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가 몰려왔습니다. 이번 겨울은 긍정의 의미로 볼 때 보너스를 받은 느낌이 들 정도로 따뜻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겨울이 이렇게 따뜻해도 되는 걸까를 생각해 보면 매우 걱정되는 게 사실입니다. 얼마 전, EBS를 우연히 시청하다가 아주 작게 남아 있는 빙산 위에 올라가 있는 북극곰을 보다가 울컥했습니다. 그날 화면에 클로즈업된 북극곰의 얼굴에서 인간을 향한 서글픈 미래가 보였기 때문입니다. 겨울이 겨울의 모습을 하지 않는 것은 정상이 아니라는 시위입니다. 또 하나 생각해 볼 사위(辭位)가 있습니다. 추운 뒤에 맞이하는 봄이 아름다운 봄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봄을 기다리는 것은 추위로 인해 모든 것이 움츠러져 있었기에 그 움츠림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 때문일 것입니다. 봄이 오면 겨우내 하지 못했던 일상, 생각, 역동들이 기지개를 펼 수 있기에 혹독한 겨울을 경험하고 보낸 자만이 봄이 주는 충만한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을 기대하기에 봄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신학교를 졸업한 후, 목회하는 목사로 평생을 살아왔기에 부대낀 공동체 안에서 섬겼던, 그리고 섬기고 있는 교우들의 겨울을 함께 겪었고 또 겪고 있습니다. 혹독하다 못해 너덜너덜하고 처절한 마음과 육체의 겨울을 겪고 있는 지체들을 저 또한 고스란히 안고 같이 그 겨울을 보냈고, 보내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이 과정들을 경험하면서 나 또한 어느 경우에는 번-아웃을 경험하기에 일어날 힘이 없는 자괴감에 빠질 때도 수차례였습니다. 하지만 내가 일어나지 못하면 교우들에게는 치명타라는 것을 알기에 매번 다잡고 일어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일어난 후에, 지체들의 겨울을 붙들고 울고 또 울면서 다짐하고 또 다짐한 일은 혹독하게 추운 겨울을 경험한 지체들에게 찾아오는 봄 햇살의 따사로움이 커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었습니다. 목사는 이것을 위해 사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기상 캐스터들이 날씨 정보를 전해줄 때 꽃샘추위를 일컬어 공통으로 인용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반짝 추위입니다. 그들의 말은 적확합니다. 꽃샘추위는 오랜 추위가 아닙니다. 반짝 추위입니다. 나는 섬기는 교회의 교우들이 당하는 추위가 꽃샘추위가 되도록 중보자의 역할을 감당하는 목사가 되려 합니다. 나는 내가 엎드려 섬기는 세인 교회 안에 있는 보석 같은 교우들에게 엄습한 추위들이 반짝 추위가 되도록 주군께 떼쓰는 목사로 현장을 섬기려고 합니다. 사순절 세 번째 주일에 몰아닥친 꽃샘추위는 오늘 저녁부터 점차로 물러간다고 합니다. 잠시 춥지만, 교우들 모두가 이번 추위가 물러가면 더 성큼 봄이 가까이 다가옴을 기대하는 행복한 사순절 세 번째 주간이 되기를 화살기도 해 봅니다. 이강덕 목사가 여러분의 옆에 있어 힘이 되겠습니다. |