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23년 1월 29일 (다섯째 주) 지역 셀 사역2024-04-23 17:49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설 명절에 했던 음식 중에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은 레시피 공개하기  

 
경배와 찬양 (WORSHIP)
● 찬송가 341장: 십자가를 내가 지고
●  복음성가: 하나님은 너를 만드신 분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제목 : 천박해지면 안 됩니다.
● 본문 : 창세기 25:27-34
1) 에서와 야곱이 본문에서 보여준 천박한 행위에 대하여 논해 보자.
⓵ 에서에 관하여
⓶ 야곱에 관하여  

2) 삼손이 나실인 임에도 불구하고 보여준 천박성을 사사기 14:1-3절을 근거하여 점검해 보자.


  

3) 적용하기
⓵ 신앙의 천박성을 탈피하기 위한 레마는?
⓶ 자기중심성(I-centrism)의 내용들을 고발해 보자.
⓷ 하나님 중심성으로 살아가기 위한 내 결단의 내용들을 선언해 보자.  

 
사역하기 (WORK)
1. 찬양: 셀 리더 교육 시간에 정해진 찬양 (복음성가,        찬송가 공히 한 곡 씩)
2. 아이스 브레이크 (얼음 깨기)
3. 기도: 인턴부터 시작하여 주마다 셀 원들이 순서 맡음          (철저하게 기도문을 준비할 것)
4. 나눔: 한 주간의 삶에 대한 나눔을 실시–미리 준비한          지체가 진행, 3-5분을 넘지 않게 한다.
5. 간증: 사역자가 있으면 실시 (없으면 하지 않아도 됨) 
6. 말씀 증거: 수요일 저녁 예배 설교 피드백
7. 적용: 말씀에 비추어 한 주간 살아야 할 내용을        간단하게 제시. 셀 리더 교육 시간에 정해진
        지침 진행
8. 중보기도 
⓵ 태신자 섬김에 최선을 다하고 그들에게 성령의 감동이 임하도록
⓶ 셀 원들의 기도 제목을 위한 중보
⓷ 세인 공동체를 위한 중보기도
⓸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을 위한 중보기도 
9. 치유기도 : 합심치유기도 - 대상자 앞으로 초청
10. 헌금 및 헌금 기도 : 셀 리더
11. 축복기도 : 셀 리더

사역 내용

1. 태신자 정하기 확인하여 명단 제출하기 (부교역자에게)
2. 설 명절 에피소드 나누고 기도제목 나누기
3. 섬기는 피선교지 위해 합심으로 기도하기
4. 주일 셀 사역을 위해 서로 격려하기
5. 공 예배 범하지 않기 독려하기 
6. 담임목사의 목회 승리를 위해 중보하기

  

 
설교요약 (SUMMARY)
본론)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성경 이야기입니다. 에서와 야곱은 태에서부터 싸운 치열한 투쟁 가운데 태어난 형제였습니다. 27-28절을 읽겠습니다.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별로 의미를 부여할 만한 메시지 보이지 않는 텍스트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비집고 들여다보면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 본문입니다. 아이들이 장성했다고 창세기 기자가 표현했는데 아이로 번역한 히브리어 ‘나아르’는 어린 아이부터 장성한 어른까지 표현하는 단어이기 때문에 에서와 야곱의 나이를 추측하는 것이 어렵지만 적어도 장자권이라는 테제에 대한 이성과 감정의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본문 정황을 전제한다면 이 두 형제의 나이는 약 20 세로 추측해도 무리는 아닌 듯합니다. 에서와 야곱은 장성한 나이가 되자 각기 다른 직업을 선택했습니다.

감정적인 기질이 다분했던 에서는 사냥꾼이 되었고, 야곱은 조용한 성격의 이기적인 사고방식에 투철했기에 가축을 키우는 자로 성장했음을 27-28절이 암시해 줍니다.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내용은 이삭과 리브가의 부부 관계가 그리 썩 원만해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각기 사랑하는 아들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장자를, 어머니는 차자를 편애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대립적인 구도를 갖고 있었던 에서의 가정은 본문에 기록된 사건으로 인해 순탄하지 않은 미래를 암시해 주기도 합니다.
29-33절을 읽겠습니다.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서 심히 피곤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사냥을 마치도 돌아온 에서는 배가 고팠습니다. 마침 동생이 붉은 것을 요리하고 있었던 것을 보았던 에서는 그 붉은 것을 달라고 동생에게 말합니다. ‘붉은 것’이러고 번역한 히브리어 ‘하아돔’은 그 어원이 ‘에돔’과 같습니다. 우리가 이미 아는 것처럼 에서의 별명이 에돔인데 ‘붉다’는 의미의 단어입니다. 훗날, 에서의 후손들을 가리켜 에돔 족속이라고 지칭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붉은 것을 본문 34절은 팥죽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배가 고파서 죽을 것 같이 시장한 에서가 동생에게 팥죽을 요청한 것입니다.
장자의 권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형의 발뒤꿈치를 붙잡을 정도로 장자의 대한 탐욕이 대단했던 야곱은 기회를 놓칠세라 붉은 죽 즉 팥죽을 제공하는 대신 조건을 걸었는데 우리가 잘 아는 장자의 권리였습니다. 대단한 기회 주의적인 발상을 갖고 있는 야곱의 태생적 얍삽함이 보이는 대목입니다. 동생의 요구에 에서는 내가 배고파 죽게 되었는데 장자의 권리가 대수냐는 태도를 보이며 대단히 쿨하게 장자의 권리를 양도하기에 이릅니다.
이런 과정의 끝을 창세기 기자는 본문 마지막 34절에서 의미 있는 글을 적시함으로 마무리를 합니다.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이 구절 중에 눈 여겨 보아야 하는 단어는 ‘가볍게 여겼다.’입니다. 히브리어 ‘바자’는 단순히 가볍게 여기는 정도가 아니라 모욕하였다는 의미의 단어입니다. 그러기에 유진 피터슨은 이 구절에 나오는 가볍게 여겼다는 표현을 ‘내동댕이쳤다, 던져 버렸다’로 번역했습니다. 얼마나 장자의 권리를 우습게 여겼으면 이렇게 했겠나 싶을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우리는본문이해를통해두사람이행한행위가전혀다르지만,동시에본문정황으로볼때 에서의행위에 대해 비난하고자 하는 무게감이 창세기 기자를 통해 훨씬 더 강하게 느껴지지만 기실, 도진개진인 두 형제의 행위를 만나게 된다는 점에서 닮은꼴을 보게 됩니다. 에서가 행한 장자의 권리를 내동댕이친 행위나, 얍삽하게 형의 단점을 이용해서 장자의 권리를 매수한 야곱의 행위에서 만나게 되는 영적 교훈이 있습니다.

※ 천박성에 대한 경고입니다.

본문의 에서와 야곱에게서 찾을 수 있는 것은 분명히 천박함입니다. 그렇다면 이 영적 천박성의 기초가 무엇 이었을까요? 두 형제가 자행한 천박한 행위는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자기중심주의(I-centrism) 입니다.
에서는 육신적인 배고픔을 모면하려는 일차원적인 자기중심성이 장자의 권리라는 영적인 축복 권을 무시하게 된 것이었고, 야곱은 장자의 권리를 차지하기 위해 남의 약점을 건드린 전형적인 이기주의자였기에 두 사람 모두 자기중심주의라는 패를 던짐으로 천박한 인간의 본성을 여지없이 드러낸 것입니다. 창세기 기자는 본문을 통해 패배자는 에서임을 밝히고 싶었을 것입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구속사적인 맥락을 보면 에서는 철저한 패배자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구속사의 흐름 속에서 축복의 권리를 차지한 야곱을 본문 해석에 국한하여 해석할 때 그를 승리자라고 해석하고 싶은 마음은 설교자인 제게 조금도 없습니다. 야곱도 승리한 것처럼 보이는 패배자였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의 승리자는 자기중심성을 버리고 하나님 중심성으로 사유의 장을 이동하는 사람입니다. 이제 봄이 되면 사사기 2편의 내용을 통해 다시 보게 되겠지만 삼손에 얽힌 사사기의 초창기 보고는 대단히 아픈 교훈을 줍니다.

사사기 14:1-2절을 소개합니다.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고 올라와서 자기 부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맞이하여 내 아내로 삼게 하소서 하매”
블레셋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보기 좋게 잊어버리고 블레셋으로 내려갔다가 한 여자를 만난 삼손은 다시 소라로 내려와 부모에게 다짜고짜로 그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압박합니다.

사사기 14:1,2절에서 두 번에 걸쳐 연이어 반복된 표현이 있습니다. ‘여자를 보고’(1절),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2절) ‘보다’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라아’는 일반적으로 ‘보다.’(to see)라는 의미로 제일 많이 쓰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눈요기하다’라는 ‘쾌락적인 의미의 보기’(looking with pleasure)라는 뜻으로 더 많이 쓰이는 단어입니다.
다시 부연한다면 전후 문맥으로 볼 때 본문 1,2절에서 삼손이 딤나의 여인을 본 것은 ‘욕정적인 봄’이었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해 주는 대목입니다. 그러자 당연히 삼손의 부모들은 반대합니다. 부모들의 반대 이유는 이방인 과의 혼합 결혼을 율법에서 금하고 있다는 것이 근거였습니다. 사사기 14:3절 전반절입니다.
“그의 부모가 그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의 딸들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맞으려 하느냐 하니”

하지만 삼손은 부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의 떼씀은 사사기 14:3절 하반절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삼손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 여자를 데려오소서 하니라”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라는 번역을 원어에 가깝게 번역하자면 ‘그녀가 내 눈에 쏙 들었기 때문이다.’로 번역할 수 있다. 영어성경 NRSV는 이렇게 번역했다. “Get her for me, because she pleases me.” (나를 위해
그녀를 갖게 해주세요. 그녀가 나를 즐겁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민족을 구원해야 하는 의미를 망각한 채, 여자를 정욕의 대상으로 보고 그 여자를
아내로 삼으려고 했다는 말입니다. 나실인이라는 정체성은 하나님께 구별 된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는 것입니다. 포도주나 독주를 입에 대지 말아야 했고, 시체를 멀리해야 했으며,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아야 했고, 부정한 것을 먹지 말아야 했던 자가 나실인입니다.

다시 말해 나실인 정체성은 하나님 중심성의 삶을 살아야 하는 성별 됨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나실인이었던 삼손은 영적인 자기의 정체성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자기중심성에서 한 발자국도 양보하지 않습니다.
삼손은 자기중심성을 위한 삶이 아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 중심성의 삶으로 살아내야 하는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체성을 내동댕이 쳐버렸습니다. 결국, 그의 인생은 대단히 천박한 마감을 해야 했습니다.
삼손은 여자들의 치마폭에 빠져서 두 눈이 뽑히는 수모를 당한 뒤, 살아 있을 때보다 죽을 때 더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비극의 이력서를 쓰고 생을 마감한 최악의 사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천박함과 싸워 이기려면 ‘for me’의 삶이 아닌 ‘for Lord’의 삶을 살아야 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결론) 이제 저는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종교적인 언어 중에 ‘성찰’(省察)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살필 省, 살필 察이 붙은 단어입니다. 살피고 또 살피는 사유함을 성찰한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가벼워지는 천박함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자기중심성의 생각을 하나님 중심성의 생각의 성찰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본문은 에서의 실패와 야곱의 승리라는 도식적인 차원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둘 다 천박함의 절정을 보여준 똑같은 패배자의 면면을 보여준 본문입니다.

사랑하는 세인 교회 교우 여러분!
나는 우리 교우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살피고 또 살펴 내 중심성 (I-CENTRISM)이라는 천박한 신앙의 여정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성(GOD-CENTRISM)이라는 신앙의 내공을 키워가는 교우들이 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찬양하고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