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망각의 동물인지라 시나브로 벌써 이렇게 세월이 흘렀는데 산 사람은 산다고 그렇게 세월의 빠름을 잊고 살아오다가 지난 토요일 소천 1주기를 맞이했습니다. 아버님께서 6,25 참전용사셨고 국가유공자이시다 보니 유해를 이천 호국원에 모신 뒤에 가족들과 함께 1주기 추모예배를 드라고 돌아왔습니다. 아버님이 소천하신 뒤 지난 1년 동안 종에게 개인적으로 인생의 큰 틀이 바뀌는 어간이었기에 순간순간 정말로 힘이 들고 어려웠던 시간들을 보낼 때는 호국원에 들려 아버님께 막내아들로 돌아가 하소연도 하고 어리광도 부렸던 시간도 가졌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내적인 괴로움을 느낄 때는 아버님을 찾아가 토로하고 위로받고 싶어 했습니다. 아버님을 뵈러 갈 때마다 아버님은 넉넉함으로 항상 맞아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버님의 품이 그리울 때가 많았습니다. 아버님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납골함 밑단에 이런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육군 소위 이복성 出 1924년 10월 2일, 卒 2008년 9월 26일" 유독이 들어오는 단어가 '卒'이라는 단어입니다. 인생이라는 것이 유한하기에 반드시 사람은 삶을 졸업할 날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살아가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인데 정작 현실에서는 왜 이리도 빡빡한 아귀다툼의 현장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가 하루를 살았다는 것은 졸업하는 그날을 향하여 하루를 더 갔다는 의미인데 종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졸업하는 날은 생각지도 않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바울이 언급한 에베소서 5:18절을 기억하십니까?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바울이 말한 이 구절에 사용된 '아끼라'는 단어는 헬라어 'exagorazw'(엑사그라조)의 번역입니다. 이 단어는 원래의 뜻이 '어부가 물고기를 낚싯줄에 걸린 물고기를 건져 올릴 때'를 말하는 단어입니다. 다시 말하면 수많은 시간의 연속선상에서 그 시간이 가장 나에게 유익한 시간으로 만들어지도록 노력하는 자만이 그 시간을 아끼는 자가 된다는 의미이겠지요. 막내아들이 인도하는 아버님 1주기 추도예배에서 이 말씀을 어머님을 비롯한 식구들에게 전했습니다. 절대로 멈추어주지 않는 시간의 흐름에서 세월을 아끼는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고 독려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또 하나 종 역시 그렇게 살아야 하겠다는 나름대로의 결단을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천 호국원에 모셔진 영령들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나름대로 몸을 바쳐 최선을 다한 분들입니다. 그래서 국가에서 그 뜻을 기리기 위해 최대의 예우를 갖추어 모시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그리스인들이 세월을 아끼고 나에게 남겨진 시간동안에 최선의 삶을 살아서 후에 우리가 졸업하는 그 날 하나님께 인정받는 귀한 주인공들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말입니다. 아버님 소천 1주기에 나지막하게 그러나 깊이 말씀하시는 아버님의 당부를 듣는 귀한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