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대학을 졸업하고 경상남도 밀양에 소재해 있는 농촌교회에서 1990년에 단독목회를 시작했습니다. 농촌교회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제가 담임을 하여 섬겼던 교회는 환경 자체가 상당히 열악했던 곳이었습니다. 지금은 다 추억이 되었지만 그래서 특히 화장실에 얽힌 에피소드들은 널려 있습니다. 지금은 단어조차 생소한 것처럼 느껴지는 재래식 화장실이었던 교회였기에 태어나서 도시에서만 생활을 했던 저와 아내는 부임 초기에 상당히 화장실 사용이 어색했고 불편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아무리 청소를 해도 여름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생기는 구더기들, 재래식이다보니 주변 냄새는 여름만 되면 견디기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파리들이 살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화장실은 그 위용을 자랑했습니다. 때가 되어 정화조 청소 차량이 와야만 또 어느 정도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바로 그 곳이 저의 초창기 목회적 추억들이 남아 있던 처녀 목회지였습니다. 그렇게 3년을 그곳에서 살았던 터라 시간이 지나다보니 수세식 화장실을 도시에 나가 사용하다보면 어딘가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도리어 어색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농촌교회를 섬기면서 주중 화장실 청소는 당연히 교역자의 몫이었고 이로 인해 저는 인분(人糞)과 친구가 되어 살았던 어렴풋한 애환들이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그렇게 산 지가 20년이 훨씬 지났습니다. 그리고 너무나도 당연히 이후 저는 깨끗한 현대식 화장실에서 생활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 재래식 화장실은 전설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지난 주, 20년 전 기억에 남아 있는 전설의 고향의 향수(?)를 떠 올리는 일을 경험하였습니다. 똥치우기입니다. 물론 20년 전과 지난 주에 경험한 똥치우기는 배설한 대상이 다르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교회를 건축하여 이곳으로 이사 온 이후 저는 우리 교회 공간 중에도 특히 뒤뜰 정원을 아주 좋아합니다. 외부 스피커에서 나오는 잔잔한 찬양을 들으면서 식사 이후에 정원 탁자에 앉아 커피 한 잔을 하며 쉼을 갖는 행복한 장소가 바로 정원입니다. 이 시간은 누구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을 정도로 즐기는 편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뒤뜰 정원은 저의 놀이터인 동시에 사색의 장소인데 얼마 전부터 불청객의 출몰이 잦아들었습니다. 소위 도둑 고양들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찾아오는 것은 좋은 데 이놈들이 시도 때도 없이 저의 거룩한(?) 사색의 장소에서 실례를 하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먹성이 너무 좋아서 그런지 배설의 횟수도 잦아들었습니다. 그놈들의 똥을 치우는 것은 아무리 그래도 아내나 여전도사님에게 맡기기에는 제가 불편합니다. 할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똥 치우는 목사로 요즈음 사역의 한 획을 긋고 있는 형편입니다. 문제는 고양이 똥 치우는 것이 밑 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것입니다. 너무나 빈번하기 때문입니다. 목사가 영혼을 구하는 데에 최선을 다해야 하겠는데 고양이 똥 치우는데 시간을 허비해서야 되겠습니까?
세인지체 여러분! 불쌍한 담임목사를 똥 치우기에서 좀 구제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