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이었습니다. 월간‘목회와 신학’에 다음과 같이 눈에 띄는 광고가 실린 것이. “목회의 본질을 고민하는 목회자 12명만 선착순으로 모십니다. 주관 : Good church academia” 더군다나 이 광고의 주최자가 당시 한국교회에 적지 않은 도전을 주며 개혁적 드라이브를 걸고 있었던 김동호 목사였기에 더욱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면적인 이유이고 가장 중요한 내면적인 이유는 저의 목회적 탈진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정치적인 타성에 사로잡혀 있는 그래서 전혀 변하려고 하지 않고 오직 자리에만 목숨을 건 자들이 교회를 좌지우지하던 목회지에서 적지 않은 목양적 고민을 하며 영적인 번-아웃 직전이었습니다. 그렇기에 6개월이라는 시간, 그리고 제천에서 서울이라는 거리를 오르락내리락 해야 하는 적지 않은 육체적인 부담감이 있었지만 두 말하지 않고 등록하였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것이 2007년부터 시작하여 개척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사역하고 동역하고 있는 바로‘Good church academia ’사역이었습니다. 충격적인 것은 12명을 선착순으로 모신다는 광고와 김동호 목사의 네임 밸류에 기초한 광고였음에도 불구하고 목회자 4명만이 등록을 했다는 점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초라한 성적표를 내었을까?’ 주최 측이 놀라움 속에 분석한 결과가‘용어’때문이라는 해답을 내놓은 것입니다. 영어 단어‘good church’를‘바른 교회’라고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목회를 하면서 목회자들이 느끼는 스트레스만 해도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그런 곳에 가서까지 스트레스를 받기 싫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른 목회를 하는 것, 모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더 잘 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회의 현실이 녹록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good church academia 는 그 해 1기로 종결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역은 건강한 한국교회를 위하여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사역이었기에 연구위원 중심의 신학대학 교수들과 바른 목회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적지만 뜻을 같이하는 회원 교회의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소그룹 한국교회의 건강한 목회적 대안을 제시하는 학술적인 세미나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지난 주간 14번째 세미나에 참석을 했는데 참석을 할 때마다 받는 도전은 너무나 아쉽습니다. 교회 성장 세미나가 아닌 진짜로 목회자들이 들어야 하는 긴박한 도전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들어야 하는 목회자들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의 위기의 시대에 다시 한국교회가 일어설 수 있는 목회적 대안들을 고민하며 또 고민하는 자리에 교수들은 넘쳐나는 데 현장 목회자들은 너무나 빈약하기에 가슴이 저려옵니다. 지역에서 작은 공동체 사역을 감당하며 한국교회를 위하여 목숨을 건 한 목회자는 이대로 가면 앞으로 10년 뒤에 우리 세미나는 한국교회의 회복을 말하는 자리가 아니라 생존을 말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가슴 치며 내놓았습니다. 반면 또 다른 발제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남은 자 공동체와 교회를 통하여 종말론적인 당신의 뜻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는 조심스런 종말론적인 차원의 전망도 내놓았습니다. 신학대학 시절 함께 공부했던 지금은 서울신대 교수로 있는 친구는 한국교회는 모든 교인들로 하여금 회심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점검하고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며 교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가입되는 모든 지체들에게 급진적인 회심의 잣대를 반드시 적용하여 새로운 교회 공동체의 질을 확보해야 함을 역설하며 아나뱁티즘(재세례파)이 위기를 맞이한 한국교회의 보완적 대안임을 역설하기도 했습니다. 세미나 현장에서 공부하고 들었던 내용들은 교회 성장의 일환이 아니었습니다. 모두가 건강한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한 제안들이었습니다. 재론한다면 한국교회의‘바름’을 위한 노력이여 몸부림이었다는 말입니다. 제가 말하고 있는 일련의 일들이 우리 세인교회가 왜 바른 교회 아카데미를 지원해야 하며 또 기도해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제가 믿는 것이 있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이 바른 신앙으로 살면 하나님은 그 무리와 공동체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입니다. ‘바른 교회, 바른 목사, 바른 성도’ 순교적인 시대를 살아가는 바로 오늘, 우리 세인지체들이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구호의 모토가 아닌 삶의 모토가 되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