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에 부임한 밀양 대곡교회에서 성도들의 사랑으로 받은 자급이 눈물겨운 70,000원 사례였는데 그래도 그때는 그 사례비가 7억 원보다 더 큰 가치의 사랑이었으니, 사례를 받을 때마다 몸둘 바를 몰랐던 그 초심의 목사 마음이 너무나 그립고 그립다. 애증이 있었나 보다. 그때 받았던 그 피 같은 사랑의 사례비를 쪼개 교단 연금에 가입하여 교단을 나올 때까지 불입한 연금을 지난 10년 동안 그래도 돌아갈 고향이라는 미련을 갖고 찾지 않은 것을 보면.이제 그 미련을 버리려고 한다. 그 연금을 찾기로 했다. 아내가 박봉의 사례 가운데도 미래에 목사가 추해지면 안 된다고 꼬박꼬박 납입했던 그 연금은 어찌 보면 아내의 보물과도 같은 향유 옥합이고, 소중한 성도들의 사례로 맺어진 물질의 가치로 산정할 수 없는 사랑이기에 말이다. 그렇게 하나하나 내 사랑했던 성결교회의 흔적을 이제는 진짜로 지우려고 한다. 그리고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 있다면 그렇게 하려고 한다. 나를 지금의 목사로 만들어준 고향 교회 송림교회가 아름다운 교회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라고, 전국에 세워진 성결교회들이 시대의 예언을 잊지 않고 그루터기 같은 교회들로 서 주기를 기도한다. 성결교회의 선후배들이 행복한 목회를 하기를 진심으로 중보 한다. 이번에 뼈저리게 느낀 것이 하나 있다. “하지 않은 것을 한 것처럼 행동하고, 있지 않은 마음을 있는 것처럼 포장하는 것처럼 힘들고 어려운 일이 없다.”는 것을.
이제 나에게 맡겨진 목회의 연한에 내 사랑하는 세인 교회를 더 건강한 교회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려 한다. 지금까지도 세상이 인정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 노력한 세인 지체들을 더 사랑하고 목양하려 한다. 세인교회는 부도옹(不倒翁)의 교회인 것을 나는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