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히브리서 9:22절의 말씀으로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말씀입니다. 혹자는 이 구절을 놓고 기독교가 무슨 식인종 종교냐고 비아냥거린 글을 본 적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이 말씀은 아무리 곱씹어도 은혜요 정답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정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에 어떤 목사님의 책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영어 단어에서‘축복’을 의미하는‘blessing’은‘피 흘리다.’로 번역되는 ‘bleed 가 어원이다.”
많이 생각하게 하는 글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골고다에서 흘리신 피 흘리심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는 구원을 받는 축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기에‘blessing’과‘bleed’의 관계성은 설득력이 있음이 분명합니다.
지난 주간, 우리 교회에 등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공부자 자매가 다니엘 세이레 기도회에 열심히 참석을 했습니다. 새벽과 저녁에 진행된 기도회에 진정성을 갖고 참여했습니다. 사랑스런 두 딸의 아토피성 피부염을 치료받고 또 본인의 영육의 강건함을 위해 기도회 시간에 초신자로서는 부담이 되는 시간이었지만 아름다운 자리에 참석을 했습니다. 종도 최선을 다해 자매를 위해 중보 했습니다. 결과 영육의 좋아짐과 진보를 경험한 자매가 기도회 마지막 주간까지 최선을 다해 참석한 거십니다. 그러던 어느 한 시간에, 해보지 않은 강행군으로 인해 기도회 시간에 코피를 터뜨렸습니다. 코에서 피가 흐르는 가운데에도 곳곳하게 기도회의 시간에 참석한 자매를 보고 있던 마침 연배가 비슷한 지체들이 적지 않은 감동으로 자매를 바라보았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참 신선함으로 받아들여진 공부자 자매의 피 흘림의 열심이 나도 모르게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던 또 다른 지체들을 경성시키는 데에 일조(?)를 했기 때문입니다. 종은 공교롭게 자매의 집에서 처음으로 지난 주간 새가족 심방예배를 인도했습니다. 예배 중 나눔을 갖다가 자매가 고백하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주님과의 첫 사랑을 느끼며 본인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영적 과정을 기쁘게 여기는 그녀의 일성들을 들으면서 종은 너무 행복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비결을 선포하신 주님의 권면처럼 정말로 풋풋하고 싱그럽게 주님의 사랑에 눈물겨워하며 자라나 우리들을 부끄럽게 여기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성숙한 귀한 자매가 되기를 종은 기도해 봅니다.
“공부자 자매님, 새가족 예배 때, 남편의 불면증을 위해 기도했다는 그 고백,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피 흘림이 없은 즉 사함이 없느니라’
한 주간, 종의 가슴에 유독이 진하게 새겨진 말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