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이 말했다.
“역사는 다른 설명이 없는 한 언제나 ‘인간의 삶과 사회의 변화 과정을 이야기하는 문자 텍스트를 가리킨다.” (역사의 역사,p,15) 무슨 독불장군이라고 이 정의에 반기를 들겠는가 싶다. 그런데 작가에게 딴지를 하나 걸자. 인간의 삶이 먼저냐, 아니면 사회의 변화과정이 먼저냐? 우문일 수 있겠지만 물은 이유는 인간의 삶에 대한 궁구한 이야기가 없이 사회의 변화과정이 존재하는가? 에 대한 답변은 존재하지 않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신학을 한 사람으로 질문한 테제의 두 내용을 격리하고 싶은 마음은 애초부터 없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난 신학이 인간학이라는 학문과 통섭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전제로 데이빗 리스먼의 ‘고독한 군중’도 접근했다. ‘고독한 군중’은 전형적으로 사회학적인 지성들을 혹하게 하는 글이었지만 운명적으로 인간을 다루어야만 하는 목회자에게도 적지 않는 공부를 하게 한 양서다. 전통지향적인 인간의 단계에서 내부 지향적인 단계로 또 그 단계를 넘어 타인지향적인 인간의 타입(type)으로 인간군(人間群)이 바뀌어가는 과정을 정말로 치밀하게 구성한 리스먼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아이러니는 가장 발달된 인간군의 표상인 타인지향형의 세련된 형태를 작가가 고독한 군중으로 redefinition 한 점이다. 해서 목회자로 살고 있는 나는 지금, 타인지향형의 시대의 몸체에 천착하려고 몸부림친다. 바로 이것이 목회이기에 말이다. 이 행복한 몸부림에 함께 동참할 동지를 보고 싶다. 이제 독서 버킷 리스트 5번째 책을 소개했다. 근래 세인 교회 목사로 사는 나를 위로해 주고 중보해 주는 아름다운 동역자 @ 권숙진님 때문에 행복한 목사로 살아간다. 때를 따라 동역자를 위해 진정성으로 울어주는 권 집사님 때문에 늘 고맙고 갑사하다. 시간과 여건이 되시면 저처럼 열권의 책과 열 분의 친구님을 부르시면 된다고 하네요. 좋은 독서 캠페인 릴레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