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 200% ‘오늘’이라는 시대의 비극 중에 가장 참담한 비극이라면 그것은 책임지지 않는 악성 댓글입니다. 과거 시대에는 이름조차 없었던 단어인 소위‘악플’로 인하여 우리들이 친근히 여기던 공인들이 자살까지 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들로 인해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 괴로움을 토로하며 심히 고통 받고 있는 비극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런 비극이 자꾸만 일어남으로 인해 법적으로 이런 악플을 상습적으로 다는 사람들에 인해 적절한 형사적 조치를 취한다고는 하지만 인터넷 상에 들어가 보면 이 시대가 얼마나 인간성들이 말살되고 최소한의 윤리적 가치들이 무시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지에 대하여 가히 공포를 느끼게 할 정도의 악플들이 판을 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이버 상에서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있는 악플러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추적하기가 쉽지 않은 익명성 때문일 것입니다. 자기를 노출하지 않고도 대리만족의 쾌감을 느끼는 바로 그 익명의 많은 사람들로 인해 물리적인 피해보다도 더 심각한 정신적인 피해가 사회적인 문제로 까지 야기되고 있음에 목회자로서 심각한 우려를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한국교회는 이러한 앞뒤를 가리지 않는 무책임한 공격들에 가장 일선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소위 안티 크리스천들의 인간이기를 포기한 비인격적인 난도질들이 횡행하고 있어도 그냥 당해야만 하는 현실이 한국교회의 아픔 중에 하나입니다. 교회가 교회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적인 일탈들이 마치 한국교회 전체의 문제인양 비약되어 한국교회 무너뜨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집단들의 비이성적인 행태들이 이제는 막을 수 없는 물결처럼 일상화되어 있는 비극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 바로 오늘입니다. 더 한심하고 가슴 아픈 것은 한국교회의 이러한 공격 받음을 같이 아파하고‘이것도 내 탓입니다.’의 심정으로 함께 고통을 공유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 데 가슴으로 우는 믿음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믿음 역시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소위 관념적, 이념적 그리스도인들의 암묵적인 동의입니다. 옛말에‘시집살이 시키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오늘날 교회 안에 상당수의 이념적, 관념적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공동체를 더 아프게 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목사로서 끝까지 침아야 하는 것이 목회의 딜레마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십자가가 전제되지 않은 긍정의 힘에 대하여 반대하는 목회적 철학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은 조금의 변함도 없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목회의 현장에서 다양한 목회의 스펙트럼을 보면서 아니 어떤 의미에서 이제 지천명을 넘긴 중년의 목사로서 왜 선배 목회자들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조금의 부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는 지체들에 대하여 단호했고 그토록 긍정적인 시각들을 주문하고 주장했는지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오늘부터 6.26 해피전도데이 경주가 스타트라인을 출발했습니다. 이 사역의 여러 가지 모토 중에 종에게 색다르게 인식되는 슬로건이 있습니다. “긍정 200%”입니다. 해 볼 생각입니다. 이것이 우리 세인교회가 새롭게 움트는 요소라면 해 볼 생각입니다. 동시에 부정적인 일체의 마인드와는 전쟁을 해 볼 생각입니다. 전에 함께 사역했던 지방 내의 목회자가 성도들에게 선포했다는 말이 기억에 떠올랐습니다. “하나님 교회에서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하는 자는 신천지 교인이다.” 들어야 하는 소리임이 틀림없습니다. “긍정 200%” 우리 교회가 함께 공유해야 할 공통분모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