길 기도할 것이다. 물론 오늘부터 당장! 그리고 남김 없이, 후퇴 없이, 후회 없이 말이다. 팬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로서 행복한 길을 걸어가는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소망하며 글을 마칩니다. 황진선 집사 책의어미에 적힌 ‘예수님의 관심사는신앙의 연수가아니라 헌신의깊이다.’라는 짧은 문구에 나는 어떤 사람인가? 생각하며 책을 들었다. 그래 나는 어떤 사람인가?... ‘당신은 예수님의 제자인가?’ 라는 질문을 던져두고, 저자는 제자이면서 제자가 아닌 팬의 모습을 낱낱이 파헤쳐 예를 들며 보여주고 있다. 어느 하나도 나의 모습이 아닌 것이 없어 찔림이 강했다. 책을읽으며 들었던 가장 큰 울림은, 신앙의 길에 어찌 들어섰는지 모르게 들어선 나의 모습은 익숙해진 환경과 익숙해진 문화 속에 어쩌면 의심하지 않고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그대로 그냥 받아들인 후 정통성을 외치던 바리새인들과 다를 게 없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책을읽다 보면 각 Chapter에 Message를 나타내는 bullet표기된 부분이 있다. 그 중 하나로 ‘제 힘으로 신앙생활을 하려다가는 제풀에 쓰러지고 만다. 녹초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라고 씌여 있는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은 신앙생활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겪는 냄비근성을 꼬집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내 의지에 따라 불타던 열정은 끈기 없이 식어버리고, 금새 또 편안해진 우리들의 일상으로의 돌아가는 모습은 주님의 뜻에 따라서 온전히 죽지 못하고 나의 의지를 여전히 내세움에서 비롯되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나 또한 그러지 않다고 부정할 수 없었다. 글속에 소개된 많은 사연들은 나와 다른 것이 하나도 없었다. 고난 없이 십자가를 지려고 하고, 어쩌면 나는 나의 희생 없이 늘 나를 사랑하시는 온화한 하나님과 예수님만 바라보려고 하는 게 아니었을지 그런 팬의 모습이 아니었을 지 깊이 생각하게 했다.
책을통해, 온전한 보혜사 성령님을 나의 안에 모시고 이끄심에 순종하며 사는 삶, 나의 안에…라는 깊은 뜻을 다시 한번 되짚게 하셨다.어렵지만, 부르심에 늘 응답하고 내 삶을 던져 믿고 따라가는 제자의 삶을 살기 위해 늘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