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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크리스천 연합 신문 12번째 기고문2024-06-04 17:44
작성자 Level 10

제목: 바보임에 틀림없습니다.

본문사사기 2:16-23

 

몇 년 전미국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비블리컬 신학교에서 구약을 교수하는 데이빗 램이 쓴 내겐 여전히 불편한 하나님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세 가지로 요약한 것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① 매력적이시다② 인격적으로 관계를 맺으시는 분이다③ 선하신 분이다. (위의 책, p,214) 이렇게 말하면 많은 독자들 중에 지나친 비약이라고 반론하는 분들도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왜냐하면 왠지 모르게 구약의 하나님은 신약의 예수님에 비해 상대적으로 권위적이고무섭고두려운 하나님의 상이 먼저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필자같이 설교를 하는 현직 목사는 이런 이유 때문에 대체적으로 신약을 은혜의 책으로 해석하고구약을 율법의 책으로 접근하려는 경향이 있어서 램이 말한 세 가지 성품의 구약의 하나님을 수용하는 것은 그리 쉬운 결정이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그렇지만 이런 대다수의 구약의 하나님 이해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고 할지라도 필자는 램의 말을 빌려 이렇게 주장하고 싶은 자세에서 물러서고 싶지 않습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너무나 바보 같을 정도로 선하시고나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싶어 하시는 참 매력적인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바보라고 평해서 불경의 죄를 짓는다고 누군가가 필자에게 공격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분명히 하나님은 바보 같은 분이십니다본문으로 여행해 보십시다짧은 지면 관계로 본문 구절의 자세한 석의(釋義)가 어려운 것이 유감이기는 하지만 가장 중요한 포인트만 언급한다면 본문 16-23절은 3장부터 펼쳐질 사사기를 기록한 신명기 역사기자의 독특한 사관인 나선형 하강이라는 순환기 역사(배반심판회개구원)의 그림자를 보여주는 텍스트입니다사사기 기록에 의하면 이런 순환기 역사의 반복이 7번에 걸쳐 등장합니다그런데 이 7번에 걸친 역사의 반복에서 눈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일하심이 보입니다그 중에 하나의 내용이 본문 18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사사들을 세우실 때에는 그 사사와 함께 하셨고 그 사사가 사는 날 동안에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대적에게 압박과 괴롭게 함을 받아 슬피 부르짖으므로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셨음이거늘” 이 문장에서 설교자인 필자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은 단어는 돌이키셨음이거늘’ 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나함’ 입니다원래 나함’ 이라는 이 단어의 문자적인 의미는 한숨을 깊이 내 쉰다.’는 의미입니다본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님께서 성이 나신 상태임을 역사가가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왜 화가 나셨습니까사실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하여 확인하시고 또 확인하셨던 가나안 입성 뒤의 이스라엘 신앙공동체의 하나님을 향한 배신의 염려가 현실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은 가나안으로 이스라엘을 이끄시겠다는 당신의 계약을 충실히 실천하셨는데 도리어 이스라엘이 버젓이 하나님과 맺은 계약을 파기한 것 때문입니다. 17절 본문을 읽어보십시다. “그들이 그 사사들에게도 순종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다른 신들을 따라가 음행하며 그들에게 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던 그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길에서 속히 치우쳐 떠나서 그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더라” 사정이 이 정도라면 하나님은 계약 파기를 한 이스라엘을 향하여 원천무효를 선언하셔도 무방합니다그런데 하나님은 본문 19-23절에서 완전 계약 파기를 선언하지 않으시고 이스라엘을 고통스럽게 하겠다고 경고성 메시지만 남발(?)하십니다이스라엘이 섬긴 우상들과 내쫒지 않은 가나안 거민들로 하여금 가시 역할을 하게 하시겠다고 엄포만 놓으십니다결정적인 은혜가 엿 보입니다결국에는 하나님이 고통을 피하기 위해 방편의 이스라엘의 표피적 회개를 보시고 기다렸다는 듯이 나함하셨습니다본문을 보면서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무엇을 말입니까?

 

● 하나님은 바보이심에 틀림이 없습니다.

 

안타까움으로 매일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이스라엘이지만 그들이 당신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고 회개의 흉내만 내더라도 못 이기신 체 하시고 당신이 먼저 뜻을 나함’ 하시는 바보이심에 틀림없으십니다재야 크리스천 학자인 한완상 교수는 바보 예수에서 바보를 바로 보고 바로 보살펴주는 사람이라고 재해석했습니다. (위의 책, p,20) 가슴에 담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만이 아니라 나에게도 그렇게 바보이십니다그런데 그런 하나님 때문에 필자는 눈물짓습니다그래서 그런지 오늘따라 로마서 5:8절은 더 크게 제 동공을 뜨겁게 확장시켜 줍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키리에 엘레이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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