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수 있기에 지난 목요일, 성탄절 아침에 아내가 침대에서 일어나 저에게 이렇게 말해주더군요. “당신과 성탄절을 같이 드릴 수 있는 것이 너무 감사해요. 살아주어서 너무 고마워요.” 개인적으로 이번 성탄은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 옆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적이며 은총인가? 를 다시 한 번 느끼게 해 준 성탄이 되었습니다. 2014년의 마지막 주일에 느끼는 감흥이 저에게 다른 해와 같지 않음은 저에게는 또 다른 은혜요 은총인 것을 진하게 느끼는 송년주일입니다. 목회의 여정에 들어선 지 25년 동안 교회 사역을 하는 오늘까지 3주 동안 교회 강단을 온전히 지키지 못한 것은 저에게는 있을 수 없었고 일어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런 일이 제게 일어나자 저 또한 무척이나 당황스런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삶이라는 것이 그렇듯이 이성적으로 예상한 일들보다 예기치 않은 일을 경험하면서 더 아름다운 일들을 하나님이 예비하셨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체휼하며 느끼는 좋은 기회를 저는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 성탄 축하의 밤 행사는 저에게는 깜짝 이벤트와 같았습니다. 담임목사의 한시적인 유고 상황이기에 행여나 성탄 축하의 밤 행사가 위축될 수 있는 충분한 여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세인지체들이 보여준 저력은 정말로 감동의 감동이었습니다. 2013년 성탄 축하의 밤 행사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열정들과 준비와 하나 됨을 보여준 아름다운 행사였기에 저는 그저 감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마디의 말도 뒤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연령의 권사님들이 보여준 수화, 핸드 벨 찬양, 심지어 코믹 댄스와 촌극까지 함께 어우러진 모습은 박수와 갈채를 받기에 충분한 은혜였습니다. 생각하지 못한 장르의 찬양을 보여준 신선했던 지체들, 육체적으로 곤비한 담임목사를 위해 용기를 불어넣어준 지체들, 교우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기 위해 적극적인 망가짐의 진수를 보여준 지체들, 남편의 입원 중에도 함께 하나 됨의 모습을 위해 시간을 헌신한 지체, 앞으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갖고 도전하고 있는 우리 교회의 다음세대들, 예수 그리스도의 빛으로 오심을 형상화해 준 지체들, 체력적인 방전에도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힘차게 뛰어준 지체들, 그리고 교역자도 이렇게 망가질 수 있다는 진수를 보여준 전도사님과 어시스트 댄서들까지 모두가 함께 주님의 탄생을 기뻐하며 노래하며 사랑했던 한 마당이 끝나고 난 뒤, 저는 주체할 수 없는 또 다른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바로 이들을 다시 한 번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더불어 그 사랑의 대상자들이 제 옆에 있다는 감동이. 소설가 성석제님이 쓴 ‘투명인간’을 읽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들의 어려웠던 그러나 정말로 행복했던 근현대사의 우리들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이 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데 에필로그에서 아주 의미 있는 말을 남겨놓았습니다. “현실의 쓰나미는 소설이 세상을 향해 세워둔 둑을 너무도 쉽게 넘어 들어왔다. 그 둑이 원래 그렇게 낮고 허술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만들었다.” 2014년의 현실의 쓰나미는 작가의 말대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녹록하지 않았고 2015년의 쓰나미 역시 만만치 않겠지만 그러나 한 가지만 있으면 우리는 허물어지지 않을 수 있는 둑을 견고하게 세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내 옆에 있다는 믿음의 둑입니다. 나는 2014년을 보내고 새해를 바라보는 송년주일 아침에, 이 둑을 견고하고 강하게 만들어가는 우리 세인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2014년 여러분이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