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로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돌베개 간, 2015년.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 는 상담학 학위 과정에서 만났다. 엘리 비젤의 ‘나이트’는 책을 출간하면서 만났다. 그리고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는 설교 준비를 통해서 만났다. 모두가 같은 장소에서 일어난 일들을 각 저자가 각기 다른 시각을 기록한 글이지만 나는 이 책들을 읽으면서 철학자 토마스 홉즈가 바람직하다고 여겼던 리바이어던과 같은 위대한 국가공동체가 전제되지 않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최고의 비극인 그 유명한 어록 “HOMO HOMINI LUPUS”를 내내 복기하며 읽었던 생생함을 기억한다. 레비는 이 비극을 아우슈비츠에서 목격했다. 이 현장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자의 또 다른 죽음과도 같은 기록들과 흔적들을 남기면서 작가는 인간을 다시금 조명한다. 레비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을 파괴하는 것은 창조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쉬운 일도 간단한 일도 아니지만 독일인들, 당신들은 그 일에 성공했다.”(p,228) 그런데 레비의 뉘앙스는 오금을 저리게 한다. 왜? 이 추악함의 노래를 부른 자들이 독일인임을 들추어냈지만 여운을 남겼기 때문이다. 누구도 그럴 수 있다는…. 그도 그럴 것이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공표한 ‘악의 평범성’은 특정한 인물군(人物群)에서만 나타나고 자행되는 특별한 특성이 아니라 나도 그럴 수 있는 존재임을 밝힌 것처럼 레비는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적나라하게 그 가능성을 독자인 우리들에게 경고한다. 책을 읽는 내내 몹시 불편했다. 하지만 이중성의 가학인가! 또한 통쾌했으니 말이다. 레비는 유대인 시인 하이네의 말을 책 말미에 천둥소리를 내며 인용했다. “책을 불태우는 사람은 조만간 인간을 불태우게 될 것이다.”(p,298) 난 오늘, 내가 살아가는 시대가 너무 무섭다. 인문학적인 접근과 노력 그리고 시도들이 불태워지고 있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사람을 태우는 일들이 불현 듯 너무 가까이 임할 것 같은 몸서리 때문에 두렵다. 아, 교회가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아, 목사가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아, 주후 1세기 수리아 안디옥에 거주하던 크리스티아노스들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무언가를 해야 할 텐데. 아프고 또 아프다. 오늘 내가 사는 장소가 제 2의 아우슈비츠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그러기에 들추어 보아야 할 필독서이다. 오늘은 날이 꾸물거린다. 가을답지 않게 미세먼지가 공습해서 그런가 보다. 오늘은 강의를 나가는 날, 학교에 가기에 앞서 독서 버킷 리스트 6번째 책을 소개하면서 우리 교회에 새로운 동역자로 서가고 있는 그래서 목사에게 적지 않은 기쁨을 주고 있는 @ 홍영임님을 불러 봅니다. 홍 집사님이 앞으로 제천세인교회에서 일구어 나갈 그 꿈이 아름답기를 기도하며 부족한 이 사람도 견인차의 역할을 해보려 한다.
시간과 여건이 되시면 저처럼 열권의 책과 열 분의 친구님을 부르시면 된다고 하네요. 좋은 독서 캠페인 릴레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