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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어김없이 찾아온 사순절 (5)2024-04-19 11:48
작성자 Level 10

2024년 3월 17일 사순절 다섯 번째 주일 설교

 

제목어김없이 찾아온 사순절 (5)

본문창세기 3:18-19

 

서론)

 

사순절 다섯 번째 주일이 밝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다시 확인하고 다잡이해야 하는 절기의 하반기에 들어선 주일입니다.

우리는 사순절 기간 주일 예배를 통해 다음과 같이 사순절의 의미를 되짚어 보았습니다.

⓵ 공급해 준 은혜를 망각하라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도리어 그 은혜를 복기하는 기간이라고 했습니다.

⓶ 내 뜻을 하나님의 뜻 앞에 내려놓는 기간이라고도 했습니다.

⓷ 섬길 수 있는 교회가 있음에 감사하는 절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⓸ 유리(遊離)되어 있는 말과 삶의 간극을 줄이는 절기라고 했습니다.

이제 오늘 우리는 다섯 번째로 사순절의 의미를 묵상하려고 합니다.

정호승 작가의 글 하나를 소개하면서 설교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나는 무논을 볼 때마다 그 안에 담겨 있는 아름다움을 본다무논의 아름다움은 그 속에 예비 되어 있는 고통이다어린 벼들은 곧 가뭄과 태풍을 맞게 될 것이다계속 햇볕만 내리쪼이면 벼들은 가뭄의 고통을 당할 것이고강한 비바람이 몰아치면 곧 태풍의 고통에 시달릴 것이다그러나 벼들에게 그런 고통은 당연하다고난 없이 자란 벼들은 없다가뭄에 목마르지 않은 벼가 없고태풍에 쓰러지지 않는 벼가 없다가뭄으로 쩍쩍 갈라진 논바닥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벼 포기도태풍에 쓰러져 있다가도 포기끼리 묶어주면 서로 기대어 일어나는 벼포기도 실은 당신과 나의 삶을 닮았다.” (정호승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해냄, 191.

글을 읽다가 작가가 본 성찰에 깊은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정말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류시화 작가는 이렇게 말했던 것 같습니다.

인디언들은 대지는 곧 어머니라는 믿음이 있었고각자의 가슴에 깊이 뿌리 내린 신성한 종교와도 같은 거룩한 것이었다.” (류시화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김영사, 27)

어머니는 자신을 돌보는 것보다 자식들의 삶을 보듬는 이 땅의 유일한 존재입니다.

자식들의 잘남은 물론못남까지 수용하는 존재입니다.

더 정직하게 말한다면 못남을 갖고 있는 자식을 더 품는 게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류시화 작가가 대지()를 어머니와 같은 레벨로 끌어올려 존중의 대상으로 격상시킨 것은 대단히 적절한 인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사순절 5번째 주일에는 흙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본문으로 들어가 보십시다.

 

본론)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금지하신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은 죄를 지은 아담에게 하나님이 내리신 징계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18절을 읽겠습니다.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하나님은 아담에게 네게 딛고 살아갈 땅에 대한 척박함을 제시하면서 그 땅에서의 삶이 녹록하지 않을 것을 예고(豫告)하셨습니다.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무성한 땅에서 살아갈 것인데그 땅을 땀 흘리며 잘 경작해야만 채소를 얻게 될 것이라고 전제하며 말씀하셨습니다.

밭에서 채소를 얻으려면 수고해야 함을 전제한 것입니다.

이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아담에게 그 땅에 살면서 최선을 다한 뒤에 결국은 그 땅으로 돌아가게 될 것임도 분명히 하셨습니다.

본문 19절입니다.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한편으로 보면 이렇게 잔인해 보이는 고지를 아담에게 하셨을까요?

창세기 2:7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인간의 원재료가 흙이었음을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더 엄밀히 말하면 흙의 먼지’(아파르 민 헤 아다마)가 인간의 원재료입니다.

이 구절만 놓고 보면 참 인간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땅의 먼지가 인간을 만든 원재료라니 유구무언입니다.

설교의 서두에서 저는 흙의 위대함을 노래한 몇 사람이 이야기를 전술했습니다.

하지만 설교의 본론에서 그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지금 설명하고 있습니다.

앞뒤가 안 맞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창세기 본문을 통해 사순절 다섯 번째 주일에 함께 간직해야 할 레마가 보입니다.

 

※ 사순절은 내 연약함을 인정하는 절기입니다해서 나를 내려놓는 기간입니다.

 

내 연약함을 인정할 때하나님은 나를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것을 깨닫는 절기가 바로 사순절입니다.

흙의 먼지로 지음 받은 우리 인간은 말 그대로 먼지 같은 이 땅에서의 삶을 살게 됩니다.

시인이 고백했던 이 유명한 토로가 기억나십니까?

시편 90:9-10절입니다.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땅의 먼지로 만들어진 인간이기에 시인의 고백 그대로 그 연한은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말이 오롯이 다가옵니다.

순식간의 사라지는 인생을 빗대어 야고보서 기자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야고보서 4:14절을 만나 보십시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이렇게 말하면 어떤 이가 너무 염세주의적으로 몰고 가는 것이 아니냐고 반론을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질문이 있다면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만에 하나우리 인생이 이렇게 잠시 왔다가 가는 인생이기에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고 멋대로 내 삶을 허비하거나 막 사는 삶으로 전락해 버린다면 그는 염세주의자가 맞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 창세기 저자와 시인의 고백과 야고보 기자의 말을 신앙적으로 인정하는 삶을 사는 자는 결코 염세적으로 내 삶을 방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삶을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어떤 몸부림입니까?

유한하고 연약한 존재임을 인정하기에 나를 쳐서 복종하는 겸손한 삶을 살아냅니다.

요한복음 3:22-26절로 초대합니다.

예수께서 공생애를 감당하시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세례요한이 세례를 베풀던 장소인 애논 근처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예수께서도 세례를 베풀기까지 합니다.

그러자 발끈한 자들은 다름 아닌 세례요한의 제자들이었습니다.

요한복음 3:26절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무슨 말입니까?

영어 성경 New Living Translation 버전으로 요한복음 3:26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So John’s disciples came to him and said, “Rabbi, the man you met on the other side of the Jordan River, the one you identified as the Messiah, is also baptizing people. And everybody is going to him instead of coming to us.”

직역하면 이렇습니다.

그러자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에게 와서 말했다랍비여요단강 다른 쪽에서 만났던 그 사람랍비께서 메시아라고 입증해 준 그 사람이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있습니다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우리에게로 오는 대신 그에게로 가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비상사태라는 말입니다.

뭔가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비상 신호였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모든 사람들을 예수께 빼앗기게 될 것 같다는 위험 신호 발현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의 제자들은 스승인 요한에게 뭔가 대책과 방법을 세워야 한다는 긴장감을 불어 넣은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의 SOS 신호 요청에 세례요한이 반응한 것을 보면 충격적입니다.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번역으로 이어지는 요한복음 3:27-29절을 읽으며 교우들에게 소개하겠습니다.

요한이 대답했다사람이 하늘의 도움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나는 지금 영원한 성공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메시아가 아니다나는 그분보다 앞서 보냄받아서 그분을 준비하는 사람에 불과하다내가 이것을 공개적으로 말할 때에 너희도 그 자리에 나와 함께 있었다신부를 얻는 이는 당연히 신랑이다그리고 들러리가 되어 신랑 곁에서 그가 하는 말을 모두 듣는 신랑의 친구는 참으로 행복하다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이제 결혼식이 끝나고 행복한 결혼 생활이 시작될 것을 잘 아는 신랑의 친구가 어떻게 질투할 수 있겠느냐그래서 내 잔이 넘쳐흐르는 것이다.”

충격 그 자체입니다.

단순하게 세례요한의 답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제자들아불안해하지 말라요단의 다른 곳에서 세례를 베푸는 분이 주인공이다나는 조연이다이제 너희들도 그분에게로 가는 것이 맞다.”

그리고 이런 충격의 발언을 한 뒤세례요한이 남긴 전무후무할 명언을 잇고 있는 요한복음 3:30절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유진 피터슨의 버전은 더 감동적입니다.

지금은 그분이 중앙무대로 나오시고나는 가장자리로 비켜나야 할 순간이다.”

세례요한에게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 무엇일까요?

세례요한은 자신의 한계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는 교훈입니다.

세례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해 월권하지 않은 아다마()였습니다.

그러기에 예수께서는 그런 세례요한을 지칭해 이렇게 극찬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11:11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그렇습니다.

내가 흙에서 지음 받았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믿는 자들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합니다.

나의 한계를 인정하는 자는 결코 교만하게 살지 않습니다.

2주 전담임목사 셀 사역에서 나는 텍스트 제목은 나는 누구인가?’ 즉 인간론에 대한 나눔이었습니다.

텍스트 안에 저자인 이재철 목사께서 요한복음 19:25-27절을 인용했습니다.

요한복음 19:26-27절입니다.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하셨던 7가지의 말 중에 세 번째로 알려진 말씀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어가는 아들을 본 마리아의 심정이 어떠했을까는 질문이 허용되지 않을 정도의 무게감이 있는 아픔이었을 것입니다.

바로 그때 주께서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십시오아들입니다.”

이 말씀을 하신 이후 예수께서는 제자 요한을 부르셔서 이렇게 당부합니다.

보라네 어머니다.”

요한에게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부탁한다는 위임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위임하신 마리아에 대한 봉양을 받은 요한의 반응에 대해 짧지만 강렬한 어조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요한의 정신과 사역을 본받았던 요한 공동체의 그 누군가에 의해서 작성된 요한복음은 자기들이 추종하는 리더의 이름을 익명으로 썼지만 마리아를 맡은 이가 요한임을 학자들은 동의합니다.

이제 새신자반에 기록된 글을 교우들에게 소개합니다.

전승에 의하면 마리아는 90세까지 장수했다고 한다이스라엘 여자들은 15-18세에 결혼하여 첫 아이를 낳았다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았을 때에 그녀의 나이도 이 나이였을 것이다그렇다면 예수님과 마리아의 나이 차이가 많아야 18세 차이였다예수께서 33세에 돌아가셨으니그때 마리아의 나이는 50세 정도였을 것이다이후마리아 90세까지 살았다면 예수님 승천 이후 40년을 더 살았다는 말이다만에 하나예수께서 돌아가셨을 때요한의 나이가 20대 열혈 청년이었다면요한은 무려 60대 중반혹은 70에 가까운 노인이 될 때까지 마리아를 모셨다는 계산이 나온다.”(이재철새신자반홍성사, 67-68)

충분히 가능한 추론입니다.

여기까지 기술한 이재철 목사께서 그 다음을 이렇게 부연했습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요한이 한 여인을 늙을 때까지 봉양하는 그 어간자신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던 동역자 제자들은 각기 파송된 지역에서 장렬한 순교의 클라이맥스를 끊으며 위대한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었을 때인데요한은 늙은 나이가 될 때까지 한 여인의 뒤를 책임지는 소극적 인생을 살고 있었으니 한 편으로 요한이 느꼈을 자괴감이 얼마나 컸을지 이해가 된다.”

외형적으로 비교가 되는 요한의 일생입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의 제자 중에 유일하게 요한만은 노환으로 생을 마칩니다.

순교하지 않은 유일한 제자였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요한의 실례를 반추하면서 느껴지는 감동이 있습니다.

요한이 요한으로서 실패한 제자였습니까?

다른 제자들처럼 웅장하게 그리고 멋들어지게 순교하지 못한 요한은 실패한 제자입니까?

그럴 리가 있습니까?

요한은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한 제자였습니다.

자신이 짊어질 수 있는 영적 한계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제자 요한은 자신을 철저하게 내려놓았습니다.

더불어 노년의 때까지 스승의 어머니를 부양하고 섬기는 일에 소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철저히 자신을 내려놓고 주께서 맡기신 미션을 성실하게 감당했던 제자였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내려놓고 성실하게 자기의 사역을 감당했던 요한은 밧모섬에서 마지막 날에 일어날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그 비밀을 믿음의 후손들에게 남겨 놓는 위대한 사역자로 재 부름을 받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쓰시는 신실한 사람들은 철저히 자기를 내려놓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사용하십시다.

사순절은 바로 나를 내려놓고 있는가를 점검하는 절기입니다.

 

결론)

 

저는 이제 설교를 맺으려고 합니다.

어제 새벽예배를 인도하고 집에 들어와서 핸드폰을 확인했더니 서희 집사로부터 이런 문자가 와 있었습니다.

주님이 깨워주신 새벽이었습니다오늘 저의 예배는 낙헌제입니다세인교회를 통해 단단해져 가는 주님과의 관계가 감사합니다말씀이 힘이 되는 하루를 살겠습니다말씀이 저벅저벅 내게로 왔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 6:9)

사랑하는 세인 교회 지체 여러분!

나를 내려놓는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말씀과 동행하며 저벅저벅 걷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서희 집사의 고백이 심장을 쿵쾅거리게 했습니다.

말씀이 저벅저벅 내게로 왔습니다.”

사순절 다섯 번째 주일을 맞이한 교우 여러분!

나를 내려놓으면 말씀이 내게로 저벅저벅 걸어올 것입니다.

이렇게 걸어온 말씀이 우리 모두를 치료하기를 바라며 그렇게 사순절 5번째 주간을 살아내는 우리 교우들이 되기를 중보 합니다.

 

찬양하고 기도합니다.

 

예수 나의 좋은 치료자 그의 눈이 머무는 곳은 나의 슬픔과 고통

고갤 들어 그의 눈을 볼 때에 난 알았네 예수 나의 좋은 치료자

예수 나의 좋은 치료자 그의 손길이 닿는 곳은 나의 상처와 아픔

영원히 흐를 것 같았던 눈물 다 멎었네 예수 나의 치료자

나 노래하리라 천한 나를 돌아보신 구세주를 찬양해 하늘 닿는 곳까지 내 손 들리라

예수 나의 치료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