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앨범

제목권미숙 집사의 질문에 답하며2024-06-05 15:47
작성자 Level 10

오늘 새벽예배를 마쳤는데 섬기는 권미숙 집사께서 질문을 SNS로 보냈다질문하는 신앙이 귀해 진정성이 있게 답했다권 집사가 동역자라 행복하다.

 

질문

 

목사님~지난 주일예배 후에 ○○○집사와 나눔을 가지면서 좀 생뚱맞은 의문이 생겼습니다서로 자료를 찾아보면서 머리로는 해석이 되지만 가슴으로는 와 닿지 않은 부분들이 있어서 질문해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십자가 죽음의 장면입니다하나님의 아들이고 자신의 죽음조차도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던 예수님의 마지막 말이 자꾸 가슴에 와 닿습니다.

엘리엘리 라마사박다니~

다 받아들이셨으면서 왜 당신을 버리셨나이까라고 울부짖으셨을까요?

예수님의 고통스러웠던 마음에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울부짖음이 오늘 새벽 말씀 중 다윗의 탄원시에 주여 어느 때까지오리이까라는 말과 오버랩 되어서 자꾸 가슴에 맴돕니다.

목사님의 영적인 해석이 궁금합니다어떤 마음이셨을까요예수님의 아픔이 느껴져서그 고통이 느껴져서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우리에게 있어서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 건지 알겠는데 예수님의 마지막 한마디의 심경이 어떤 해석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궁금했습니다.

좀 생뚱맞은 질문이겠지만 궁금증이 생겨서 여쭤봅니다..ㅠㅠ

 

답변

 

집사님무더운 여름인데 더위에 지치지 않기를 바라고 이렇게 질문하는 신앙이 오늘 아침 큐티를 통해 전했던 것처럼 신앙의 진보와 승리를 가지고 온다는 것을 복기하고 그런 삶을 지속하기를 바랍니다.

영어성경 BBE(Basic in Bible English)를 보면 마가복음 15:34절 후반절을 이렇게 기록해 놓았어요.

“Eloi, Eloi, lama sabachthani? which is, My God, my God, why are you turned away from me?”

밑줄을 직역하면 이렇게 번역됩니다.

왜 당신은 나로부터 돌아섰습니까?”

조금 나이브하게 설명하면 나를 버렸냐는 말이죠이게 이론적으로 가능할까 싶어요왜냐하면 정상적인 아버지가 아들을 주체적으로 죽인다는 것도 해석이 안 되는 일이지만 아들이 죽을 때 등을 돌렸다는 말이 도대체 해석이 되지 않으니까요?

너무 보수적인 감각으로 그것도 캘빈주의 냄새가 너무 진하게 나서 거부감이 드는 목회자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성도들이 주목해야 하는 해석을 남긴 존 파이퍼가 십자가 사건에 대해 갈파한 해석을 하나 전할게요.

예수님의 죽음이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에게 죄의 심판의 영향력을 무효로 만들게 하는 것이었다.” (존 파이퍼, “예수님이 복음입니다.”, 부흥과 개혁사, 2008,p,78.)

오래 전에 읽은 글인데 가슴에 담았기에 곱씹는 글이에요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들 예수님에게 등을 돌리신 이유는 아프셨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시면 죄에 대한 심판을 받아야 하는 인간을 그 심판의 영향력에서 해방시키시고 자유롭게 하실 수 있는 방법이 없으셨기 때문이라는 지극히 전통적인 해석이지요이 해석은 마땅히 목회자가 가져야 할 목회 신학적인 해석의 한 부분이라고 하는 데 이견을 갖지 않아요해서 성부 하나님의 등 돌리심을 이렇게 해석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그가 짊어진 인류의 죄를 버리신 것이다.

집사님.

앞에서 말씀드린 것은 집사님처럼 교회 성도들에게 드릴 수 있는 신앙적 답이고차제에 또 하나 제게 임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 대한 신학적 시각을 말씀드릴 게요조금 어렵더라도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희망의 신작자라고 부르는 위르겐 몰트만이라는 독일 신학자가 있어요몰트만이 아주 오래 전에 그의 걸작인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이라는 책을 썼는데 저처럼 목사들에게는 너무 귀한 책이에요몰트만의 책 제목이 너무 도전적이지 않나요?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으로 이미 세뇌되어 있는 우리들에게 이상한 이야기를 하잖아요.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이라니그런데 조금만 신학적으로 깊이 생각하면 이 문장에는 더 큰 도전과 감동이 있어요.

몰트만이 피력한 한 문장을 소개할게요.

아들이 고난을 당하여 십자가에서 죽었다아버지는 그와 함께 고난을 당하셨다그러나 아들과 같은 방법으로 고난을 당하신 것은 아니다하나님이 십자가에서 죽었다.” (몰트만십자가에서 달리신 하나님” 한국신학연구소, 1990,p,210.)

하나님 자신께서는 사랑의 무한한 아픔 속에서 아들의 죽음을 고통당하신다여기서 우리는 성부수난론적으로 생각하여 아버지께서 고통을 당하셨고죽으셨다고 말할 수 없다아버지를 통하여 버림받은 가운데서 아들이 당한 고통과 죽음은 아들의 죽음에 대한 아버지의 고통과는 다른 고통이기에 말이다십자가위에서 예수와 그의 하나님 아버지 사이에 일어난 것을 파악하기 위해서 우리는 삼위일체론적으로 생각하여야 한다아들은 죽음을 고통당하며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을 고통당하신다아버지가 당하는 아픔은 아들의 죽음만큼 큰 것이다.” (위의 책, p,256).

더 세밀하게 나가면 집사님이 힘들 것 같아 정리할게요.

몰트만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짊어지셨다는 전통적인 십자가 신학을 뛰어넘어 십자가 사건은 단순히 성부 예수의 사건이 아닌 성자 하나님이 그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라는 삼위일체적인 십자가 신학을 선언한 셈이지요.

집사님그렇다면 또 하나의 진보적인 십자가 사건에 대한 은혜와 도전이 임하겠지요.

하나님이 아들을 죽이신 사건이 십자가 사건이라는 것을 뛰어 넘어 하나님 당신이 그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고통을 당하셨다는 점이라는 은혜와 도전 말이에요.

집사님의 원론적인 질문에 답할게요.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의 외침은 아들 예수가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것에 대한 토로가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이 함께 느꼈던 고통의 나눔이었다고 생각해요.

엘리위젤이 쓴 나이트에 보면 어린 피펠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등장하잖아요.

어린 피펠이 교수형을 당할 때 아이가 가벼워 아직 숨이 넘어가지 않고 30분이 넘게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지나는 것을 본 아우슈비츠의 한 유대인 수감자가 하나님은 어디에 있는가?’를 질문하죠바로 그 때 엘리위젤은 자신의 몸 안에서 어떤 목소리가 다음과 같이 대답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이렇게 술회해요.

하나님이 어디에 있냐고여기 교수대에 매달려 있지.” 엘리위젤, “나이트”, 예담, pp,122-123.)

이글 때문에 앞에서 소개한 독일의 희망의 신학자 몰트만은 이렇게 영적 힌트를 받고 책 제목을 만들었다고 하네요.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이상민 21-08-06 14:22
여섯번째 읽고 읽는데 이 글을 읽을 때마다 아멘 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감사합니다.
댓글
자동등록방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