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 사람에게 스며드는 본능적인 자기 방어 능력으로 생기는 것이 ‘계산함’이라는 이야기를 혹자를 통해 들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조금 나쁜 표현을 빌리자면 ‘약삭빠름 혹은 영악해짐’ 일 것입니다. 이 논리를 받아들이자면 이번에 개인적으로 나는 그 반대의 선택을 했습니다. 서울에서 나름 본인의 맡은바 사역을 잘 감당해주는 아들을 지방 소도시의 교회인 세인 교회 부교역자로 불렀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 아들을 세인 교회 교육파트(주일학교, 찬양 사역) 교육전도사로 청빙하기로 교회에서 의결했습니다. 아내가 극구 반대를 했고, 아들에게는 정말로 큰 짐을 짊어지게 하는 일이기에 미안한 마음이 있지만 그렇게 결정을 하고 12월 중에 아들 전도사를 부교역자로 청빙하기로 한 것입니다.
지방 목회를 하는 목사들의 가장 큰 아픔은 부교역자 수급에 있어서 절망적인 상태에 있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좋은 조건을 내 걸어도 오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세인 교회 역시 예외일 수 없습니다. 약 2년 동안 교육 파트 사역자가 없이 평신도 중심으로 교육기관을 사역해 왔는데 이제 그 한계가 드러나고 있는 어려움이 스멀스멀 나타나고 있어 더 이상은 지체할 수 없는 압박감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로 인해 약 3-4개월 전부터 아들에게 에비로서의 자존심을 다 내려놓고 몇 년 간, 교단 사역을 중단하고 아버지가 섬기는 교회를 도와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이렇게 하기 까지는 아들이 제천으로 내려온다는 것이 앞에서 전술한 대로 여러 가지 면에서 영악함에 그리고 계산함에 실패하는 일인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이기에 정말로 많이 고민하며 생각했고 기도한 끝에 진행한 일이었습니다.
첫째, 아들의 목사 안수 시기가 늦어지는 손해를 감수하는 선택이었습니다. 세인교회가 교단에 속한 교회가 아니고 독립교회 연합회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아들에게 세인교회 부교역자 사역을 부탁한 것은 연대 대학원에서 지금 밟고 있는 TH.M 학위 취득을 할 때까지라는 전제를 달았기에 앞으로 2년 정도 교단 사역은 중단해야 합니다. 이것은 본인에게는 손해를 보는 일임에 틀림이 없지만, 세인 교회 교회학교 기관을 더 이상 수수방관할 수 없어 이렇게 대승적인 결단을 부탁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아들이 기거하는 장소는 서울입니다. 매주 마다 제천으로 내려와야 하는 체력적인 부담감은 가뜩이나 빡센 학위과정에 적지 않은 에너지를 빼앗기는 일이 분명합니다. 아들의 나이가 이제 20대가 아니라 에비가 바라보는 마음은 적지 않게 ‘쨘’ 하지만 그래도 주님의 교회를 다시 한 번 일으켜 세우는 중차대한 사명인 것을 종용하며 아들을 설득했고, 아들이 고민 끝에 에비의 마음을 이해해 주었기에 이 일이 가능했습니다.
셋째, 제천은 실버시티입니다. 젊은이들이 머무는 도시가 아니라 떠나는 도시라는 말입니다. 설상가상으로 한국교회 교회학교는 무너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아이를 낳지 않는 인구 절벽의 암울함이 이제는 현실적으로 성큼 다가온 이 시기에 주일학교 사역을 맡아야 하는 영적 부담감이 아들에게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아내는 끝까지 반대의 뜻을 폈지만, 고지식하기 이를 데 없는 남편에게 두 손 두 발을 들고 그냥 져주기로 한 은혜(?) 때문에 아들을 염려하는 엄마로서의 스트레스가 가중될 것이라는 또 하나의 심리적 짐 덩어리가 아내에게 고스란히 남게 되었습니다.
사정이 이런 데도 미련한 선택을 한 이유는 그래도 한 가지입니다. 아들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세인 교회의 다음 세대를 다시 한 번 세워보자는 가장 큰 대의 때문이었습니다. 아들에게 큰 부담을 안겼지만, 또 이런 환경에서 하나님의 사역자로 아들이 부쩍 커 줄 것을 믿기에 더 민감히 기도하려 합니다. 그 동안 여러 가지 부족한 것투성인 아들을 위해 잘 보듬어 준 홍은교회 담임목사인 서도형 선배와 아들 전도사를 위해 함께 아름답게 동역해준 홍은 교회 고등부 부장집사님과 교사들에게 다시 한 번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