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단

제목[목사님컬럼] 구약학자와 그가 연구한 구약 연구를 참고하여 설교하는 목사2024-04-19 11:19
작성자 Level 10

본문 23-24절을 읽겠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의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가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

형들이 양을 치는 곳에 요셉이 이르자 그들은 갖고 있었던 물리적인 힘을 같이 동원하여 요셉의 채색옷(케토넷 파심)을 벗기고 그를 보르’ 즉 구덩이에 던져버립니다요셉의 인생은 그곳에서 마감될 운명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이렇게 긴장된 순간을 묘사한 본문 마지막 구절에 도착하자 한 단어가 대단히 크게 보였습니다그것은 우리나라 성경에는 빈 것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레크였습니다장로교신학대학교 하경택 교수는 이 대목을 이렇게 주석했습니다.

이 구덩이는 우기에 물을 저장해 놓았다가 건기에 사용하는 물 저장소 역할을 한다다행히 요셉이 이 구덩이에 던져졌을 때 그곳은 비어 있었다그래서 요셉은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하경택, “정경적 관점에서 본 창세기 2”, 322)

신학교에서 구약을 가르치는 교수는 레크에 대해 해석하며 이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다행스러운 일

그럴 겁니다왜 아니 그러겠나 싶습니다하지만 구약학자들이 연구한 자료들을 살피고 공부하면서 현장에서 바로 그 구약을 설교하는 목사는 신학교 교수가 보는 관점보다는 해석의 스펙트럼이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현장이라는 정글에서 목회하는 목사는 구약 교수가 접근하기 어려운 여백이 있어야 한다는 자존감 때문에 저는 레크’ 즉 빈 것이라는 단어를 보다가 울컥했습니다비어 있는 구덩이를 보며 현상적인 일 다행히로 해석하지 않고 하나님의 조각하심으로 읽었기 때문입니다요셉이 던져진 도단의 구덩이는 왜 비어 있었을까둘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요셉을 살리기 위해 그 보르에서 이미 물을 빼셨든지아니면 물이 없는 보르를 미리 택하셨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하지만 이 둘 중에 그 어느 것을 선택해도 다가오는 것은 하나입니다하나님이 베푸신 감동입니다.

(세인교회 10월 11일 수요저녁 예배 원고 중에서)

 

10월 11일 수요일 저녁에 교우들과 함께 나눈 창세기 120번째 강해에 담은 원고다작년에 한희철 목사가 쓴 예레미야와 함께 울다』 독서를 마치고 북 리뷰에 이렇게 썼다내 서평 노트에 담겨 있는 원고를 소개한다.

 

예레미야 38:12절을 다시 읽어보자.

구스인 에벳멜렉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당신은 이 헝겊과 낡은 옷을 당신의 겨드랑이에 대고 줄을 그 아래에 대시오 예레미야가 그대로 하매

한희철 목사는 이 구절을 이렇게 해제했다.

웅덩이에 빠져 있었던 예레미야는 남아 있는 힘이 없었을 것이다밧줄만 잡고 올라오다가 놓칠 것이 자명했다낡은 옷을 허리에 두르게 하고그것을 밧줄로 묶는다면 따로 힘을 쓰지 않아도 도움이 될 것이다헝겊과 낡은 옷헤어지고 찢어진 옷 조각바로 그것이 웅덩이에 빠진 예레미야에게 전해진 하나님의 손길이었다하나님의 손길로 확인하는 헝겊과 낡은 옷’, ‘해어지고 찢어진 옷 조각들이라는 말 앞에 눈물을 그치기 어려웠다.” (한희철, “예레미야와 함께 울다”, 271)

 

해어지고 찢어진 옷 조각들이라는 말 앞에 눈물을 그치기 어려웠다.”

 

모든 목사가 한희철 목사처럼 이렇게 영적인 촉수가 예민한 것은 아니다물론 본문을 해석함에 있어서 치열한 노력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다고 해서 모든 목사들이 이런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적어도 하나님의 열심하나님의 치열하신 도움하나님의 극진한 사랑하심 등등에 영혼의 촉수가 예민하지 않은 자는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느낄 수 없는 감동의 절정이기에 그렇다한 목사처럼 말씀을 읽다가 눈물이 나는 감동은 그것을 내게 주신 은혜로 1인칭화시키는 목사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어제 수요 저녁 예배 원고를 나도 울면서 썼다그래서 감사했다아직은 주님 때문에 울 수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