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삽시다. 목사로 살면서 제일 행복한 것은 아이를 낳는 고통이 수반되지만 설교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힘든 것은 설교를 들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목사는 일주일에도 수없이 해야 하는 설교의 몫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설교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것이 불행 중의 불행입니다. 성도들은 설교를 듣습니다. 어떤 의미로 보면 정말로 목사로서 성도들에게 부러운 일 중의 하나입니다. 매 번 설교를 듣는 평신도들은 잘 느끼지 못하겠지만 설교를 듣는 행복은 귀한 행복입니다. 목사인 나도 이 행복을 느끼고 싶습니다. 나도 먹고 살고 싶습니다. 영의 양식인 말씀을 레마로 받아 배부르고 싶습니다. 그러나 불행히 목사는 설교를 듣는 훈련이 잘 안 되어 있어 듣는 행복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 행복을 찾기가 쉽지 않은 슬픈 이유는 내 설교와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목사 본인들은 막상 설교를 잘 하지도 못하지만 타인의 설교와 비교하기가 쉬워 은혜의 자리로 들어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치명적인 버릇은 고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태생이 그러니까 설교를 자 먹기 위해서는 무조건 한 가지를 전제해야하는 무거움이 있습니다. 들리는 설교(상투적인 화법이 정말 아님)자의 설교를 찾아야 합니다. 저는 일주일에 4편의 설교를 가급적 최선을 다해 들으려고 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이 분들의 설교를 들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먹지 않으면 내가 곤비해서 죽을 것 같기에 어떻게 하든 들으려고 합니다. 청파 교회 김기석 목사, 100주년 기념교회 이재철 목사, 워싱톤 한인교회 김영봉 목사, 그리고 남포교회 박영선 목사의 설교가 바로 그것입니다. 김기석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때마다 받는 도전은 문학과 설교 그리고 방대한 독서력을 토대로 쏟아지는 걷잡을 수 없는 은혜입니다. 얼마나 도전이 되는지 모릅니다. 영적 멘토이신 이재철 목사님의 설교는 저를 울릴 때가 많습니다. 진정성이 있는 고백인데 이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가 운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뭐라고 할까요? 이 고백이 정말로 맞는 것 갖습니다. 같은 하늘에 아래에서 목사님과 같이 호흡해서 너무 행복하다는 표현이. 김영봉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 답답했던 삶의 무게들을 내려놓게 됩니다. 저는 원래 문명의 이기들에 대하여 그렇게 박식하거나 또 별로 친해지고 싶지 않아 의도적으로 아날로그를 고집하려고 하는데 김영봉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수 있는 것만큼은 문명의 이기에 감사를 드립니다. 박영선 목사님의 설교는 궤변적이라 좋습니다. 상투적이거나 획일화된 상업적인 설교가 아니라 들을 때마다 상식을 뒤집어엎어 주는 감동이 있어 그 은혜의 약물을 끊을 수가 없습니다. 말씀 드린 4분의 목회자들 뿐만 아니라 제가 접하지 못해서 그렇지 감동의 메시지를 조국교회의 강단을 통해 주일마다 선포하는 주의 종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러기에 그 분들을 선택하여 설교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복입니다. 우리 교회 지체들은 담임목사 외에 들을 수 있는 설교자들을 많이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일전에 신학교 선배이신 정용섭 목사께서 한국교회 대표적인 설교가들을 조직신학자의 안목으로 비평한 글들이 책으로 출간된 적이 있어 의미 있게 읽은 적이 있습니다. 글의 내용 중에 주목했던 대목이 있습니다. “나는 대한민국 최고의 설교가인 이동원목사의 설교를 들으며 소위 은혜(?)를 받지 못했다.” 사실은 한 신학자의 토로였지만 나름 이해가 갔습니다. 선배의 신학적인 토대와 전혀 맞지 않는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동선에서 개인적으로 저는 목회자이기에 내 신학과 목회의 스펙트럼으로 전제로 설교를 들어야 하는 운명입니다. 그러기에 사실은 선입관을 갖고 있어 듣는 것에 대한 한계가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에게 은혜를 주는 동역 설교자들이 있어 너무 행복합니다. 말씀 축제가 오늘부터 진행됩니다. 존경하는 친구 목사들입니다. 또 들을 수 있고 은혜를 줄 수 있는 설교자들이기도 합니다. 세인지체 여러분! 우리 모두 이번 주간 먹고 삽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