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교회 개혁’이 한국 교회의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기독 출판계의 신간과 베스트셀러 목록에 ‘교회 비판서’가 빠지지 않는 것은 그 방증이다. 그러나 수많은 비판서 중 교회의 자성을 이끌어낼 만큼 생산적인 비판이나 논의를 다룬 책은 드물다. 게다가 교회를 향한 애정 어린 권고를 넘어, 교회의 본질을 왜곡하는 자극적인 비판만 가득한 책도 있다. 이런 비판들은 평온을 깨는 것을 매우 불편해하는 크리스천들에게 불신을 더욱 키우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만 가져다 줄 뿐이다. 그런데 최근 출간된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는 그간의 책들과 사뭇 다르다. 저자인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김두식 교수는 신학자도 목회자도 아니며, 신앙의 연륜을 자랑할 만큼 나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오죽하면 젊은 평신도가 나섰겠나.’하는 시각도 있지만, 김 교수는 ‘절망’만을 이야기 하고자 책을 쓴 것이 아니다. 누구보다 교회를 향한 애정이 깊은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결국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희망’임을 알 수 있다.
김두식 교수는 인터뷰하기 힘든 인물이다. “5년 동안 인터뷰 안 했습니다.”라는 한 마디로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을 손쉽게(?) 거절하기도 한다. 그래도 서면인터뷰나 유선인터뷰만큼은 누구보다 친절하게 응한다는 소문에 희망을 걸고 김 교수에게 대면인터뷰를 몇 차례 요청했다. 결국 2월 22일 출판 기념 강연회에서 김 교수를 만나 며칠 뒤로 인터뷰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약속 장소는 대구 경북대학교 김 교수의 연구실. 마침 그날은 경북대 졸업식에 폭우까지 쏟아져 교내 분위는 어수선했다. 김 교수도 학부보다 조금 일찍 개강하는 로스쿨 수업 준비로 분주해보였다. 그는 현재 교수로 재직 중이지만 전에는 군법무관과 서울지검 서부지청 검사를 지낸 법조인이다. 그리고 2005년 제45회 한국출판문화상 교양부문 저술상 수상작이자 여기저기서 필독서로 꼽는 <헌법의 풍경>(2004)의 베스트셀러 작가기도 하다.
군법무관 시절,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의 군사 재판에 참여하면서 문제 의식을 갖게 된 김 교수는 <평화의 얼굴>(2007)의 전신인 <칼을 쳐서 보습을-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기독교 평화주의>(2002)라는 저서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이야기하게 된다. “어려서부터 이단에 대한 생래적 거부감”을 지녔다고 고백할 정도로 보수 교단의 성도인 그는 이 책을 통해 사람들에게 점차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였을까?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다룬 <평화의 얼굴>를 필두로, 법조계와 법조인의 어두운 이면을 파헤친 <헌법의 풍경>, <불멸의 신성도시>(2009)와 교회 비판서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2010)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위험부담이 커 보이는 주제들뿐이다. 그는 ‘법조계의 이단아’로 불렸을 정도로 누구나 다 하는 이야기보다는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남들보다 한발 앞서가는 사람을 세상은 이단아로 불렀듯이 김 교수 또한 그랬다.
책 읽기를 좋아하시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많은 책을 접했고, 초등학생 때 이미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ier) 목사의 최후에 관한 기록 <죽음 앞에서>를 읽을 정도로 조숙했다. 기독교 가정의 막내로 자란 그는 신앙생활도 열심히 해왔다. 교회에 열심히 다닌 것은 물론이고, 고등학교와 대학에서는 기독학생회 회장을 맡았고 ‘예수전도단’에서 훈련을 받았다. 또한 친구와 함께 서울지역 기독 법대생 모임을 만들고, 사법연수원에서는 신우회 조직에 힘쓰기도 했다. 게다가 교회에 대한 애정과 의문으로 신학생 못지않을 정도로 신학 서적을 탐독한 시절도 보냈다.
김두식 교수의 삶에서는 신앙과 함께 아내 박지연(이화여대 특수교육학과 교수) 씨를 빼놓을 수 없다. 법조인이던 시절, 우연히 기독교 잡지에 실린 박지연 씨의 인터뷰 기사를 보는 순간, ‘이 여자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렵게 연락이 닿아 만남을 가졌지만 법조인을 전형적인 출세주의자로 여긴 아내는 그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다. 결국 김 교수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써온 성경 묵상 노트를 마지막 카드로 제시했고, 아내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 결혼 후에는 미국에서 유학하는 아내의 뒷바라지를 위해 검사직을 사임하고 2년간 가사와 육아를 담당했다. 요즘이야 남자 주부가 흔하다지만, 당시만 해도 독특한 이력이었다. 그러나 공부를 잘 하고, 목표가 분명한 아내를 위한 일이기에 어려운 선택은 아니었다. 그 뒤에는 김 교수도 코넬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아 교단에 서게 됐다. “오늘의 제 위치까지 오기 위한 고비마다 하나님이 함께하셨다는 확신이 있어요. 사법고시부터, 법조인, 교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경력이 내가 잘해서 잘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검사라는 직함도 비교적 편하게 내려놓을 수 있었고요.” 김두식 교수는 자신의 신앙을 언제, 어디에서나 자연스럽게 내보이는 사람이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라면 색안경부터 끼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에, 사회 전반에 이름을 알리고 있는 이가 대중을 상대로 교회 이야기, 예수 이야기를 마음껏 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김 교수는 사회과학 서적을 쓸 때도 종교적인 시각을 반드시 집어넣고, 신앙 이야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강연회에 초빙되어서도 신앙 간증을 하곤 한다. “저의 중요한 존재의 기초이기 때문에 신앙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고는 제 자신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라는 김 교수의 말만큼이나 이제는 대중도 그와 신앙을 분리하지 않는 것 같다. 비기독교인에게도 거부감 없이, 때로는 유쾌하게 다가가는 기독교인이라는 점은 분명 김두식 교수만의 큰 장점이자 축복이다. 그런 그가 교회 문제를 다룬 책을 낸 것은 어쩌면 크게 놀랄 일도 아니다. 이번에는 교회만을 집중적으로 다뤘지만, 몇 권의 사회과학 저서를 통해 이미 간헐적으로 다룬 바 있기 때문이다. 그는 “마음 한구석에는 누군가 아주 심한 비판이나 인신공격을 하고 나올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도 있었어요. 이 책은 쓰고 싶어서 쓴 책이 아닌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었던 책이에요.”라고 고백한다. ‘교회 가서는 계속 사회 문제를 이야기하고, 사회 가서는 계속 교회를 이야기 하는 사람’이라는 지인의 평가를 언급하며, “제 노력이나 재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발언권을 주셨고 그런 위치에 묘하게 놓이게 되면서 일종의 사명감이 생긴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그는 현재의 교회를 ‘영화관 교회’라 일컬었다. 목사의 개인기 충만한 설교를 교인들은 내리 듣기만 하는 구조에, 주말만 되면 주차 전쟁을 치르는 모습이 영락없이 영화관 풍경을 닮았기 때문이다. ‘영화관 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목사의 힘이 너무 비대해지고, 중재자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 “목사님들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성도들의 수준이 상당히 높아요. 의식이 깨어있는 성도도 많고, 성경에 대한 이해가 뛰어난 성도도 많고요. 그렇지만, 목사님들은 여전히 수십여 년 전 그랬던 것처럼, ‘내 말에 무조건 따르라’고만 이야기하시죠.” 한 명의 목사의 지혜는 천 명의 교인의 지혜를 압도하고, 계시는 한 사람만 받는 것이라는 현재의 구조는 분명 변화해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교인이 한 명이든, 십만 명이든 간에 발언권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한 명 밖에 없는 구조에서는 풍성한 은혜는 묻히게 되고 목사님은 목사님대로 처절하게 은혜로운 말씀을 찾아 헤매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모두가 간증을 나누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린 경험을 나누기 시작하면 교회는 더욱 풍성해 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교회 공동체의 본질을 잃어가는 것도 지적했다. 김 교수는 어려운 가정형편에 시달리던 한 후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후배에게 교회의 한 장로님이 하나님의 좋은 일꾼이 되라면서 아무 조건 없이 오랜 기간 경제적 지원을 해줬고, 덕분에 현재는 반듯한 성인으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동네 작은 교회들에 감동적인 사연이 많았어요. 그러나 현재는 교인들이 대형교회로 옮겨가게 되면서 이런 이야기를 듣기가 굉장히 어려워졌어요. 큰 교회당 짓는다는 이야기 들으면 아무런 감동이 없잖아요? 예수 믿는 공동체라면 감동적인 이야기가 늘 넘쳐야 하는 건데, 지금의 교회는 돌봄의 공동체를 잃은 모습이죠.” 결국 잃었던 것을 회복하고, 감동을 주는 공동체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또한 “기독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달라져야 함”을 강조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이, 삶의 현장에서 남들과 똑같이 욕심을 추구하고 있어요. 심지어 그 욕심에도 하나님이 한편이 되어 주신다는 이상한 믿음까지 더해진 그런 인간형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죠.” 그는 기독교인이라면 남을 밟고 일어나려는 모습을 접고 더 많이 섬기고 더 많이 양보해야 한다고 했다. “하나님은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주라고 말씀하셨어요. 사실 인간은 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하지만 그것을 궁극적 목표로 삼는 사람과 목표조차 없이 사는 사람과는 분명 차이가 있어요. 기독교인이라면 그런 목표를 갖고 살아야죠.” 그는 교회의 ‘내일’을 위해 ‘오늘’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책에서는 4세기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독교 공인’부터 16세기 ‘종교개혁’과 ‘중세의 이단’ 등 ‘어제’를 통해 ‘교회됨’을 잃게 된 오늘의 모습을 이끌어낸다. 인문학적·신학적·문화적 지식을 총동원한 다양한 문제 제기와 그 대안을 보면, 교회의 문제를 맹목적으로 들추려는 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신도들은 교회 문제는 교회 안에서만 해결해야 하고, 목사님을 위해서는 기도만 해야지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이에요. 이미 많은 신도들 사이에서는 바뀌어야 한다는 것, 바뀔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의식이 있기 때문에 저는 그 안에서 희망을 봐요.” 진정한 교회 공동체를 향한 이야기를 계속 나누는 것 자체로도 교회가 많이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김두식 교수.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는 무엇을, 누구를 비판하자는 것이라기보다, 저를 들여다보는 책이에요. 저의 내면에 있는 욕망들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저에게 ‘나를 보고 예수님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하는 사람이 되어 있는가’를 자문하는 것이죠. 결국 자기반성하는 책이라고 봐주면 좋겠어요.” 그의 말처럼 모든 기독교인과 교회의 자기반성을 통해 예수님이 우리에게 남겨주신 진정한 교회 공동체로 다시금 살아나길 기대해본다.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김두식 교수> / 주간 기독교에서 발췌
---- 요즘 김두식 교수의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세인의 지체들에게도 일독을 권하면서, 스터디북으로 필독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하여 추천해 올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