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제목주님, 이 땅에 평강을.2024-12-24 08:34
작성자 Level 10

20241224일 화요일 성서 일과 묵상

 

주님, 이 땅에 평강을.

 

오늘의 성서 일과

 

이사야 9:2-7, 시편 96, 디도서 2:11-14, 누가복음 2:1-14

 

꽃물 (말씀 새기기)

 

이사야 9:6-7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마중물 (말씀 묵상)

 

오늘 성서 일과는 우리가 너무 익숙하게 대림절에 사용하는 본문이다. 아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연결시켜서 해석해도 그리 어색하지 않은 본문이다. 해석자의 몫이니 그렇게 해도 부정적 적용이 아니기에 비평하기가 조금 거북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예언자가 이사야가 본문에서 갈파한 원래의 의미를 왜곡하는 것은 조금 심한 적용이다. 히브리어 원문에 의하면 오늘 성서 일과에 인용된 동사들의 시제는 과거형이다. ‘났다’, ‘매었다’, 등등이 그렇다. 1 이사야가 활동했던 연대가 주전 700, 학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주전 648년에 남 유다의 왕이 될 요시야를 두고 이사야는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라는 호칭은 포로기 이전 시대에 왕에게 붙이는 용어들이다. 적어도 예언자는 북쪽을 멸망시킨 앗수르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고, 남 유다를 향해 하나님이 보내실 위대한 왕에 대하여 예언함으로써 남 유다를 격려하고 싶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 왕이 요시야로 설정된다면 일련의 해석에 타당성이 부여될 수 있다. 성서 본문 해석은 여기까지만, 복음주의 교회에 있는 성도들은 이런 본문 이해를 전제하여 한 가지, 예언자가 주는 메타포에 또한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남 유다를 향한 희망의 노래는 곧 교회와 성도들을 위한 희망이요, 노래일 수 있다. 그 희망과 위로를 예수 그리스도로 적용하는 것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오늘은 성탄절 전 날이다. 아귀다툼으로 매몰된 대한민국,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내 사랑하는 대한민국, 흑암이 완전히 소멸되고 아기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강의 노래가 다시 울리기를 기대해 본다. 그 희망이 2025년을 휘감기를 기대한다. 예언자가 요시야에게 희망을 걸었던 것처럼, 나는 아기 예수 그리스도께 희망을 건다. 이 땅에서 목사로 사는 이유다.

 

 

두레박(질문)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는가?

 

손 우물 (한 줄 기도)

 

하나님, 이 땅에 다시 위로부터 임하는 평화가 안착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나비물 (말씀의 실천)

 

나도 희망을 노래하자. 예수께서 주시는 평화를 노래하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불우한 이웃들이 성탄절에 울지 않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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