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교회를 시무하는 김남준 목사께서 쓴 책들을 목양의 현장에서 사역하는 저에게 적지 않은 감동을 주어 계속해서 섭렵하고 있습니다.
‘청교도적인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
그의 목양적인 사상의 틀입니다. 이 신앙적인 프레임은 적어도 신앙인들이 귀담아 들어야 내용이기에 저 또한 목양의 한 칸에 이런 실천적 삶이 자리하도록 노력하며 살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분의 글들은 자연히 저에게 가까워졌고 동시에 김 목사께서 자주 쓰는 언어에 익숙해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한국교회’를‘조국교회’로 명명한 것이었습니다. 실은 그가 사용하고 있는‘조국교회’라는 단어가 저에게는 탐탁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의해 강점된 시기에 살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이 단어 안에는 배타적이고 국수적인 냄새가 농후하기에‘한국교회’라는 아주 좋은 표현이 있음에도 굳이‘조국교회’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달가울 리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단어를 부담 없이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동기는 ‘하박국’서를 교우들과 함께 특새를 통하여 강해하면서 부터입니다.
하나님의 선민 공동체인 유다가 바벨론의 말발굽으로 짓밟히는 현실을 목도하게 될 참담한 현실에서 하나님께 자기의 조국을 위해 몸부림치며 절규하는 하박국에게 있어서 유다는 포기할 수 없는‘조국’이었습니다. 저 또한 하박국 선지자의 외롭고 고통스러운 토로를 확인하면서부터 유다가 하박국에게 있어서는‘조국’이라는 단어이외에 다른 표현으로는 고백할 수 없었던 절대적 사랑의 대상이었음을 인정하면서 그 때부터 저 또한 우리 한국교회를 자연스럽게‘조국교회’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위기와 침체의 소식이 있는 내 나라에 있는‘조국교회’는 저에게 언제부터인지 상사병의 진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우들이 얼마나 공감하고 이해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조국교회’라는 말을 떠올리면 저는 어느새 디트리히티 본회퍼의 마음으로 조국교회를 바라보는 가슴 뭉클함을 토하곤 합니다.
지난 주 해외 지교회인 필리핀 루존 교회에서 7일 동안 사역을 감당하고 돌아왔습니다. 영적인 부담감을 주셔서 창립 7년 만에 항상 가지고 있었던 영적인 빚을 갚고 돌아와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섭씨 38도를 오르내리는 더위의 한복판에서 숨쉬기조차 쉽지 않은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부족한 종을 기다리고 있었던 지체들에게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선포하고 돌아올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공항을 빠져 나오는데 지난 한 주간 동안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싱그러운 봄바람이 얼굴을 때렸습니다. 이제는 완연한 봄인데 평상시 같으면 왜 이리 날씨가 아직도 쌀쌀한 것이지 하는 볼 맨 소리를 하는 것이 당연할 터인데 저에게 그런 부정적인 생각과 표현은 이미 사라졌습니다. 그 바람의 감사함이 얼마나 크든지 내 나라, 내 조국의 풍경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제천으로 내려오는 길목에서 곳곳에 세워진 십자가의 교회들이 왜 그리 눈물겹게 귀하든지 조국교회는 너무나 존귀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무감각해진 내 조국과 내 조국 교회에 대한 사랑에 무관심했던 죄를 하나님께 회개하였습니다. 교회에 도착하여 하나님께 제일 먼저 머리 숙여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내 조국 대한민국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조국교회 세인교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만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섬길 수 있는 조국교회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감사의 조건인 지를.
한 주간 동안 담임목사를 위하여 세밀하고 민감하게 중보해 준 교우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