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제천중앙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했을 때 전갑규 권사님이라는 분이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는 너무나 자랑스럽게 처음 보는 담임목사에게 아들 자랑을 은근히 늘어놓았습니다. 공부를 참 잘했고, 고려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한 수재였고 무엇보다도 사업을 하는데 신앙의 터전에 발맞추어 노력하려는 귀한 아들임을 저에게 보란 듯이 전해주었습니다. 맨 처음에 이 말을 듣고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고 하는데 여기에도 이런 사람이 또 있구나 싶어 시답지 않게 들었습니다,
몇 달 후에 전 권사님이 그렇게도 자랑스러워했던 아들 이야기를 또 듣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아버지 장로님으로부터였습니다. 아들이 경영하는 사업체 명을 이번에 바꾸었는데 ‘인스켐’(INSCHEM)이라는 이름으로 사업자 등록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름을 이렇게 지은 이유는 ‘Chemistry in Christ’ 함축이라고 전언해 주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아들이 이렇게 신앙 안에 살려고 노력하는 CEO 이니까 담임목사가 특별히 생각하고 기도해 달라는 압박이었습니다.
참 별난 자식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저는 그로부터 얼마 후 부모가 자랑한 아들을 만나면서 참 묘한 감정에 빠졌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부모가 왜 집사님을 그리도 자랑했는지를 부모들의 자랑과는 전혀 관계없이 감정선 굵게 고개를 끄덕였기 때문입니다. 집사님은 정말로 자랑 받을 만한 아들이었습니다.
서 집사님!
9년 전 교회를 개척할 당시, 제천중앙교회 출신이라는 부담이 분명히 있었고, 아버지 장로님이 제천중앙교회 묘지에 묻혀 계시는 엄청남 부담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교회 이전에 대하여 이렇게 저에게 전해주었던 말은 개척이라는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게 해 준 용기가 되었습니다.
“목사님, 저는 어머니께서 결심하신 것을 존중합니다. 어머니가 교회를 옮기시기로 결정한 것은 감정의 폭이나 순간적인 감상이 아니라 포기할 수 없는 말씀 때문이라고 저에게 말씀하신 것을 저도 존중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더 공고해진 집사님은 교회 개척이후 언제나 저에게는 응원자였습니다.
1년 7개월 전. 집사님의 암 발병 소식을 듣고 너무 큰 충격을 받았지만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진행한 것은 중보였습니다. 단 하루라도 집사님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목사의 의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시작한 1년 7개월 동안 집사님을 향한 담임목사의 기도 목록은 중보의 일 순위였고, 엎드릴 때마다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중보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제 기도는 참 단순했습니다.
“하나님, 이번에는 하나님이 져 주십시오. 야곱에게 져 주신 전례가 있지 않으십니까? 하나님, 이번에는 제발 져주십시오.”
그런데 정말로 속상하게도 이번에도 하나님이 이기셨습니다. 제가 패했습니다. 사실은 하나님께 막 대들고 싶고 삿대질도 하고 싶은 마음 굴뚝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내가 이기는 것은 신념이고, 하나님이 이기시는 것을 믿는 것이 신앙인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을 때 노사모 회원들이 제일 많이 썼던 말이 ‘지못미’였다지요?
서정수집사님, 미안합니다. 정말로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저는 목사이기에 하나님을 이길 수 없는 존재입니다. 어떤 의미로 보면 참 무능한 존재라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집사님께 한 가지는 약속드릴 수 잇을 것 같습니다. 혼자 남으신 어머니를 안아드리겠습니다. 외로워하지 않도록 안아드리겠습니다.
오늘 주일 설교는 참 하기 어려웠습니다. 오늘 같은 날은 정말 목사라는 게 싫은 날입니다. 신자도 못 지켜 주는 주제가 무슨 목사인가 싶어서 말입니다. 내일 화장, 수목장이라는 장례의 일정까지 냉정하려고 했는데 집사님을 사랑한 감정이 앞서 주절댔습니다. 또 상투적으로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아 부글부글 하지만 하겠습니다.
서정수 집사님, 너무 수고했습니다. 그제 이 땅에서의 삶을 최종적으로 정리하는 그 시간, 스데반에게 그리하셨던 것처럼 주군께서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집사님께 박수를 보내셨을 것입니다. 디시 만나십시다. 저는 서정수 집사가 참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사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