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오프 라인 새벽예배가 중단된 지 한 달이 되어간다. 성도들은 없지만 새벽을 지키는 것은 목사의 중요한 사역 중에 하나이기에 지난 한 달 동안 엎드림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새벽 기도를 마치고 교회에 나와 기도해야 하는 성도들의 빈자리를 보면서 데이빗 플랫 목사가 8일간의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면서 그곳에서 울었던 수기(手記) ‘복음이 울다’를 읽으면서 느꼈던 영적 소회가 고스란히 오버랩 되었다. 플랫은 자기가 방문한 히말라야 지역에서 그곳 사람들이 운명처럼 당해야 했던 이해할 수 없었던 삶의 척박함에 대해 하나님께 울면서 계속해서 질문한다. 왜죠? 그런데 이 질문을 오늘 나도 주군께 했다. 하나님, 왜죠? 이 질문은 이미 상투적으로 각인된 코로나의 19는 동성애와 같은 범죄를 자행하는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작품이라든지, 아니면 인간이 자연을 훼손한 결과 주어진 자업자득의 재앙이라든지 등등의 정해져 있는 답을 유도하기 위한 질문이 아니다. 정말로 목사로 살아온 지난날들의 삶의 터널 안에서 어떻게 보면 나를 반추하며 ‘나’라는 존재의 실존적인 삶의 과정에 대한 질문이었기에 말이다. 교회를 향한 내외적인 총질이 극에 달한 지금, 나는 지금 아무도 없는 교회 본당 새벽에서 왜? 라고 심연에서 끓고 있는 아우성을 주군께 올려본다. 독일 출신의 의학 철학자 막스 피카르트는 ‘침묵은 인식의 통로’라고 했지만 하나님의 침묵하심은 지금 나를 많이 아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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