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희 전도사에게 재작년 가을에 제천에 발을 디뎠지. 사모님과 관광차 구경하러 왔던 그 제천에 사역자가 되어 올 줄,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나 싶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참 신묘막측(神妙莫測)하다. 그렇게 낯설고 한편으로는 두려운 제천에서 함께 천로역정의 길을 걸은 지 벌써 1년 6개월이 지나고 있구나. 이제 이번 주간이 지나면 전도사에서 목사로 직분이 변경되겠네. 목사 안수를 받는 김 전도사를 보면서 미리 이 길을 32년 전에 걸었던 아버지 같은 선배가 축하해야 하는데, 축하보다는 안쓰러움이 먼저 드니 어쩔 수 없는 감정이구나. 그럭저럭 물 흐르는 데로 흘러가는 목사가 되려면 무슨 걱정이 있겠나 싶지만, 앞으로 김 전도사가 펼쳐야 하고 사역해야 하는 한국교회의 현장은 그렇게 걸어서는 미래가 없는 필드이기에 마음을 다잡이하고, 옷매무새를 고쳐 잡고 걸어야 할 김 전도사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것이 정직한 선배의 감정이다. 지난 주간에 한세대학교 차준희 교수가 66번째로 집필했다고 책(구약 예언서 수업) 한 권을 보냈다. 첫 장을 펼쳤는데 친구가 쓴 프롤로그가 크게 들어왔다. “필자는 한국교회 급성장기에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성장 정체기 동안 후학을 가르쳤고, 성장 하락기에 안타까워하며 교수 사역을 마무리하고 있는 중이다.”(7쪽) 이 문장이 절절하게 다가왔단다. 그래, 김 전도사가 사역할 계제는 한국교회 성장 하락기임에 틀림이 없다. 더 유감스러운 것은 이 아픔이 끝날지, 지속될지를 분석하는 자료들을 보면 후자에 가깝다는 진단이 우월하다는 점이다. 이제 이 기가 막힌 상황의 무대에서 뛰어야 할 주인공이 김 전도사이기에 담임목사가 느끼는 소회는 때론 아프기까지 하다. 하지만, 여기까지만 실망하자. 오늘 주일 예배 부름의 성서 요절로 히브리서 4:15-16절을 읽었다. 목사 안수 받기 전, 그 무엇보다 큰 선물이 될 것 같구나.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아마, 나보다도 더 많이 울어야 하고, 더 많은 좌절,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심각한 자괴감, 그리고 무엇보다도 종교를 문화 정도로 인식하는 자들과 부대껴야 할 고통의 복판에서 사역해야 김 전도사이기에 엎드리지 않고는 극복할 수 없는 그 상황이 지속적으로 임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시는 분이 있음을 절절하게 체감하며 그분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종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 목사라는 이름은 영광의 직이 아니라, 주군의 노예임을 명심하고 더 열심히 공부하고 엎드리는 종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 주군께서 김환희 전도사의 길에 먼저 앞서서 가실 것을 믿고 응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