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개척한 뒤, 외부적으로 유일하게 사역하는 오세아니아 선교회 총회가 서울역 그릴에서 있어 다녀왔다.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여 지하철을 이용했다. 2호선이 있었을 때 고향을 떠났고 박사과정을 할 때 3호선을 이용했던 기억이 가물가물한 상태가 지하철 정보의 전부였다. 서울에 올라오면 항상 승용차를 이용한 터라 지하철을 타본지가 정말로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 상태에서 너무 오랜만에 지하철을 이용했다. 역사에 가서 서울역으로 가는 방법을 알아보니 4호선, 7호선, 9호선을 이용하면 된다고 나와 있다. 드디어 고속터미널에서 서울역사까지 지하철 이용 작전에 돌입했다. 문제는 4호선은 언뜻 본 것 말고 7,9호선은 생전 처음 보는 노선이라는 점이었다. 환승역에서 내려 분명히 이정표를 본 뒤,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갔건만 반대로 올라왔단다. 머리가 노래진다. 다시 돌아 반대편으로 가는데 환승구가 있어 표를 다시 사야하는 줄 알고 교통카드를 대니 ‘여기는 환승구, 환승구’라는 멘트가 나오며 그냥 통과하라는 네비양과 비슷한 음성이 들려온다. 그렇게 어떻게, 어떻게 해서 우여곡절 끝에 서울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습관적으로 들고 있는 책을 폈는데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다. 승객 중에 거의 모두가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한다. 책을 들고 읽는 것이 갑자기 뻘줌해져 어색하다. 드디어 그렇게 가고 싶은 서울역에 도착했는데 이제는 어느 게이트로 나가야 하는지 막막하다. 봉사자에게 물어물어 간신히 게이트를 빠져 나왔는데 이제는 목적지인 서울역 그릴이 어디인지 모른다. 또 찾아 헤매야하는 신세이다. 그날 뼈저리게 느꼈다. 나는 바보였음을. 일반적으로 신세대 같으면 스마트폰을 활용하여 길 찾기 앱으로 손쉽게 목적지를 나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허나 스마트폰이 전화 거는 도구의 세대인 나는 앱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 차량에 매립되어 있는 내비게이션이 그냥 무조건 고마운 세대이다 보니 그것도 사치다. 어디 이뿐이랴. 대도시인 고향을 떠나 지방 소도시를 고향 삼아 11년을 살다보니 이제 서울이라는 도시는 나에게 괴물이나 다름없다. 당일 날 길 노상 카페에서 지인을 한 시간 정도 기다리는 상황이 되어 책과 고즈넉하게 데이트하기 위해 차 한 잔을 사서 자리에 앉았다. 허나 독서에 집중이 안 된다. 제천에서는 도무지 맡을 수 없는 차량 매연 냄새가 코끝을 진동하기 때문이다. 마치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나에게 담배피우는 자가 옆에 와서 앉으면 몹시 힘이 든 냄새를 금방 느끼는 것과 같은 맥락의 서울의 공기는 정말로 역겨울 정도로 힘이 들었다. 작가 정호승씨가 쓴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 의 산문집에 보면 경상도 시골 출신의 작가가 40년이라는 세월을 살다보니 서울도 고향이라는 단편에서 서울이 살다보니 새소리도 들리는 그냥 살만한 고향이라는 소담스러운 고백을 하지만 나에게는 적어도 서울은 나를 바보 만든 친해지기 어려운 카운터파트임에 틀림이 없다. 그날 사역을 마치고 제천으로 들어오는 데 하늘이 다르게 보인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냄새가 다르다. 그래서 그런지 정호승 작가의 말이 맞는 것이 틀림없다. “개들과 함께 눈사람을 만들면서 내가 사는 지금 이곳이 바로 고향이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바보가 된 그날, 괴물의 그늘에서 어머니의 젖가슴 같은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정상적인 사람으로 돌아온 것에 감사하며 안식했다. 그리고 다짐해 본다. 제천을 사랑하리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