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첫 번째로 정기 휴가를 나왔습니다. 공교롭게 4년 전, 소천하신 아버님의 기일과도 겹치는 상황이라서 미리 여름휴가를 쪼개기로 계획하고 지난 주 화요일부터 2박 3일의 일정으로 필그림 하우스와 인천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여름휴가의 연장에 있었지만 실상은 가을 휴가였습니다. 아들과 짧은 시간이었지만 교회를 떠나 또 다른 공간에서 쉼을 갖게 된 것에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문득 아내, 아들과 함께 가족이 여행을 함께 한 적이 언제인가를 반추하니 아득했습니다. 그러기에 가족과 함께 하는 가을 여행은 그런대로 제 멋이 있었습니다. 숙소로 정해 놓은 경기 북부 지역에 아직은 어색하지만 군데군데 자태를 뽐내는 단풍들로 눈에 들어왔습니다. 가을의 계곡물은 지난 여름의 분주함을 다 이겨내서인지 더 맑고 깨끗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시끄러운 세상의 소리에서 잠시 물러나있다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하우스 내에 세련되게 만들어진 북 카페에서 은혜로운 피아노 찬양 경음악과 한 잔의 따뜻한 레몬에이드 차를 시켜놓고 해돈 로빈슨의 책에 푹 잠기는 행복한 시간도 가져 보았습니다. 이런 행복과 더불어 가장 귀한 시간은 누가 뭐라 해도 아들과 함께 나누는 부자지간의 정담이었습니다. 대화를 하다가 아직도 군복무 기간이 많이 남았다고 툴툴대기는 했지만 그래도 입대를 엊그제 한 것 같은데 군생활의 반을 감당해 준 아들이 대견해 감사했습니다. 더불어 큰 걱정하지 않게 아들이 좋은 환경에서 군복무를 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도 감사했고, 대화를 해보니 이제는 아들이 미래의 사역을 놓고 제법 고민하는 것 같아 앞으로 제대 이후에 자기의 앞가림은 에비보다 더 잘 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겨 마음이 놓여 또한 감사했습니다. 옛 말에 품안에 자식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제 제대 이후에 아들이 저의 부부와 얼마나 함께 같은 공간에서 생활을 할까를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다 싶었습니다. 더군다나 주의 종으로 부름을 받아 앞으로 사역의 현장에 투입되기까지 더 많은 훈련과 교육과 성장의 과정을 요할 텐데 부모 밑에서 어리광을 부리며 살기에는 이제 아들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다는 생각이 실감났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떤 의미로 보면 이번 여행이 그리 흔치 않을 가족 여행이었기에 지난 2박 3일의 여정은 짧기만 했습니다. 마지막 날, 인천에 들려 아버님 4주기 추도예배를 드리기에 앞서 시간이 조금 남아 제가 어려서 뛰어 놀던 출신교회를 아들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고향 교회를 떠난 지 거의 30여년이 흘렀지만 교회를 보는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지금은 현대식으로 건축되어 옛 모습은 하나도 남지 않아 아쉽기는 했지만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기도했던 지하 기도실, 통기타 들고서 문학의 밤 연습을 한다고 있는 폼을 다 잡던 1층 교육관, 여름성경학교 시절 무더운 여름철 서늘한 쉼터가 되어 주었던 지금은 잘라져 없어진 은행나무 터까지 고향교회를 향한 저의 시선은 아직도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아들에게 이곳에서 신앙의 꿈을 꾸었던 추억을 말해주고 아주 어려웠던 시절 살았던 옛날에 살았던 집을 알려주며 비록 가난했지만 꿈과 비전만은 잃지 않았던 70-80 시대의 소망을 아들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1974년에 졸업한 창영초등학교에 들려 선배인 강재구 소령 동상 앞에 포즈를 취하고 콧물 흘리며 심장 박동 거세게 뛰어 놀던 운동장을 향해서 이렇게 마음으로 소리쳤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추억이 아름답도록 해주셔서.’
가을 여행, 유행가 가사 같지만 저에게는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추억의 시간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