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주연이 될 것인가? 조연이 될 것인가? 본문: 사사기 4:17-22 사사기 4:9절을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이르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러나 네가 이번에 가는 길에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 하고 드보라가 일어나 바락과 함께 게데스로 가니라” 마지못해 가나안 전투에 참여한 바락에게 드보라가 예언한 말씀입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바락이 이 전투의 결과, 주연이 되지 못할 것에 대한 암시입니다. 바락은 이미 군사적인 대결로는 이길 수 없는 기손에서의 싸움에서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강력한 군사력의 최고 지도자였던 패장 시스라는 무용지물이 된 병거에서 내려 도망 길에 오르게 됩니다. 도보로 도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주군인 야빈이 있는 북쪽 게데스를 향하여 도망을 치고 있었습니다. 도망하던 중, 겐 족속의 사람이었던 헤벨의 장막 근처에 도착했습니다. 시스라가 이 집을 택한 이유는 시스라의 주군인 하솔 왕(가나안 왕) 야빈과 겐 사람과는 평화조약을 맺었던 사이였기 때문임을 본문 17절이 알려줍니다. 이런 정치적인 고려로 인해 시스라는 아무런 두려움이 없이 그 집에 들어간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 집의 안주인이었던 야엘이 시스라에게 안심하여 집으로 들어오라고 초청을 하는 우호적인 분위기였습니다. 본문 18절을 보면 야엘이 시스라를 ‘나의 주’ 라고 호칭할 정도로 호의적이었습니다. 어디 이 뿐입니까? 19-20절에 기록된 대로 물을 달라는 요구, 망을 보라는 요구에 순종합니다. 동시에 야엘은 불안에 떨고 있는 시스라를 숨겨주는 듯한 행동까지 보입니다. 이불을 덮어 준 것입니다. 본문 21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런 야엘의 반응 때문에 의심을 내려놓은 시스라는 깊은 잠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깊이 잠드니’ 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라담’ 은 살짝 잠이 든 상태를 말하는 단어가 아니라 ‘정신을 차릴 수 없도록 기절한 상태의 숙면에 든 상태’ 를 말하는 단어입니다. 어느 정도로 야엘이 그를 안심시켰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가 깊은 잠이 든 것을 확인한 야엘은 방망이와 말뚝을 가지고 시스라가 잠들어 있는 방으로 들어가 그의 관자놀이에 말뚝을 정확하게 박아 그를 처단합니다. 이렇게 야엘이 20년 동안 갖은 패악과 고통을 이스라엘에게 안겨준 시스라를 죽임으로서 가나안과의 전투는 종료됩니다. 21절까지의 본문 해석이 끝났지만 필자와 독자인 저와 여러분은 어떤 면에서 본문 해석의 가장 압권이라고 할 수 있는 22절에 더 주목해야 합니다. “바락이 시스라를 추격할 때에 야엘이 나가서 그를 맞아 그에게 이르되 오라 네가 찾는 그 사람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매 바락이 그에게 들어가 보니 시스라가 엎드러져 죽었고 말뚝이 그의 관자놀이에 박혔더라” 사사기 기자는 바락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시스라를 발견하게 되었음을 알립니다. 그는 나름대로 대승하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보고 기분이 들떠 있었고 혁혁한 공을 세워 나름대로 이 전쟁의 영웅으로 서고 싶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최선을 다해 시스라의 행방을 찾았을 것이고, 다행히도 시스라의 행적과 신병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겐 사람 헤벨의 집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야엘이 그의 신병을 확보하고 있다는 기쁜 소식에 바락은 야엘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집에 도착해서 시스라를 체포하려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바락은 엄청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관자놀이에 정확히 말뚝이 박혀 죽어 있는 시스라의 시체를 보게 된 것입니다. 그를 체포하든지 아니면 그를 자기의 손으로 처단하여 민족적인 영웅의 반열에 서든지 둘 중의 하나를 기대하고 찾아온 야엘의 집에서 그는 드보라가 예언한 ‘네가 영광을 얻지 못하리라’는 의미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전쟁의 영광은 야엘에게로, 바락은 시스라의 시체를 떠안게 되는 수모를 겪게 된 것입니다. 말 그대로 송장을 처리하는 신세로 전락한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 정말로 중요한 영적인 교훈을 지금까지의 해석을 통해 찾고 싶습니다. *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는 현장에서 조연이 아닌 주연이 되십시다. 열왕기하 2:7절을 읽다가 웃픈 감동이 저에게 임했던 것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선지자의 제자 오십 명이 가서 멀리 서서 바라보매 그 두 사람이 요단 가에 서 있더니” 엘리야의 영적 리더십이 엘리사에게 넘어갈 때, 같은 선지학교 동문들 50명의 족적은 ‘제자 50명’ 이라는 익명의 조연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다.’의 이름으로 역사의 정중앙에 데뷔한 엘리사는 주연이었습니다. 시체 처리반장으로 전락한 바락과 같은 조연이 아닌 야엘과 같은 주연으로 훗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역사의 현장에서 믿음으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