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23년 9월 24일 (넷째 주) 지역 셀 사역2024-04-23 18:02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나는 내 생애를 마치고 나서 후세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  

 
경배와 찬양 (WORSHOP)
● 찬송가 492장: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  복음성가: 순례자의 노래 (저 멀리뵈는 나의 시온성)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제목: 열조에게로 
● 본문: 창세기 35:23-29
1)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리고 요셉이 생애를 마쳤을 때를 비교해 보자. 그리고 소회를 피력하자.
⓵ 아브라함: 창세기 25:7-11 
⓶ 이삭: 본문 28-29
⓷ 야곱: 창세기 50:1-3 
⓸ 요셉: 창세기 50:24-26  

2) 하나님이 나를 만드신 목적에 부합하는 삶을 누가복음 13:8-9절을 근거하여 해석해 보자.
⓵ 무화과나무
⓶ 포도원 농장주인
⓷ 포도원지기
⓸ 포도원지기의 간청 내용과 상징적 교훈을 레마와 연관하여 나누어 보자.  

3) 적용하기
⓵ 나는 지금 내 신앙의 이력서에 무엇을 쓰고 있는가?
⓶ 나는 내 자녀들에게 어떤 신앙의 유산을 남겨줄 생각인가?
⓷ 원하는 바를 위해 최선을 다해 합심하여 기도하자.  

 
사역하기 (WORK)

셀 예배 순서

※ 찬양하기 : 찬송가 부르기
※ 얼음 깨기 나누기
※ 찬양하기 : 복음성가 부르기
※ 예배기도 : 맡은 이
※ 말씀 증거와 문제 내용 나누기
※ 적용하기
※ 기도제목 중보하기
※ 헌금 봉헌
※ 헌금 기도: 셀 리더
※ 피선교지 중보하기: 다 같이
※ 폐회 : 주기도문
※ 교제하기

사역 내용

1. 태신자 명단 작성에 누락된 지체 파악하고 24일 주일까지는 빠짐없이 명단 봉헌할 수 있도록 지도 
2. 지역 셀 대 심방 준비하기: 기도 제목 정리해서 김 전도사에게 문서로 제출
3. 전교인 성경퀴즈대회 준비하기
4. 공 예배 잘 지키도록 리더들이 솔선수범하고 독려하기
5. 담임목사의 목회 승리를 위해 중보
  

 
설교요약 (SUMMARY)
본론) 오늘 본문을 보면 야곱의 아들 12명이 소개됩니다. 무려 4명의 여인을 통해 탄생한 12명의 아들들이 소개됩니다. 복습할 겸해서  다시 한 번 본문을 읽어보겠습니다. 창세기 35:22절 하반절부터 26절입니다.
“야곱의 아들은 열둘이라 레아의 아들들은 야곱의 장자 르우벤과 그 다음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이요 라헬의 아들들은 요셉과 베냐민이며 라헬의 여종 빌하의 아들들은 단과 납달리요 레아의 여종 실바의 아들들은 갓과 아셀이니 이들은 야곱의 아들들이요 밧단아람에서 그에게 낳은 자더라”

  우리가 지난 강해를 통해 살펴본 그대로입니다. 창세기 저자가 이들의 이름을 여기에 열거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는 창세기라는 책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귀환 백성들이 편집한 글(제사장 문서-P문서)이기에 이스라엘이라는 정체성을 찾아내기 위해 족보를 중요시 여긴 결과물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신학적인 이해입니다. 하지만 이런 신학적 해제를 차치하고 영적인 의미로 본문에 기록된 야곱 아들들의 이름을 기록한 것을 해석해 본다면 그것은 분명 27절 이하에 기록된 이삭의 죽음과 맞물려 생각해야 합니다. 태어난 자가 있으면 죽는 자가 있다는 인간 순리에 대한 비교입니다.
  야곱은 12명의 아들들을 두었습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본문에서 야곱은 이 땅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열조에게로 돌아간 아버지를 매장한 기사를 소개합니다. 야곱은 식솔들과 함께 거주하던 기럇아르바 즉 헤브론에서의 삶을 마무리하고 아버지 이삭이 거주하고 있었던 마므레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삶을 시작했음을 27절 본문이 알려줍니다.
“야곱이 기럇아르바의 마므레로 가서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 이르렀으니 기럇아르바는 곧 아브라함과 이삭이 거류하던 헤브론이더라”

  야곱이 헤브론으로 이주할 때의 나이는 약 100세 정도 되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왜 이렇게 짐작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창세기 25:26절에서 이삭의 나이가 60세가 되던 해에 쌍둥이 에서와 야곱이 탄생했음을 이미 공부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삭과 야곱의 연령 차이는 60년입니다.
본문 28절을 나눕니다. “이삭의 나이가 백팔십 세라” 이삭은 180세가 된 해에 헤브론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렇다면 그해 야곱의 나이는 120세 되었을 것입니다. 월튼(J, Walton)이라는 신학자가 야곱이 밧단아람으로 망명한 나이를 약 77세로 추정하는데 이것에 동의한다면 밧단아람에서 20년을 거주하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야곱은 거의 100세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학자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본문은 아버지 이삭이 사망하게 되었기에 임종을 지키기 위해 야곱이 마므레로 들어간 것처럼 읽게 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마므레로 야곱이 들어가 아버지 이삭과는 약 20년 정도를 같이 산 것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그렇게 아버지 이삭을 모시고 20년 정도를 살던 어간, 아버지 이삭이 열조에게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본문 마지막 29절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삭이 나이가 많고 늙어 기운이 다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그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

  29절을 통해 얻게 되는 정보는 아버지 이삭이 죽자, 야곱의 이야기 때문에 창세기 역사 안에서 얍복 강가에서 해후한 이후 사라진 에서가 다시 등장하여 동생과 함께 아버지를 장사했다는 보고입니다.  다음 주에 살필 36:1-19절에 걸쳐 기록된 에서의 톨레도트(족보)가 등장한 것을 보면 두 사람은 진정한 화해를 이루었음을 알려줍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의 계보 중에 둘째 계보였던 이삭의 생애가 마감되었다는 것을 증언해 주는 본문을 살피면서 이런 각양의 삶의 언저리를 통해 우리들이 직시해야 하는 교훈을 찾아볼까 합니다. 다시 본문 마지막 절을 봅니다.
“이삭이 나이가 많고 늙어 기운이 다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그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
  이삭의 나이 180세가 되는 해, 그는 생을 마감합니다. 창세기 저자는 이렇게 기술했습니다. 나이가 많고 늙어 기운이 다하매 죽었다.  제가 이삭의 죽음 보고에 주목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주 세밀해서 그냥 간과하기 쉬운 메시지를 추적해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죽었을 때, 창세기 기자는 이런 후담을 남깁니다. 창세기 25:7-11절을 나누어 보십시다.
“아브라함의 향년이 백칠십오 세라 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그의 아들들인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마므레 앞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것은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서 산 밭이라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니라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의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 이삭은 브엘라해로이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제가 주목하는 구절은 바로 이 대목입니다.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의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 적어도 아브라함은 그가 사망한 이후에 남긴 족적이 아들 이삭에게 하나님의 복이 임하도록 했다는 후담입니다. 야곱으로 자리를 이동해 보십시다. 야곱은 그가  죽기 전에 12아들들에 대한 향후 메시지를 남깁니다. (창세기 49:1-33) 아들들에게 유언겸 복을 남긴 이후 생을 마감하자 그의 죽음 이후의 보고를 창세기 기자는 이렇게 남깁니다. 창세기 50:1-3절입니다.
“요셉이 그의 아버지 얼굴에 구푸려 울며 입 맞추고 그 수종 드는 의원에게 명하여 아버지의 몸을 향으로 처리하게 하매 의원이 이스라엘에게 그대로 하되 사십 일이 걸렸으니 향으로 처리하는 데는 이 날수가 걸림이며 애굽 사람들은 칠십 일 동안 그를 위하여 곡하였더라”

  이방인 애굽인들로부터도 애곡의 예의를 받았던 야곱은 그의 생을 그렇게 인정받으며 떠났음을 창세기 기자는 보고합니다. 마지막으로 요셉의 죽음을 살펴보십시다. 요셉은 자기의 죽음을 앞두고 남아 있는 형제들에게 이렇게 유언을 남겼습니다. 창세기 50:24-26절을 읽겠습니다.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요셉이 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끝까지 하나님의 일하심을 붙들었던 요셉의 인생은 우리에게 적지 않은 신앙의 귀감이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이삭은 아브라함, 야곱, 요셉에 비해 열조에게로 돌아갈 때, 그리고 그 이후의 보고에서 하나님과 관계된 그 어떤 신앙의 유산이 보고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이삭의 마지막 보고는 29절이 전부였습니다.
“이삭이 나이가 많고 늙어 기운이 다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그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
  나이가 많아 죽었다. 기운이 다하여 죽었다. 아들들이 장사했다. 나름의 유감이 제게 있습니다. 똑같이 성경 창세기는 4명을 구속사의 도구로 사용된 족장으로 소개합니다. 하지만 족장 역사의 보고에서도 유독 이삭의 보고만이 가장 짧습니다. 엄격하게 평가하지면 이삭의 전기에 대한 순수한 보고는 26:1-33절이 전부입니다. 이 기록의 반도 이삭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았다는 보고가 아니라 그랄에 장막을 치면서 아내 리브가를 누이 동생이라고 아비멜렉에게 속였던 수치스러운 보고입니다. 이삭의 죽음을 보고한 본문 이해를 통해 저와 여러분이 배워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 열조에게로 돌아가기 전까지 하나님이 만드신 목적에 부합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이삭은 이 점에 있어서 아버지, 아들, 그리고 손자에 비해 그리 큰 족적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그가 이 땅에 남긴 신앙의 족적은 보고할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나이가 많아 죽었다. 기운이 다하여 죽었다. 아들들이 장사했다. 이것은 승리 보고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산 것에 대한 보고입니다. 팀 켈러 목사는 이렇게 갈파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머니 뱃속에서 우리를 빚으셨다는 사실은 그분이 태아에게도 가치를 부여하시고 처음부터 우리를 어떻게 사용하실지 계획  하셨음을 생생히 일깨워준다.” (팀 켈러, 『태어남에 관하여』, 두란노, 14쪽)
  팀 켈러의 갈파는 시인의 노래를 생각나게 합니다. 시편 139:13-16절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적어도 우리 모두는 이런 하나님의 복을 받고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는 만드신 목적대로 우리들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어떤 사람이 포도원 농장에 무화과나무를 심기어져 있는 것을 보고 매년 농장에 와서 열매를 가져가기를 원했지만 헛수고였습니다. 3년을 그리했지만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화가 난 이 사람(아마도 포도원 농장주인)은 포도원지기에 당장 이 무화과나무를 베어 버리라는 압박을 합니다. 그러자 포도원지기가 애원을 합니다. 금년에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합니다. 거름도 주고, 땅 관리도 다시 잘 해서 내년에는 열매를 맺게 하겠다고 말미를 얻습니다. 그리하여 베어버림을 당할 처지에 놓인 무화과나무는  생명을 유지하게 되었다고 누가복음 기자는 기록합니다. 누가복음 13:8-9절을 의미 있게 읽습니다.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예수님의 이 비유 기사를 읽다보면 감정이 이입되는 것을 느낍니다. 일 년이라는 한시적 생존의 유예를 받은 이들이 누구입니까? 저와 여러분입니다. 일 년이라는 시간은 우리들의 삶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호흡을 연장 받은 이유는 열매를 내라는 미션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마땅히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선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앞에서 언급한 팀 켈러 목사는 ‘태어남’이라는 책과 더불어  『죽음에 관하여』라는 책을 동시에 출간했습니다. 책에서 팀 켈러는 대단히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남겨놓습니다.
“이생의 모든 것은 우리 곁을 떠나지만 하나님의 사랑만은 예외다. 그 사랑은 우리와 함께 죽음 속으로 들어가 죽음을 통과해 우리를  그분에게 안기게 한다. 당신이 잃을 수 없는 것은 그것 하나뿐이다. 우리를 품어주실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늘 극도로 불안할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팀 켈러, 『죽음에 관하여』, 두란노, 35쪽)

  읽다가 이런 은혜가 임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저와 여러분의 죽음 이후까지를 사랑으로 준비해 놓으셨는데, 우리가 이 땅을 사는  동안 만드신 분의 목적대로 살지 않으면 그것이야 말로 배은망덕이요 직무유기이지 않겠습니까? 김기석 목사께서 잘잘법이라는 CBS 유튜브 방송에서 내년 4월에 현직에서 은퇴함을 공식 선언했습니다.
  몸이 좋지 않아 약 2년 정도 먼저 조기 은퇴를 하는 것입니다. 금년 초에 김 목사님과 개인적으로 만났을 때, 당신이 갖고 있는 육체의 나약함에 대해 진솔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앞으로 하시겠지만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피력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제가 이렇게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목사님, 한국교회를 위해 조금만 더 수고해 주십시오. 목사님의 목양적인 삶을 바라보는 후배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건강을 위해 중보 하겠습니다.”
  그렇게 만남을 가진지 9개월이 지난 뒤에 목사님이 은퇴를 계획하고 있다는 방송보도를 보고 이런 소회가 밀려왔습니다. 정말로 수고하셨다. 한국교회와 나 같은 부지깽이 같은 목사를 위해. 김 목사님이 잘잘법을 시작하면서 읊조린 멘트는 이것이었습니다.
“40년 동안 부족한 저를 사용해 주신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중략) 3년 뒤, 5년 뒤, 그리고 10년 뒤가 아니라 오늘이라는 시간에 세상의 모든 것 당연시 여기는 제 오래된 태도에서 은퇴하게 해주십시오.”
  제가 길벗으로, 글벗으로 때론 목회의 길라잡이로 김기석 목사를 선택한 것이 얼마나 복 된 일이었는가를 다시 한 번 재확인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적어도 인생의 말년에 하나님께 이런 보고를 드릴 수만 있다면 만드신 목적에 부합하면서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결론) 저는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가요계의 황제라고 지칭되는 조용필 씨가 오래 전에 이런 노래를 만들어서 노랫말을 붙였습니다.

살면서 듣게 될까/언젠가는 바람의 노래를
세월 가면 그때는 알게 될까/꽃이 지는 이유를
나를 떠난 사람들과/만나게 될 또 다른 사람들
스쳐가는 인연과/그리움은 어느 곳으로 가는가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가 없네/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방법뿐이야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비켜갈 수 없다는 걸/우린 깨달아야 해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사랑하겠네
(바람의 노래 가사에서)

  세속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도 어느 정도의 철학적인 사유만 하더라도 이 정도의 가치를 갖고 삽니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사랑하겠네”
  하물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이 나를 만드신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삶을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살아내야 할 미션은 열조 앞에 서기까지 나를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내신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내는 것, 바로 이것입니다. 적어도 이렇게 흔적을 보고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본문 29절을 읽겠습니다.
“이삭이 나이가 많고 늙어 기운이 다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그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

찬양하고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