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왜 사느냐 이상을 이루기 위하여 산다. 보라, 풀은 꽃을 피우고 나무는 열매를 맺는다. 나도 이상의 꽃을 피우고 열매 맺기를 다짐하였다. 우리 청년시대에는 부모의 사랑보다 형제의 사랑보다 처자의 사랑보다도 더 한층 강의(剛毅)한 사랑이 있는 것을 깨달았다. 나라와 겨레에 바치는 뜨거운 사랑이다. 나의 우로(雨露)와 나의 강산과 나의 부모를 버리고도 그 강의한 사랑을 따르기로 결심하여 이 길을 택하였다.” 지난 주간에 동기회 부부 수련회를 가졌던 상해 홍구 공원에 마련된 윤봉길 義士를 기념하는 매헌 기념관 2층에 걸려 있는 윤의사의 친필 시의 전문입니다. 상해에 도착하여 2박 3일 동안 상당히 습한 기후와 30도에 육박하는 더위 때문에 여행 자체가 많이 힘들었지만 경유한 윤봉길 의사의 유적지에 들려 이 시 구절을 보는 순간, 얼마나 경이로운 감동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25세의 아주 젊은 나이에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기로 결심하고 일본군 천장절 기념식장에서 동아시아를 피로 물들게 한 그 장본인들을 향하여 그들을 피로 물들게 한 던진 폭탄 쾌거를 이룬 윤봉길 의사의 고귀한 희생을 만나면서 더위에 지쳐 짜증나 있는 나의 모습이 얼마나 초라하게 여겨졌는지 모릅니다. 매헌 기념관의 한 사진 컷은 윤봉길 의사의 총살형 이후의 생생한 흔적을 보여주는 빛바랜 사진이었습니다. 사진에서 얼굴이 가려져 있고 십자가형의 등나무에 손이 묶인 채로 서 있는 윤의사의 이마 정 중앙에 너무나 선명하게 남아 있는 총알 관통 자국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렇게 조국을 위해 삶을 버렸습니다. 이억 만 리 타국에서 아직도 걸음마를 잘 떼지도 못한 아들들을 고국에 남기고 초개와 같이 삶을 버려야 했던 한 대한의 젊은이의 말 못할 아픔이 얼마나 애절하고 통절한 것이었겠습니까? 그의 이마에 난 관통 자국을 보고 느끼면서 왠지 모르게 너무나도 작은 나의 자화상이 못내 부끄러워 그의 순국 초상화 앞에서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이 자랑스러운 대한의 아들을 죽인 역사상 가장 악독한 일본이라는 괴물은 오늘도 여전히 살아서 그토록 유린했던 우리들을 다시 유린하고 있습니다. 수없이 많은 죄를 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반성이 없는 그들은 지금도 건재합니다. 건재뿐만 아니라 다시 그 옛날을 그리워하는 도저히 묵과하기에는 치 떨리는 일들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상해 홍구 공원을 방문하면서 윤의사의 순국 초상화에 앞에서 숨을 쉴 수 없었던 부끄러움과 더불어 또 하나 가슴 깊은 곳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감정이 있었습니다. 분노였습니다. 수많은 이 땅의 민초들이 그렇게 개죽음을 당하기까지 무력했던 나라를 잃고 팔아먹었던 정치 권력자들을 향한 분노였습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다보니 오늘 우리 대한민국의 위정자들을 향한 날카로운 각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악하고 기회주의적인 민족성을 갖고 있는 파렴치한인 일본이 바로 옆 나라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위정자들은 다시는 이 땅에서 정권을 잡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오늘을 사는 지식인의 한 사람인 저 역시 노력해야 하는 공통분모임을 다시 한 번 각인하게 되었습니다. 4년 전, 성지 순례 시에 이스라엘에서 유대인들이 세운 나치 희생 박물관인 야드 바쉠을 방문했을 때 유대인들 스스로가 치욕적이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아픔의 기억들은 결코 다시는 잊지 말자고 결의한 그들의 정신을 보면서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중국 땅, 상해에서 경험한 그냥 그렇게 지나칠 수 있는 나라 사랑을 다시 한 번 진하게 경험하는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매헌 기념관에서 동기 목사 한 명이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애국가를 불렀습니다. 애국가의 소절이 이리 아름다운지 새삼 경험했습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