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 2주기에 부쳐 생전에 계실 때 말년 장모님의 육신은 쇠할 때로 쇠하셔서 거동하시기가 불편하셨습니다. 함께 동거했던 아들의 전언에 의하면 평생을 깔끔하게 사셨던 어른이라 그렇게 당신의 몸을 추스르시기도 너무 힘드셨는데 방을 쓸고, 닦고 하시는데 게으르지 않으셔서 외손자에게 타박도 많이 당하셨다고 이야기를 주워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을 각오로 하셨던 것은 아들 목사와 사위 목사의 목회를 위해 무릎으로 드리신 다니엘 기도였습니다. 30여년 목회를 하면서 내 딴에는 내가 최선을 다해 이만큼의 목양의 터를 이끌어 올 수 있었다고 기고만장했습니다. 그러나 장모님이 소천하시고 난 이후 지난 2년 동안, 얼마나 내 스스로가 못난 목사였는지를 뼈저리게 체감했습니다. 위태위태할 때마다 목양의 현장이 은혜 중에 서 갈 수 있었던 것도, 예언자 스가랴의 말대로 검게 타나 남은 그슬린 마른 장작 나무 같은 정말로 볼품없는 목사인데도 하나님의 교회를 이렇게나마 섬길 수 있었던 것도, 알고 있는 지식과 영성이 빈약하고 일천하여 성도들을 섬기는 것 자체가 기적임에도 어줍지 않게 교우들을 기도로 섬길 수 있었던 것도 모두가 장모님의 중보 때문이었음을 근래가 되어서야 뒤늦게 절감한 불효막심한 사위는 장모님 2주기 추모예배를 인도하며 그 은혜를 가슴으로 다시 담았습니다. 해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안식하실 장모님을 추모하는 날, 장모님의 그 엄청났던 사랑을 다시금 깨닫고 돌아왔습니다. 오늘 새벽예배 시간에 금년에 시작한 성경통독의 일독을 또 은혜롭게 마쳤습니다. 읽다가 요한계시록 21:4절에서 잠시 큰 호흡을 가다듬으며 위로의 위로를 받았습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주님의 이 위로가 장모님에게 임하셨음을 믿기에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제천으로 돌아오며 당신의 그 기도의 스티그마를 새겨봅니다. 장모님,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더불어 살아계실 때 무뚝뚝한 사위라 많이 들려드리지 못했습니다. 늦었지만 진정성을 담아 고백합니다. 장모님,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