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늘여 쓰는 것은 ‘창조’지만 짧게 줄이는 것은 편집이다.”(한겨례 출판사, p,126.) 작가 정여울의 산문집 ‘마흔에 관하여’에 나오는 글이다. 읽다가 금년 들어 나에게 누군가가 들려준 최고의 위로 메시지가 되었다. ‘글을 길게 쓰는데 은사가 있어!,’ ‘그렇게 긴 글은 사람들이 읽지도 않아!’ 등등의 비수를 많이 맞았는데 여울 작가의 글이 왜 이리 고맙게 다가오는지. 작년에 걸쳐 금년 초까지 출판계의 화두로 떠오른 정혜신 박사의 말을 동시에 떠올리면서 오늘은 얼굴이 화사해 지는 나를 느낀다. “누군가에게 공감자가 되려는 사람은 동시에 자신의 상처도 공감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공감하는 일의 전제는 공감 받는 일이다.” (정혜신, ‘당신이 옳다.’, p187.) 그래서 그런가? 매번 들을 때마다 약간은 어둡고 무거운 감동을 주던 아담 하라시비츠 피아노 연주곡 쇼팽의 야상곡이 오늘은 서재에서 밝게 들리는 감동을 준다. 그래 결심했어! 나는 그냥 나야. 그렇게 글 쓰며 살 거야. 이강덕 화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