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8일 목요일 성서 일과 묵상 나도 그럴 수 있다. 오늘의 성서 일과 시편 34:1-8, 사무엘상 28:20-25, 로마서 15:1-6, 시편 130편, 사무엘하 13:37-14:24 꽃물 (말씀 새기기) 사무엘상 28:20 사울이 갑자기 땅에 완전히 엎드러지니 이는 사무엘의 말로 말미암아 심히 두려워함이요 또 그의 기력이 다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루 밤낮을 음식을 먹지 못하였음이니라 마중물 (말씀 묵상) 사울이 엔돌에 살고 있던 신접한 무당을 찾아갔다. 죽은 사무엘을 불러내 그에게 자신이 처한 난감한 형국을 극복해 보고자 하는 간절함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사무엘을 만났다. 신학적으로 이게 말이 되나 질문할 수 있는 테제이기는 하지만, 오늘 성서 묵상에서 논하고 싶지 않고 다른 스펙트럼으로 이 내레이션에 접근하고 싶었다. 그래, 이게 사람이지! 라는 소회 말이다. 사울의 악행과 불신앙은 이미 정평이 났다. 그가 정적인 다윗을 수없이 죽이려고 광분했던 일, 제사장들을 무자비하게 죽인 일, 정권 유지를 위해 심지어 아들 요나단과 살해하려던 비도덕적 일탈 등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악행의 주인공이 사울이다. 블레셋이 집요하게 공격해 나라의 존재가 흔들리는 말년의 고통이 임하자, 애증의 대상이었던 죽은 사무엘을 만나고 싶어 엔돌로 찾아간 사울, 나는 그런 사울에게 비난을 퍼붓기보다는 인지상정의 측은지심이 느껴졌다. 왜? 그게 인간이고 사람이니까. 나는 근래 ‘홀로움’에 천착한다. 목회자가 겪어야 하는 태생적 한계는 극도의 고독이며 외로움이다. 심지어 평생의 동반자인 아내에게까지 숨겨야하는 목사만이 간직하고 숨겨야 하는 내용물들이 현장에는 비일비재하다. 해서 택한 것은 ‘외로움’을 ‘홀로움’으로 승화시키자는 노력이다. 유감스럽지만, 사울에게 느껴지는 감정적 느낌은 사무엘이 죽기 전에 그와 함께 영적으로 동역했다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다. 하지만 엔돌로 찾아간 사울을 나는 탓하고 싶지 않다. ‘홀로움’까지 자신의 삶을 이어가지 못한 나약한 인간의 모습은 누구에게나 보이기 때문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해서 오늘 성서 일과는 사울에 대하여 매섭게 노려보는 신앙적 눈초리보다는 가슴 한편에서 아릿해지는 연약성에 同痛의 마음을 가져본다. 두레박 (질문) 사울을 매번 비난하는 자인가? 손 우물 (한 줄 기도) 목회 현장은 답이 없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평가보다는 품음을 갖게 하소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쉽지 않은 일이지만 사울의 마음을 언제나 나 또한 가질 수 있음을 인정하고 품음이라는 목회를 감당해 보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주님, 이상선 목사를 긍휼히 여겨주시고, 안예은 권사님도 회복되게 하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