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대학교 동기회 홈페이지에 링크되어 있는 한세대학교 차준희 박사의 '구약과 복음: 기독교 신앙을 위한 구약의 가치' 라는 소논문을 옮겨와서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구약을 전공한 친구이기에 당연한 일이겠지만 논문의 결론은 목회자들이 구약성경을 소외시하는 데에 대한 학문적인 분노를 이론적으로 제시한 것입니다.
차 박사의 논문 내용 중에 한국교회 강단에서 개신교 100년의 역사 동안 구약을 본문으로 설교를 한 데이터를 뽑아보니 평균 26%에 불과하며 그 중에서도 창세기, 출애굽기, 이사야, 시편 등의 4권의 책에 몰려 있는 편식이 있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친구의 지적에 대하여 가만히 생각을 해 보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는 지적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 또한 개인적으로 설교 원고들을 분석해보면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상당히 편파적인 구약 기피증을 갖고 있지는 않다는 데에 자위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 중의 하나는 구약연구는 신약 연구에 비해 적지 않은 부담이 있다 것은 솔직한 사실입니다. 구약을 기피하는 이유는 차박사가 논문에서 지적을 하고 있는 것처럼 가장 큰 이유가 해석의 어려움일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기독론적인 요소들이 빈약하다는 담론들은 차치하고서라도 목회자들이 구약을 이해하는 지적 만족도가 신약에 비해 현격히 떨어지는 것이 솔직한 현실이기에 구약을 접하기를 꺼려하는 것이 아닌 가 싶습니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자연히 이러한 현상은 평신도들에게도 그대로 전이됩니다. 얼마 전에 성경통독 1기반에서 구약 통독을 마치고 신약을 읽고 있습니다. 지체들이 한결 수월하게 신약 성경에 접근하는 것을 보면서 그 동안 우리 한국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신약 성경에 익숙하고 길들여져 있는지를 종도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이런 차제에 이번 주 수요일부터 스가랴서를 강해하려는 종의 의도는 무모한 도전일 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스가랴서는 12개의 소선지서 중에서 어찌 보면 가장 난해한 책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종은 스가랴서를 우리 교우들과 수요일마다 이 잡듯이 연구하며 하나님께서 남기는 은혜를 추적하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스가랴만이 고집했던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성결의 회복'이라는 주제가 이 책에 있기 때문입니다.
시대가 악합니다. 부모들 중에 딸을 낳은 것을 후회하는 시대가 되었으니 말하면 무엇하겠습니까? 사이코패스는 물론이거니와 교사, 국회의원과도 같은 지도층의 사람들까지 총체적인 부패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회는 어떻습니까? 오대식목사께서 얼마 전에 출간한 '골리앗의 시대에 다윗으로 살기' 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목사인 내가 교회 안의 안수집사와 장로들을 못 믿는 데 세상 사람들이 어찌 그들을 믿겠습니까?" 서글픈 이 시대의 교회 자화상입니다. 바로 이 우울의 시대에 스가랴를 통하여 주시는 '성결의 회복'을 우리 세인지체들이 먼저 도전하십시다. 바로 이때가 스가랴의 음성을 들을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