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개척한 뒤 두 번째 이사를 했습니다. 첫 번째 이사를 할 때는 너무나 경황이 없었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불안한 이사를 했습니다. 그렇게 1년 10개월 지난 이후 이제는 나름대로 교회가 정착되어 가고 있고 사랑하는 성도들의 귀한 중보로 안전한 사택으로 이사를 마쳤습니다. 이사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인지를 알기에 이사가 꾀가 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한 두 번째의 이사였기에 용기를 냈습니다. 이사의 일정이 맞지 않아 보름 동안의 보관이사를 한 뒤 드디어 사택으로 이사를 완료했습니다. 담임목사의 보름동안의 유랑생활을 걱정하는 귀한 권사님들의 헌신으로 감사하게 보름을 지낼 수 있었던 것도 은혜입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에 겨울옷이 없이 추위에 당황한 것도 아마 개척교회 목사로서 또 다른 추억거리가 될 것입니다.
29일은 개인적으로 분주한 날이었습니다. 이유는 그 날 또 다른 이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님이 다른 장막으로 옮기시는 날이었습니다. 그 동안 알츠하이머의 초기 증상으로 온전하지 못하신 어머님이 18층이나 되는 아파트에서 사시는 것이 항상 불안한 모습이었는데 이번에 누님과 형님들이 의견을 모아 거동하시고 활동하시기 편안한 저층으로 이사를 하기로 결정을 하였고 바로 그 이삿날이 바로 종이 이사를 한 날과 겹치게 된 것입니다. 목회를 한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항상 부모님 공경에는 내놓은 자식으로 불효를 하는데 이번에도 역시 직접 찾아뵙고 이사를 하시는 어머님을 봉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또 누님과 형님들을 의지하며 역시 자식 된 도리를 하지 못했습니다. 전화로 송구스러움을 전하였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못내 부끄러움이 가득합니다. 언제나 자식의 도리를 하고 살 수 있을지 자괴감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 사택이 정리되면 만사를 제쳐놓고 어머님께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 이사를 하는 것도 이력이 났습니다. 모자 이사를 하는 날, 언감생심인지 모르지만 다음의 이사가 세인교회 담임목사로 마지막 이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다음 이사 장소는 교회와 더불어 이기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