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단

제목[목사님컬럼] 새벽에2024-03-27 14:38
작성자 Level 10

이번 주간, 다시 새벽예배 운행을 담임목사가 직접 하기 시작했습니다.

강지숙 전도사님이 육체적으로 불편함이 임했기 때문입니다.
여자의 몸으로 겨울 새벽에 운행을 시켰던 담임목회자의 마음이 편할 리 없었는데 차제에 여전도사님의 몸도 회복해야 할 당위성이 있고 추스를 필요도 있기에 다시 새벽에 운전대를 잡은 것입니다.
정확히 오전 4시 10분부터 시작되는 새벽 운행은 그 동안 머릿속에서 지워졌던 흔적을 하나 둘씩 끄집어 내주었습니다.
그것은 새벽을 깨우는 한국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제천 시내 도로를 오전 4시를 즈음하여 달리는 차량들은 교회 차량들이 거의 전부인 것처럼 보이는 착각이 들었습니다.
하기야 아무리 새벽형 인간으로 살라는 고언(高言)들이 여론들을 통하여 권고되고 있지만 새벽을 깨우는 경우가 일반인의 경우 얼마나 되겠습니까?
아마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 차량들이 종횡무진(?) 헤드라이트를 키고 달리는 제천 시내 도로의 광경을 보면서 한국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강복하심이 넘쳐나기를 기원해 보았습니다.
또 하나는 한국교회 새벽예배 사수자(死守者)들입니다.
주지하듯이 제천의 겨울 날씨는 영하 20도가 다반사입니다.
타 지역에서 목회를 하는 친구 목사들이 새벽예배 인도의 고통을 말할 때마다 가소롭습니다.(?)
바람까지 부는 제천의 새벽은 말 그대로 시베리아입니다.
그런데 새벽에 교회 차량이 운행되어 정차하는 곳마다 완전무장을 하고, 목에 목도리를 칭칭 감고, 안면에는 방한용 마스크를 하고, 머리에는 에스키모 방한모를 쓰고 영락없이 새벽을 깨우며 새벽예배를 사수하려는 지체들이 있습니다.
언젠가 새벽예배는‘살아 있는 순교’라고 설교 시간에 전한 적이 있는데 조금도 과장이 아닙니다.
한국교회가 수많은 안티들로 들끓고 있고, 교회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사탄의 권세에 짓눌려 있는 질 나쁜 인생들이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태산 같은 흑암의 권세들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나름 선방하는 이유는 아직도 한국교회는 살아 있는 순교자들이 새벽을 무릎으로 섬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확신합니다.
차제에, 제가 목회를 하는 교회 공동체는 젊은이들 가운데 살아 있는 순교자들이 많아지는 교회이기를 소망해 봅니다.
젊음의 시절, 잃어버린 예배인 새벽을 깨우는 지체들이 또한 교회의 소망입니다.
타 교회에 비해 세인공동체가 새벽을 깨우는 젊은 지체들이 많은 편인 것에 감사하지만 아직도 종은 배가 고픕니다.
나는 우리 세인 공동체의 젊은이들 그룹에서 살아 있는 순교자들이 속속 일어나기를 기대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자가 그 분을 경배하기 위해 새벽을 깨울 수 없다면 그것은 무늬만 그리스도인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영화‘창끝’으로 더 유명세(?)를 탄 남미 에콰도르의 아우카 족에게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해 밀림으로 들어갔다가 29세의 나이로 순교한 짐 엘리옷 선교사의 갈파가 오늘을 사는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열외적인 지침이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저는 없습니다.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것을 위해 지킬 수 없는 것을 버리는 자는 절대 어리석은 자가 아니다.”

‘각설하나 더’

“아직도 담임목사가 새벽운행을 하는 교회의 성도들은 마음이 어떻게 생겼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