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6일 목요일 성서 일과 묵상 본말이 전도되지 않아야 한다. 오늘의 성서 일과 시편 148편, 역대하 24:17-24, 사도행전 6:1-7, 7:51-60 꽃물 (말씀 새기기) 사도행전 6:1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마중물 (말씀 묵상) 오늘 성서 묵상 일과는 많은 생각과 성찰을 요구한다. 예루살렘 교회가 부흥했다. 어느 정도 부흥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잣대는 오순절 성령 체험 이후 베드로가 선포했던 설교로 인해 3,000명이 회심했다는 근거를 기초로 제시한다면 예루살렘 교회 부흥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예루살렘 교회이니 수적으로 감당하기가 버거울 정도로 공동체의 변화를 체감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 성서 일과에 번역된 한 단어에서 불안감을 느낀다.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교회 공동체가 구제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어찌 보면 구제는 교회를 교회답게 만드는 역동적 요소일 것이고, 교회의 존재 목적일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사도행전 저자는 구제를 ‘행한다’라고 쓰지 않고 ‘빠지므로’라고 기록했을까? 헬라어 원어 성경에는 ‘빠지므로’라는 단어를 ‘파라데오레오’라는 단어로 기록한다. 이 단어의 뜻은 ‘빠지므로’가 아니라, ‘무시하다’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런 과정이 그려진다. 적어도 예루살렘 초대 교회는 ‘구제’라는 사역을 주의 방법이 아닌 차별적 수단으로 사용했다는 해석 말이다. 언제나 교회 사역이 목적을 위한 사역이 아니라 수단을 이루기 위한 도구가 될 때, 그건 변질이다. 이 변질이 예루살렘 교회 분열을 가져올 뻔했던 인자로 작동했다. 사역을 위한 교회는 위험하다. 교회는 언제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본질을 추구하는 공동체이어야 한다. 이것에서 흔들리면 아무리 좋은 사역이라고 해도 위험하다. 말 그대로 본말전도이다. 나는 교회에서 진행하는 구제 사역에 대해 전적으로 지지하며 동의하는 목사다. 하지만 구제가 교회의 본질은 아니다. 교회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고 그 복음의 능력으로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다. 순서가 바뀌지 않아야 한다. 교회가 끝까지 지켜가야 할 시금석이다. 두레박(질문) 나는 세인 교회를 섬기며 본질에 집중하는 목회를 하고 있는가? 손 우물 (한 줄 기도) 하나님, 목회의 집중력을 주옵소서. 주님에게서 멀어지는 위험에서 빠져나오게 하옵소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이웃을 향한 마음이 일어나도록 주님께 집중하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두 렙돈이 한 달 생활비가 되는 내 옆의 이웃이 있는가 살피게 하옵소서. 해서 저들을 돕는 사역에 소홀하지 않게 하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