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눈치고는 상당히 많이 내린 눈이었습니다.
첫 눈은 통상적으로 눈이 오는 날은 날씨가 포근하다는 정설을 무색하게 할 정도의 한파를 몰고 왔습니다.
하순이기는 하지만 공식적인 겨울이 아닌 11월에 당한 일이라 약간의 당황스러웠습니다.
눈 내린 겨울이 되면 우리 교회는 새벽예배 운행을 담임목사가 직접 합니다.
아무래도 새벽예배 운행을 돕는 여전도사님을 빙판 길까지 운행하게 하는 것은 담임자로서 도저히 마음이 내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새벽 4시에 기상하여 세면을 하고 차량 워밍업을 시킨 뒤에 운행 스케줄에 맞추어 눈길을 헤치고 새벽 운행을 나섭니다.
제천의 겨울은 아시는 분은 다 아시다시피 대한민국에서 철원과 함께 가장 추운 지역이기에 상상을 뛰어 넘는 혹독한 한파가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겨울 새벽예배 운행을 하면서 움츠려 드는 일은 다반사이지만 현장을 나가면 그 움츠림은 곧 감동의 마음으로 바뀝니다.
마치 북극지역에 사는 에스키모들처럼 방한복으로 중무장을 하고, 털신발로 동여매고, 목도리로 코만 나오게 가리고, 차량이 도착하는 지역에서 발을 동동거리며 기다리고 있는 이 땅의 새벽지기들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그 곳 그 자리에서 말입니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한파가 몰아쳐 영하 20도가 내려가고 바람까지 불면 체감온도가 무려 영하 30도 정도로 곤두박질을 치는 것이 다반사인데 언제나 늘 그 곳에 가면 그리운 새벽지기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감동 그 자체입니다.
조국교회가 무너져 내리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이 주변에서 보입니다.
그 원인을 어떤 이는 목사들에게 돌리는 이들도 있고, 대형교회의 기형적 형태에 돌리는 이들도 있고, 교회 내적인 구조 안에 있는 모순으로 돌리는 이도 있고, 교회가 기득권 정치와 야합하는 비겁함 때문이라고 몰아세우는 이들까지 다양합니다.
경우에 따라서 그들의 목소리가 부합되는 일들이 조국교회에 보이는 것을 현직에서 사역하는 목사로서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비평과 비난이 아무리 맞는 말이라 하더라도 나는 그들의 채찍에 경성은 할 수 있지만 손을 들어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보란듯이 날카로운 지성을 갖고 조국교회를 비난하고 공격하고 있는 동안에도 그들과는 전혀 상관없이 조국교회에는 무식하고, 때로는 맹신자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판단력 제로라는 뭇매도 맞고 그래서 항상 인텔리 계층의 사람들에게는 대화 불가라는 치욕도 당하지만 체감 온도 영하 30도가 되는 살인적인 추위에도 불구하고 순교적인 사명을 갖고 새벽을 깨워 기도하는 이 땅에 진짜 그리스도인들을 돌보고 격려하는 것이 저에게는 더 중요하고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똑똑한 사람들이 조국교회에 너무 많습니다.
말로 한 몫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가장 고통스럽고 불리한 시간에, 가장 헌신하기 어려운 시간인 새벽에 일찍 깨어 살을 에는 듯한 고통을 감내하며 주님이 피 값을 주고 사신 보이는 교회인 가시적 교회 예배당에 나와 단 한 번이라도 조국교회의 무너짐 때문에 통곡하는 자를 저는 불행히도 그런 무리들 중에는 본 적이 없습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보수화되는 성향을 누구나 갖고 있다는 어느 저명한 사회학자의 글을 책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의 보수화라는 말의 뜻을 이데올로기적인 보수화라고 해석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조국교회의 현역 목사로 25년 이상 섬기면서 그 사회학자의 말대로 보수화라는 말을 굳이 나에게 적용한다면 이렇게 해석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뼛속까지 예수쟁이로 남으려는 원색적이고 본질적인 삶으로의 회귀”라고.
새벽에 제천 시내에 환한 전조등을 키고 눈 속을 헤치며 달리는 차들은 교회 차들입니다.
그 교회 차를 살인적인 추위 속에서도 기다리고 있는 자들은 제천에 살고 있는 진짜 예수쟁이들입니다.
2050년 즈음 한국 개신교회의 신자 수가 200-300 만 명으로 줄 것이라는 비관적이고 우울한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정말로 아프지만 저는 숫자에 연연하지 않고 조국교회를 하나님이 버리시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이유가 있습니다.
조국교회의 새벽을 깨우며 이 땅과 조국교회를 위해 통곡하며 우는 남은 자들이 아직은 남아 있고 또 꿈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국교회가 그들의 영적인 목마름처럼 원색의 복음으로 회복되는 은혜가 임하면 하나님은 조국교회를 사용하실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뼈를 부수는 것 같은 강추위가 예보되어 있는 금년 겨울이지만 이전 겨울은 뼛속까지 원색의 복음으로 무장한 진짜 예수쟁이로 살기를 다짐해 봅니다.
입이 아닌 삶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