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 사사기 7:15-18 제목 : 야훼 만세만. 기드온은 찝찝한 순종의 자세로 미디안 적진에 내려갔고 그곳에서 사람의 소리에 혹하여 진영으로 돌아와 하나님을 경배한 뒤에 300여명의 용사들에게 자기가 들었던 이야기를 전언하면서 이 전쟁은 하나님이 이기게 하실 것이라고 선포한 뒤에 전열을 정비하기에 이릅니다. 그 내용이 본문 16-17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기드온은 본인의 용사들에게 한 손에는 나팔을 들게 하였고, 또 다른 한 손으로는 항아리를 들게 하였는데 그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담게 하였다는 보고입니다. 문자적으로 이 구절을 이해하려면 손 하나가 더 필요한 것으로 보이기에 해석이 요구됩니다. 학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 목동들이 흔히 가지고 다니는 나팔은 어깨에 메고 다니는 나팔이었기에 양들이 위기에 몰렸을 때 나팔을 불어 사람들을 모으고 그 소리로 짐승들의 공격을 막은 도구로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감안했을 때 기드온의 300명 용사들이 무장했던 나팔은 당연히 멜 수 있는 나팔이었다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기드온의 300명 용사들은 항아리를 부순 뒤에 왼 손으로는 횃불을 들고 오른손으로 나팔을 잡고 불었다고 해석 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전쟁의 소품들이 칼과 창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하기 위해 조금은 자세히 300명의 용사들이 가지고 있었던 소품들을 소개했지만 실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기에 이 정도로 설명을 마칩니다. 이제 오늘 설교의 가장 중요한 본문 구절을 다루겠습니다. 본문 18절을 읽습니다. “나와 나를 따르는 자가 다 나팔을 불거든 너희도 모든 진영 주위에서 나팔을 불며 이르기를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라 하니라” 기드온은 다음과 같이 명령을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내가 나팔을 불면 너희들도 나팔을 불라는 것입니다. 나팔을 불며 다음과 같이 외칠 것을 명한 것입니다. ‘여호와를 위하여, 기드온을 위하여’ 이 구절을 공동번역 성경은 더욱 극적으로 번역했습니다. “내가 거느린 부대가 나와 함께 나팔을 불면 너희도 적진을 둘러싸고 있다가 나팔을 불며 '야훼 만세! 기드온 만세!' 하고 외쳐라.” 긴장하고 들어야 하는 대목입니다. 기드온은 부하들에게 나팔을 불고 항아리를 깨뜨릴 때 이렇게 외치라고 의도적으로 명령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위하여’ 라고 강력하게 외치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동등한 위치에서 ‘기드온을 위하여’ 라고 외치라고 명령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단어를 이어주는 접속사가 등위접속사라는 점입니다. 이 싸움의 주체가 하나님과 기드온이라는 은현 중의 암시입니다. 정말로 그렇습니까? 천부당만부당입니다. 이 전쟁은 하나님만의 작품이었습니다. 전쟁의 주체는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여기에 첨가되어야 할 인간의 이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니 존재해서는 안 됩니다. 이 교훈을 가슴에 담아야 합니다. ※ 내 신앙의 여정을 인도하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기드온은 앞 기고에서 수차례 살핀 것처럼 정말 마지못해 질질 끌려왔고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은 불신앙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지막에는 자기의 이름을 하나님의 반열에 동등하게 세우는 부정적 의도를 드러냈습니다. 이런 교만함이 어디에 있습니까? 신앙의 출발은 나를 하나님 앞에서 죽이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느헤미야는 3:3:1-32절을 보면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데 최선을 다해 사역했던 75명 이상의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기록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느헤미야 본인의 이름을 생략되어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 놀라운 역사의 기록에서 자기의 이름을 의도적으로 빼버린 것입니다. 자기의 이름이 높여지는 악을 근원적으로 제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합니다. 역사는 기드온은 자기를 들 내려던 불완전한 지도자로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완벽한 지도자로 평가합니다. 우리들의 신앙의 여정에 고백할 유일한 선언은 이것입니다. 야훼 만세! 이 선언 뒤에 그 어떤 사족도 붙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민족의 대 명절인 추석 연휴 기간에 야훼 만세를 노래하는 독자들의 범사가 되기를 중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