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단

제목[목사님컬럼] 느헤미야 6장 큐티하기2024-03-27 12:17
작성자 Level 10

이강덕 목사

 

1. 찬양하기 : 찬송가 496장 - 새벽부터 우리

2. 큐티본문 : 느헤미야 6:1-19

3. 큐티날짜 : 2011년 6월 27일

4. 말씀요약

 

느헤미야는 산발랏과 도비야 그리고 아라비아 사람들의 외적인 시험을 하나님의 전 역사에 집중하며 기도하는 것으로 이겨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외부적인 공격 뒤에 이어졌던 유다 신앙공동체의 내부의 갈등 역시 탁월한 리더십으로 극복했던 느헤미야는 이제는 개인적인 시험과 공격을 맞게 되었음을 6장에서 보게 된다. 산발랏과 도비야와 게셈은 느헤미야에게 개인적으로 오노 평지에서 만나자는 전갈을 받는다. 표면적인 그들의 내용은 화해하자는 편지였다. 그러나 4번에 걸친 그들의 편지는 개인적으로 느헤미야를 살해하려는 음모였다. 이것을 인지한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라는 중대한 역사를 진행하고 있는 어간 개인적인 만남을 가질 수 없다고 단호하게 거절한다. (1-3절) 살해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산발랏은 굴하지 않고 5번째로 편지를 보냈는데 인봉하지 않은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 안에는 느헤미야가 성벽 재건을 완성한 뒤에 반역을 도모하고 있다는 중상모략의 악성 루머가 기록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보고 느헤미야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키려는 악의적인 의도를 담고 있는 편지였다. 상황에 따라서는 상당히 부담이 되는 모략이었지만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엎드림으로 이 위기 또한 극복하게 된다. (4-9절) 본 장에서는 이런 줄기찬 사탄의 하수인과도 같은 산발랏 일당의 공격이 계속해서 무산됨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집요히 느헤미야를 무너뜨리기 위한 일련의 공격이 이어진다. 그 중에 마지막으로 기록된 기사가 느헤미야를 하나님의 성소로 유인하여 제사장이 아닌 느헤미야를 하나님의 심판으로 죽이는 고도의 계산된 가장 악한 일이었다. 제사장 스마야를 돈으로 매수하여 영적인 함정에 빠뜨려 그를 죽이려는 음모였다. 그러나 이런 영적인 음모까지 파악한 느헤미야는 자신의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지 않고 또 다시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는 영적인 깨어 있음으로 마침내 승리하게 된다. (10-14절)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위기를 극복한 느헤미야와 그의 동역자들은 마침내 도저히 이론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불과 52일이라는 단시간에 완성하는 기적을 이룸으로서 대적들이 마침내 그를 두려워하였다는 승리의 보고를 함으로 본 장을 마감하고 있다.

 

5. 나에게 주신 말씀과 적용

 

1) 다 왔다고 방심 말고 (1절)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과 그 나머지 우리의 원수들이 내가 성벽을 건축하여 허물어진 틈을 남기지 아니하였다 함을 들었는데 그 때는 내가 아직 성문에 문짝을 달지 못한 때였더라

 

느헤미야를 통하여 예루살렘 성벽이 올라가고 있었다. 이제 예루살렘 성벽 재건은 거의 완성의 단계였다. 문짝을 달면 공사가 끝나는 마지막 단계에 와 있었다. 통상적으로 당시의 공사 기법은 건물을 완성하고 문을 달면 끝이 나는 때였다. 산발랏의 일당들의 입장에서 볼 때 문짝을 달면 이제 아무리 방해를 해도 소용이 없게 되는 것이다. 급해진 저들은 어떤 의미에서 최후의 발악을 하였다. 그 중에 하나가 그를 오노 평지로 유인하여 살해하는 것이었다. 이런 음모로 이제 화해 협정을 맺자는 그럴듯한 조건으로 느헤미야를 유인하려고 했지만 느헤미야는 내가 아직도 성벽 재건을 위해 할 일이 남아 있기에 그리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들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3절) 나는 지금 예루살렘의 성벽을 재건하는 큰 공사를 하고 있기에 이것을 중단하고 내려갈 수 없다는 느헤미야의 단호한 거절을 보면서 중요한 사실을 한 가지 깨닫게 되었다. 끝까지 틈을 보이지 않는 신앙적 경성이 필요하다는 도전이었다. 이제 문짝만 달면 끝나는 성벽재건 공사이기에 방심했다면 느헤미야는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고속도로에서 주행을 하다가 마지막 톨게이트를 통과할 때 붙여놓은 고속도로 도로공사의 안내 플랜 카드를 본다.

“다 왔다 방심 말고 끝까지 안전운행”

주님의 나라에 임할 때까지 간직해야 하는 나의 영적 고속도로 주행 교훈이기도 하다.

 

2) 애도 낳아봐야지 뭐!

 

5-6절

“산발랏이 다섯 번째는 그 종자의 손에 봉하지 않은 편지를 들려 내게 보냈는데 그 글에 이르기를 이방 중에도 소문이 있고 가스무도 말하기를 너와 유다 사람들이 모반하려 하여 성벽을 건축한다 하나니 네가 그 말과 같이 왕이 되려 하는도다”

 

본 장에 기록된 두 번 째 대적들의 느헤미야를 향한 개인적인 공격은 악성 루머를 퍼트리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씌우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는 개봉된 편지에 왕이 되기 위해 성벽을 쌓는다는 루머였다. 이런 악성 루머에 대하여 느헤미야는 두 가지의 반응을 보였다. 제일 먼저는 하나님께 억울함을 신원하는 것이었다. 9절 하반절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 내 손을 힘 있게 하옵소서’ 느헤미야의 간절함이 가슴을 저리게 한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기도만 하지 않았다. 그의 진정성은 본인의 결백함이었다. 이런 이유로 이런 편지를 보낸 산발랏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외쳤다. ‘네 마음에서 지어낸 것이라’(8절 하반절)

어떤 시골에서 목회를 하는 목사님에게 자기를 반대하는 무리들에게 없는 딸까지 만들어 목회를 방해하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당했다는 가슴 아픈 에피소드를 들은 적이 있었다.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라면 ‘까짓것 애도 낳아보지 뭐’라는 당당함이 없이는 목회에 승리할 수 없다는 그 목사님의 사족이 오늘 큐티를 하는 내내 다시 상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3) 월권하지 맙시다.

 

11절

 

“내가 이르기를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 하고”

 

느헤미야 6장을 ‘하가’ 하다가 마지막으로 도전이 된 말씀이 11절이었다. 산발랏 일당은 느헤미야를 제거하려는 일체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자 이번에는 아주 경악할만한 음모를 계획하였다. 그것은 당시 제사장이었던 스마야를 돈으로 매수하여 느헤미야를 성소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술수였다. 신변의 위협을 받고 있는 느헤미야를 위하는 척하며 돈에 눈이 먼 스마야가 절대로 제사장 이외는 들어갈 수 없는 성소 안으로 유인하여 하나님의 즉결심판을 받게 한다는 말 그대로 완전범죄를 꿈꾼 것이었다. 그럴듯한 제사장의 이 제안을 느헤미야가 기가 막히게 극복한 장면이 11절이다. 나 같은 범인이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들만 들어갈 수 있는 성소에 어찌 들어갈 수 있겠는가!의 철저한 경성으로 위기를 극복한 것이다. 결코 뿌리치기 쉽지 않았고 또 그 이면에 들어있는 음모를 캐치하기기 쉽지 않았을 스마야의 유혹을 어떻게 이길 수 있었을까? 그것은 자기 위치를 망각하지 않는 경성함 때문이었다. 다시 말하면 월권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는 적어도 선조 중에 월권으로 망했던 사울의 경거망동을 재연하지 않겠다는 영적 경성함이 있었기에 본인의 위기를 승리의 기회로 역전시키게 된 것이다. 마지막 시험을 이긴 느헤미야를 보면서 가슴에 담는 것이 있다. 나는 자기 합리화로 인하여 하나님의 것을 빼앗는 월권을 저지르는 무익한 종은 아닌가를 곱씹는다. 하나님의 자리를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나쁜 종은 아닌가? 나의 이익을 위하여 하나님의 자리를 차고 꿰차고 앉아 있는 악한 종은 아닌가? 깊이 성찰한다. 그리고 가슴에 있는 비(碑)에 새긴다.

“월권하지 말자.”

 

기도

 

역사를 주장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위대한 사역을 위하여 주님 나라기 임할 때까지 끝까지 달려가게 하시되 방심하지 않게 하옵소서. 더불어 어떠한 영적인 공격에도 영적 순결함으로 당당히 승리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리를 넘보는 불순종의 죄를 범지 않도록 영적으로 깨어 있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