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단

제목[목사님컬럼] 아들을 통하여2024-03-27 14:39
작성자 Level 10

우리 교우들에게 혹은 지인들에게 가끔 하는 농이 있었습니다.

“딸이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가끔 아내가 텔레비전에서 딸이 아빠에게 애교를 부리는 장면들이 나오면 저에게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아마 딸이 있었으면 이강덕씨는 대단했을 거라고. 하나님이 나보다 딸을 더 많이 사랑할 것을 알고 딸을 안 주셨다고.”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말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식에 대한 감흥이 젊었을 때와는 또 다르다는 생각을 진하게 하게 됩니다.

지난 주간 아들이 섬기고 있는 군인교회에 설교로 섬기기 위해 다녀왔습니다.

화요 예배는 아들이 찬양을 인도하는 예배임을 그 날 알았는데 군에 입대하기 전 교회에서 찬양을 인도하던 것과는 아들이 사뭇 다른 느낌의 인도자가 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더 강하게 사모하는 찬양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아들을 보면서 대견함과 동시에 계속해서 그렇게 자라주기를 소망해 보았습니다.

하루 성과제 외박(포상 외박)이 허용되어 같이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며 이런 일 저런 일을 토닥거리며 건강한 사역자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드디어 고민하는 아들의 말을 들어주면서 당사자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냥 아비 된 자로서의 기쁨이 흘러넘쳤습니다.

저보다 연배인 지인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셨지요.

“목사님. 목사님은 가끔 딸딸하지만 아들은 그냥 든든해요. 옆에만 있어도. 두고 보세요.”

선배들의 말이 틀린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든든한 아들 때문에 감사했습니다.

수요 예배 참석 때문에 아내는 아들과 시간을 좀 더 보내기로 하고 제가 먼저 기차를 타고 제천으로 들어왔습니다.

제천행 열차 시간이 촉박해서 창구에서 티케팅을 하지 못하고 여객전무에게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급하게 그냥 열차에 탔습니다.

막 표를 구하려고 하는데 숨이 넘어갈 것 같이 헐떡이며 달려온 아들이 드라마틱하게 표를 구해 달려왔습니다.

“아빠, 표 샀어요. 건강조심하시고요.”

그렇게 아들과 1박 2일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제천으로 오는 기차 안에서 남들이 혹시 저 사람 미친 사람 아니야 할 정도로 가끔 히죽히죽 웃었습니다.

아들이 너무 좋아서.

생각은 여기까지.

주일 예배 설교를 위해 금요일 출근해서 마가복음 본문 텍스트를 다시 묵상하는데 솟아나오는 눈물 때문에 잠시 말씀 준비를 머뭇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아들이 좋아 어쩔 줄을 모르는데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죽이셨다는 감동이 저를 꼼짝하지 못하게 조여 왔기 때문입니다. 이론으로는 두무지 설명될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말입니다.

당연한 둣이 잊고 사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버지 되심, 아들 예수에게 등을 돌리셔야 했던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 외아들이셨기에 너무나 소중했을 텐데 그를 죽여야 만 했던 아버지만의 고통을 더 깊이 헤아리는 은혜가 그 날 저에게 가득했습니다.

군에 있는 아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더 진하게 느낄 수 있는 감동을 하나님은 종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신학대학 학부 시절 읽었던 칼리 지브란의‘사람의 아들 예수’에 나오는 구레네 사람 시몬의 독백이 새삼 가슴 깊은 곳에서 떠올랐습니다.

“이제, 내가 십자가를 대신 져 주었던 그 사람이 나의 십자가가 되고 말았다.”

아들을 만나고 온 뒤, 다시 한 번 이 명제에 천착(穿鑿)하는 목회자가 되리라 다짐해 봅니다.

그것이 마땅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