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요즈음 참 좋아하는 국회의원이 한 명 생겼습니다. 민주노동당 소속 이정희의원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저는 개인적으로 목사이기에 정치적인 노선에 있어서 중용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에 견지하고 있기에 정치적인 당적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목사가 진보적인 생각을 갖고 있어서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을 지지한다고 우려하는 분들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런 염려는 기우이심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노당 소속의 이정희의원을 좋아하기 시작한 것은 아주 단순히 그녀의 의정활동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국세청장 후보자에 대한 안사 청문회를 우연히 보다가 정말로 짜릿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권력의 비호 하에서 마음대로 불법을 저지르면서도 각종 기관의 장으로 버젓이 임명되는 현실에서 불법을 관행이라고 항변하는 세무행정의 최고봉에 오른 자를 향하여 분명한 법리적인 자료들을 갖고 서민들의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 주며 폐부를 찌르는 것과도 같은 명쾌한 질문으로 불법을 고발하는 것을 보면서 정직과 올곧음이 왜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각인하는 귀한 은혜(?)를 경험하게 해 주었던 의원을 발견하고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저 사람이 대선에 나오는 한 표를 기꺼이 던지겠다고."
이 사람은 세속 권력에서 종이 지지하는 이정희의원입니다.
저는 또 한 명의 이정희라는 사람을 지지합니다. 종이 이 분을 지지하는 이유는 가끔 저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데 종의 마인드와 아주 비슷한 한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 미쳐있기 때문입니다. 표현이 나이브하고 거친 것 같아 다른 표현을 써볼까도 고민했지만 이 말보다 더 좋은 표현이 없기 때문에 그냥 쓰기로 했습니다. 어떤 목사님께서 자신의 저서에서 '신앙의 무모함에서부터 시작된다.'라는 표현을 쓴 것을 본 적이 제 기억에 또렷이 있습니다. 그 분이 표현한 '무모함'이라는 단어는 맹목적인 단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언급된 무모함은 '계산하지 않는 순결함'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등록하여 편도 300km나 되는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달려오는 이정희집사의 사역은 물론 제일 먼저 종을 개인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에서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목사는 연약한 인간인지라 언제든지 실망의 대상으로 전락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거주지를 제천으로 이사하여 정착지를 옮기고 아직은 발령이 나지 않은 상태이기에 울산에서 제천까지 사역을 위해 매 주마다 달려오는 이정희집사님을 해석할 수 있는 여지는 세인의 지체로서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 행복한 것을 물론이고 앞에서 언급한 '계산하지 않는 순결함'없이는 정말로 가능하지 않은 일이지 않겠습니까? 한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는 섬기는 교회의 성도가 어떤 의미에든 떠나갈 때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이 있습니다. 반대로 한 심령이 하나님 교회의 지체로 들어오는 것은 그 찢어진 가슴을 꿰매어주는 감격이 있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도저히 인간적인 이성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결단으로 세인의 사역자로 서서 불편함이 아니라 영적인 만족함으로 힘 있게 종의 동역자로 서 준 이정희집사는 민주노동당 이정희의원과는 비교할 수 없는 담임목사의 지지자입니다. 그래서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남은 한 가지 기도제목 '이정희집사의 제천으로의 발령'을 위해 중보를 부탁하고 거리에 시간과 물질을 낭비하지 않고 감격으로 사역할 수 있도록 우리 세인지체들의 간절한 중보를 부탁드립니다.
근래 '이정희'라는 이름은 세속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종을 행복하게 하는 이름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