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 팔기(賣)가 아닌 도장 파기(刻) 몇 년 전에 친구와 함께 강남 쪽에 갔다가 문구점에 들어갔는데, 마침 그 문구점은 도장도 파는 곳이었습니다. 마침 한사람이 급하게 들어오더니 도장을 파달라고 하면서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 지를 묻는데 급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느긋하게 ‘금방 됩니다.’하면서 컴퓨터에 이름을 입력하니까 컴퓨터 모니터에 도장의 모습이 나타나고 도장의 모양과 글씨체를 선택하자 자동으로 기계가 움직이며 금방 도장이 완성되었습니다, 언뜻 보기에도 사람이 손으로 파는 것보다 더 정교해 보였습니다. 며 칠 뒤에 제가 쓰는 안경이 문제가 있어서 고치려고 동네 안경점에 들어갔는데, 안경점과 함께 도장을 파는 일도 겸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 주인아저씨는 도장을 파고 있었는데 직접 손으로 도장을 파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얼마 전에 보았던 장면이 떠오르면서 눈앞에서 손으로 도장을 파고 있는 그 모습과 겹쳐져 보였습니다. 기계가 하는 일을 이 가게에서는 사람이 직접파고 있었던 것입니다. 기계가 하는 일을 사람이 하는 건 별로 경쟁력이 있어 보이지 않았고, 답답해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남들은 컴퓨터로 도장을 파는데 손으로 도장을 파는 건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 아닌가요?”라는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도장을 파는 아저씨의 책상 앞에 쓰여 있는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도장은 손으로 파야 합니다.” 그 순간 손으로 직접 도장을 파던 아저씨의 모습이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손으로 직접 도장을 파시던 그 아저씨한테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멋과 자기 직업에 대한 어떤 철학 같은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도장을 파는 것이 아니라(賣) 도장을 파고(刻) 있었습니다. 이강덕 목사를 보면 도장을 파고 있던 그 아저씨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절대로 쉬운 길을 가지 않고, 어려운 길, 꼭 가야만 하는 길을 고집하는 장인의 모습이랄까, 그의 삶에는 진지함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듣기 원하는 말이 아니라, 이 세상이 들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합니다. 그리고 아무도 들어주지 않더라도 끊임없이 이 이야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말씀하셨을 때(2:5, 3:11), 유다 백성들이 자기를 통하여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을 줄을 알면서도 묵묵히 외쳤던 선지자 에스겔의 열정이 그의 글 안에 녹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자의 목회 칼럼을 자주 읽습니다. 저자의 칼럼에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목사라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아니 일어나고 있는 일상들인데, 그 일상들이 이 목사의 칼럼에서는 특별한 이야기들로 변합니다. 같은 목회 현장에서 같은 경험을 하는 저에게 이 목사의 글은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단순한 문학적인 재능이 아닙니다. 일상의 삶을 귀하게 여기고, 매 순간을 삶에 충실히, 정성을 다하여 작품을 만들어 가듯 살아가는 진지함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는 뉴스가 아닙니다. 깊어 가는 밤, 호롱불 아래서 밤이 새도록 듣는 것이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 딴 세상에라도 간 것처럼 음미하고 느끼면서 듣습니다. 천천히, 깊이, 말하는 사람의 호흡에 듣는 사람도 호흡을 맞추어 들어야 들리는 것이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그의 글을 통하여 이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그의 글을 허투루 읽지 못합니다. 아예 안 읽으면 모를까. 그래서 그의 세 번째 책 ‘시골목사의 목양심서’를 기다려 왔습니다. 내가 기다리던 책이기에 나에게 추천하는 마음으로 추천합니다. 반복적인 목회의 틀 속에서 특별함의 은혜를 잃어버린 체 익숙해져가는 우리 목회자들이 꼭 읽어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책은 목회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공동체 모두의 이야기(교우들의 이야기)입니다.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들 속에 담겨있는 특별한 은혜 이야기이기에 평신도들에게도 의미 있는 책입니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특별한 순간이 되는 그 은혜가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기를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