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여 년 전 작은 처남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을 때 영안실에서 두 다리를 뻗고 통곡하시던 장모님의 모습이 선합니다. 정말로 사랑했던 아들이었는데 먼저 묻어야 하는 심정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 때 장모님의 탄식 중에 제 가슴을 때리던 절규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이놈아, 내가 먼저 가야지. 왜 네가 먼저 갔느냐? 이제는 보고 싶으면 어떻게 하냐?”라고 통곡하며 우셨습니다. 장모님은 평생을 예수님 한 분만을 믿고 의지하며 사신 분입니다. 당신께서 훗날 아들을 다시 만날 것이라는 믿음에서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확신하는 분이시기에 아들을 잃은 것에 대한 신앙적인 차원에서의 원망이나 후회하심의 표출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이 땅에서 사랑했던 아들을 잃고 난 뒤에 오는 어미로서의 자책감과 괴로움이 견디기 어려우셨을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처남이 그렇게 간 자가 10여년이 흘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모님의 가슴에 처남이 생생히 살아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제 50이 된 아들, 그래서 더 아쉽고 안타까운 아들의 죽음 앞에서 정말로 주의 종을 숙연하게 한 장례를 우리는 지난 주간 직접 보았습니다. 젊어서 가지고 있었던 간염이 볼모가 되어 급기야 간경화와 간암으로 이어지고 그래서 이 땅에서 어떻게 다시 생명을 지필 수 없는 극한 상황이 되어 아들을 면전에서 보내야 하는 기막힌 현실을 지난 주간, 우리들의 어머님인 이영순권사님께서 당하셨습니다. 이미 익히 알지만 남편의 오랜 동안의 병고로 인해 갖는 정성의 수발 끝에 하나님의 나라에 보내는 아픔을 당한지 불과 2년이 못되어 이번에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픈 큰 아들을 하나님의 나라에 보내야 하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현실 앞에서 무너져도 한참을 무너질 수 있는 고난에 지지 않고 꿋꿋하게 서서 분연히 아들을 가슴에 묻으신 이영순권사님을 보면서 종의 마음은 더 깊은 은혜를 받습니다. 공교롭게도 가슴에 묻은 아들의 연수가 이 종과 동갑내기이기에 종이 느끼는 아쉬움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하게 다가옵니다. ‘더 살아야 하는데, 더 행복해야 하는데, 더 많은 주의 일을 함으로 승리해야 하는데.’라고 격려할 내용의 말이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이제는 불러도 이 땅에서는 함께 할 수 없는 아들을 그냥 가슴에 담아야 하는 이영순권사님께 종이 다짐해봅니다.
“권사님! 이제는 부족하지만 이 종이 아들처럼 섬기겠습니다. 그리고 아들처럼 사랑하겠습니다. 부디 빠른 속도로 회복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이권사님이 옆에 계셔서 종이 행복합니다."
오늘은 더욱 진정성을 담아 고백합니다.
권사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